오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조진호)과 5·18기념재단(이사장 직무대행 김후식)은 2018민주·인권·평화 '세계 민중 판화전'을 오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본관 제3, 4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위대한 반전평화 독일 예술가 케테 콜비츠, 양심적 일본인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적 아픔을 형상화 한 도미야마 다에코, 민중들의 삶과 신명을 표현한 한국 대표 민중미술작가 오윤의 판화 작품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다.
 

케테 콜비츠 _ 어머니들 1922-23 목판 34x40cm.
도미야마 다에코 _ 광주의 피에타 1980 실크스크린 41.5x56cm.
오윤 _ 칼노래 1985 목판 채색 32.2x25.5cm.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7점의 <전쟁> 목판화 연작을 비롯해 자화상 등 일본 사키마 미술관 소장품 15점이 전시된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작품은 광주시립미술관소장 하정웅 컬렉션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표현한 판화 작품 10점이 선 보인다. 오윤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애비>, <칼노래>, <도깨비> 등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25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조진호 광주시립미술관장은 “케테 콜비츠와 도미야마 다에코, 그리고 오윤의 판화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세계 민중 판화>전은 일촉즉발의 전쟁 국면에서 평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한반도 정세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소개

테 콜비츠(1867~1945, 독일)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자유주의적 기질을 지닌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평생 사회 소외계층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케테 콜비츠는 1893년 베를린에서 공연된 하우프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관람한 후 큰 충격을 받고, 1893년부터 1897년까지 6점의 연작판화 <직조공 봉기>를 제작한다.

이 연작 판화는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는 직조공들의 고통과 그들의 투쟁을 표현한 것이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케테 콜비츠는 또 다른 7점의 연작 판화를 제작하게 되는데, 농민들의 참혹한 현실과 그들의 봉기를 그린 <농민 전쟁>이다.

이 연작 판화는 작가 침머만이 1804년에 쓴 ‘대농민전쟁사 개설’을 읽고 그 영향으로 제작한 것으로 당시 노예의 삶과 다를 바 없었던 농민들의 삶을 작품의 주제로 표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은 케테 콜비츠를 반전(反戰) 미술운동가로 이끈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둘째 아들 페터가 전쟁에 지원하여 18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 것이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케테 콜비츠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7점의 목판화 연작 <전쟁>을 완성한다. 목판의 특징인 간결한 표현과 흑백의 강렬함이 잘 드러난 <전쟁> 연작에는 전쟁을 겪은 여성, 그리고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감성과 모성애가 잘 드러나 있다.

이번 전시에는 7점의 <전쟁> 연작이 모두 전시되는데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통해 전쟁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치유하기 힘든 아픔인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케테 콜비츠의 많은 판화 작품에서 여성들 또한 자주 등장하는데, 그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교양 있는 여성들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내고자 하는 주체적이고 투쟁적인 여성,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여성, 아이들을 지켜내고 아이들과 즐거워하는 여성들로 이는 50여점에 이르는 케테 콜비츠의 자화상과도 같은 모습이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는 중국 문학가 루쉰과 1930년대 중국 신(新) 목판화 운동은 물론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미야마 다에코(1921~ , 일본)

도미야마 다에코는 1921년 고베(Kobe)출신으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구 만주 대련과 하얼빈에서 지냈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중퇴한 도미야마 다에코는 일본의 전쟁 책임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예술로 표현한 양심적 화가이다.

그녀는 자국 일본이 전쟁에 대해 책임 지지 않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생각하며, 평생에 걸쳐 전쟁에 대한 일본의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그림을 그렸고, 강제 연행된 조선인과 종군위안부 문제,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도쿄에서 접하고 <쓰러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1980년 5월 광주> 판화 연작을 제작하였다.

이 판화 연작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국제전시회 특별초대로 광주시민에게 처음 공개되었는데, 간결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도미야마 다에코는 5월 판화 연작을 짧은 기간 동안 유화가 아닌 판화로 제작하였는데, 이는 오월 광주의 비극을 전 세계에 빨리 알리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5월 판화 연작 중 광주시립미술관소장 하정웅컬렉션 10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오윤(Oh Yoon, 1946~1986, 한국)

오윤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1980년대 이후 괄목할만한 예술적 성과로 인해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민중들의 한과 신명을 표현한 목판화는 그가 이룬 최고의 성과로 손꼽을 수 있다.

1970년 대학졸업 후 오윤은 거의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테라코타 소품 및 테라코타 벽화 제작 외에 특별한 가시적 예술적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다만 1970년대 중반 목판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을 때 그가 판화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접어들어 오윤은 건강문제 때문에 잠깐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진도로 요양을 가기도 하지만 수많은 판화 작업들을 쏟아냈다.

오윤의 판화는 1980년대 일종의 투쟁적 선전매체로 활용되었던 일반적인 민중 판화작품과는 달리 민중들의 한(恨)과 신명이 잘 표현되어 있다.

오윤은 민중들의 한과 신명이 배어있는 전통 춤과 소리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춤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춤의 흥은 사람들은 물론 호랑이와 도깨비까지도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1985년부터는 오윤의 판화에 도깨비가 등장하게 되는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술 마시고, 춤추고, 씨름하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오윤이 표현한 도깨비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자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오윤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시작과 함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의 판화 작품을 기억하는 이유는 공연 포스터나 책의 표지화, 삽화 등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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