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은 어렵고 수탈은 쉽게, 로마 마차에서 기원한 철로의 간격에 숨은 이야기

고대 로마 군대의 전차는 두 마리의 말이 끌었다. 이에 따라 2000년 전, 전 유럽을 정복한 로마제국은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을 기준에 두고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을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로마의 도로는 마차의 선로가 되고, 이어서 기차의 선로가 되었다.

이처럼 한번 정해지면 그것이 관성으로 굳어져 좀처럼 다른 형식으로 바꾸기 어려운 현상이 있다. 이른바 경로의존(Path Dependency)에 관한 이론이다.

미국 스텐퍼드대학의 경제사학자 폴 데이비드 교수에 의해 정립된 이 이론은 기술의 진보가 거듭되는 가운데서도 경로의존적 경향이 나타나며 대표적으로 철로의 폭과 컴퓨터 자판을 꼽았다. 마치 눈 내린 벌판에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길이 난 경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로마전차로부터의 경로의존성 작용한 철로의 폭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찾아 경의선을 지켜보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조지 스티븐슨에 의해 기차가 발명됐을 때 영국의회는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서 유래한 기존 마차 바퀴의 너비를 기차가 달리는 선로의 궤간으로 정하는 이른바 ‘궤간법’을 의결했다. 세계철도의 표준치수가 4피트 9인치(1435밀리미터)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철로의 너비는 국가와 지역별로 서로 다르지만 1435밀리미터의 표준궤가 기준이다. 표준궤는 세계 철도 총 길이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표준궤보다 약간씩 넓거나 좁다. 표준궤를 중심으로 이보다 넓으면 광궤, 좁으면 협궤라 부른다.

표준궤는 로마 시대 마차에서 기원했지만 광궤와 협궤로 분화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 나름의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각 나라마다 철도 부설 당시 직면한 정치 군사 문제를 비롯해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전략과도 관련 있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광궤를 쓰는 대표적인 나라 러시아, 스페인, 인도.

광궤를 쓰는 나라는 러시아와 스페인, 인도가 대표적인데 러시아가 광궤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군사적 이유 때문이다.

1812년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인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 초토화’ 작전과 때마침 몰아닥친 극심한 추위 덕분에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지만, 이때 러시아가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쟁의 여파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민족의식을 자극했다. 그리고 예술혼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유명한 명작이 탄생했다.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서곡 ‘1812년’은 나폴레옹을 물리친 러시아 국민의 기쁨을 표현한 곡이며,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도 참혹한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를 다뤘다.

전쟁의 혼란 중에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이만큼 잘 묘사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철도를 부설하면서 프랑스 군대가 이젠 기차를 타고 침략해 올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 정부는 프랑스가 쓰는 표준궤보다 85밀리미터를 넓혀 철로를 건설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스페인도 러시아와 같은 이유로 광궤를 채택했다.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 세계 각지에 수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강국이었지만 18세기부터 계속된 프랑스의 군사적 간섭으로 심각한 정치 불안을 경험했다.

특히 1808년, 나폴레옹 동생의 스페인 국왕 임명에 반대한 민중 봉기를 프랑스 군대가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스페인 민중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그림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으로 스페인 민중이 겪은 참상을 잘 말해준다.

스페인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잠재적 적성국인 프랑스를 의식했다. 스페인은 러시아보다 넓은 1668밀리미터의 광궤를 선택했다.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전략에 따라 레일 폭이 결정된 인도와 제 3세계 국가들
 

지난 2007년 2월11일 오전 8시 25분 도라산역을 출발해 판문역에 도착했던 개성공단 화물열차가 11시 35분에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물품을 싣고 다시 도라산역으로 돌아왔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1853년 아시아 최초로 철도를 부설하면서 러시아, 스페인과 더불어 광궤로 시공했으나 그 이유는 다르다.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된 면화와 차 등을 많이 실어서 빠르게 운송할 목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1676밀리미터의 광궤를 건설했다. 궤간이 넓으면 공사비는 많이 들지만 차량을 크게 만들 수 있어 대량 수송에 유리하며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도는 대부분의 식민지가 그러하듯 종주국의 필요에 따라 철로의 궤간이 정해진 경우다.

철로의 폭이 정확히 1000밀리미터, 즉 1미터인 나라들도 있다.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거나 그 영향권에 있었던 나라들인데,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과 아프리카의 카메룬, 튀니지,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에 1미터 궤간이 깔인 이유는 프랑스가 미터법으로 도량형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자국 식민지부터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이렇게 노력한 덕분인지 1875년 세계 미터조약이 체결되고 전 세계에 미터법이 공식화 됐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협궤를 채택했다.

협궤는 건설비용이 저렴하고 산악 지역에 건설하기 쉬워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일본과 같은 나라가 선호했다. 다만 일본도 고속열차가 다니는 신칸센은 이보다 넓은 표준궤로 시공했는데, 협궤로는 고속 운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반도 지배를 통해 대륙침략을 노리던 일본에 의해 남만주 철도의 폭과 같은 표준궤로 시공했다.

이처럼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레일 간격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현대 철도의 특성상 적잖은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해 유럽진출을 꿈꾸는 우리나라 철도가 그렇다.

요즘은 기차 바퀴를 선로에 맞추는 기계장치가 발명돼 차량을 바꾸지 않고도 궤간이 다른 구간을 운행할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차량을 크게 만들 수 없어 대량수송과 속도향상이란 광궤의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

이처럼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철로의 간격에도 고대 로마의 자취가 남았으며,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인류 근대사의 아픈 상처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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