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 우리 근현대 역사 중 제1대 사건

전쟁과 핵무기의 공포로부터 완전한 해방의 발판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묘청의 난’을 조선 천년 역사에서 최고의 사건이자, 조선 역사상 제1대 사건이라고 했다.

이에 견주어 2018년 4월 27일, 이 날을 나는 1876년 조선과 일본이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를 체결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즉 우리 근현대 역사 중 제1대 사건이라 감히 명명하겠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통 크게 이끌어낸, 흔히 ‘4·27 판문점 선언’으로 불리는 이 날 선언은 우리 민족의 백년 명운을 좌우할 위대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전쟁과 핵무기의 공포란 족쇄로부터 완전한 해방이자 실질적인 통일의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이 날 선언에서 가장 쇼킹한 내용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국내외 소식통들은 ‘완전한’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단지 목표 확인에 불과할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평양시를 포기하고 서울시로 시각을 맞추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 없이도 북한 인민들이 잘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일련의 상황들을 고려할 때 이 선언을 폄훼하는 것은 지나친 비관이 아닐까.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외에 상호불가침 합의 재확인, 단계적 군축 실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의 전환한다는 굵직굵직한 내용에도 합의하였다. 이는 전쟁 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내용이다.

다른 모든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전쟁 걱정 없는 세상에서 나와 이웃 그리고 후손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핏기 잃은 국토의 허리를 넘나들이 하며 남북의 혈맥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벅찬가.

나는 ‘4·27 판문점 선언’이 내가 아는 그 어떤 선언보다도 고귀하고 자랑스럽다. 그 이유는 남북한 우리 민족이 이 선언의 장에서 주인공이 되어 열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돌아보자. 이전의 남북한은 우리 민족의 문제를 푸는 데 이렇게 서로 협조하고 능동적으로 대화한 적이 있었던가. 설령 있었다하더라도 항상 강대국들의 입김 속에서 눈치 보며 많은 행동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이 전쟁 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해 주변 강대국들을 외교적으로 설득해가며 신뢰를 쌓아가는 가운데 그 거대한 프로젝트를 서서히 차분하게 실현해 가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피워낸 이 선언은 남북한 우리 민족의 지혜와 혜안이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선언이 더욱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남북한은 외세의 개입으로 분단되었고, 전쟁까지 치렀다. 반세기 넘게 남북한은 서로를 증오하였고,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했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땐 남북한이 증오를 누그러뜨리고 손을 맞잡고자 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맞잡은 손을 갈라놓고, 화해의 문에 빗장을 걸었고 안보 장사만 하였다. 그들에게 북한은 단지 정권 유지 수단에 불과했고, 민족 동질성 회복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이 선언이 나오기까지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그를 꽉 막혔다거나 소심하고 유약하다고 평가했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그의 눈은 장대하고도 걸음은 소걸음처럼 우직하고 신중하였으며, 외교적으로는 용의주도했다.

이를 위해 적재적소에 정파, 인맥을 떠나 전문지식을 지닌 인물을 기용하였으며 이들을 믿고 일을 맡겼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우리를 둘러싼 주변 강국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특사를 파견하여 친절하게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였고, 이에 강국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지지를 보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소단원 중에 언어 예절을 위한 ‘대화의 원리’ 중 공손성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 중엔 자신에 대한 칭찬은 최소화하고, 겸손은 최대화하는 ‘겸양의 격률’이 있다. 물론 유교 문화권에 사는 우리 국민들 대부분 이 격률을 지키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격률을 가장 잘 지키는 이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가 한다. 그는 한반도 4월 전쟁설이 국민들 입에서 오르내리던 시기에 한반도를 순식간에 평화와 화해의 무드로 바꿔버렸다. 한 마디로 오늘의 한반도를 만든 일등공신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는 외신들조차도 인정한 터다. 그럼에도 그는 그 모든 공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이 모든 공이 자신에게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연설 장소에서 노벨상을 연호했다.

이를 트럼프는 한껏 고무된 흐뭇한 표정으로 보기도 했다. 이 점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칭찬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을 보이는 겸양의 격률을 실천하고 있는 동양적 군자상을 실현하고 있다.

많은 언론들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듯이 나 또한 “나는 언제쯤 북한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내밀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턱을 넘어 북한 땅으로 들어간 이 장면을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고 싶다. 이 얼마나 위대한 행위예술이요, 퍼포먼스인가.

이 장면을 보고 많은 분들이 눈시울이 뜨거웠다고 한다. 수업하다 아이들과 함께 TV를 본 나 역시 그랬다. 이렇게 한걸음만 옮기면 쉽게 오갈 수 있었던 남북을 우리는 분단 반세기가 넘었지만 남북은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다람쥐처럼 쳇바퀴 돌 듯 돌고 돌뿐이었으니 한심하고도 애달플 뿐.

나는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이고 호전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싫어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가 달리 보인다. 그가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남북한 우리 민족이 애잔하여 종전 선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한반도 평화와 종전 무드에 힘을 실어주는 그를 보면 그가 부쩍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분위기가 쭉 이어져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 나아가 평화조약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머잖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꼭 오길 빌어본다.

“애들아, 수학여행으로 백두산, 금강산 가즈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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