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운명을 맡길 수 없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할쎄

더 이상 긴 얘기가 필요 없다. 바로 떠 오르는 것은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명군의 표상이다. 세종이 안 계셨으면 지금도 서당에서 종아리 맞으며 하늘(天) 따(地)를 외우고 있었을까. 좋아하는 시조가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시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 맘 같아야 
울며 밤을 예난다.

세조 때 의금부도사이던 왕방연(王邦衍)이 어린 단종을 영월 땅 유배지에 남겨놓고 돌아오는 길에 영월 서강 청령포 언덕에 홀로 앉아 읊은 단장가(斷腸歌)다.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울며 밤을 예난다’라는 표현이 아름답고 애절하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새삼 세종대왕께 감사를 드린다. 정치칼럼을 쓰면서 느닷없는 시조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나 명군이신 세종대왕에 대한 그리움이니 나무라지 말라.

■무지한 자와는 말을 섞지 말라
 

ⓒ청와대 영상 갈무리


공자님이 계신다면 이 말씀 하나는 꼭 하셨을 것 같다. ‘무지한 자와는 말을 섞지 말라.’ 성폭행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다. 이름 좀 알려진 사람들은 전전긍긍이다. 이름 한 번 났다 하면 끝이다. 머리 잘 돌아가는 인간들이 바쁘게 됐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안희정(사건)을 임종석이 기획했다고 하던데…

이게 무슨 소리냐. 기획을 했다니. 이 사건이 공작 음모란 말인가. 도대체 이 말은 누가 했는가. 홍준표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이 대화를 위해 만나기 직전 한 소리다. 조용할 리가 없다. 머리 좋은 홍준표는 재빨리 농담이라며 빠졌다. 연못에 장난으로 돌을 던졌는가. 돌 맞은 개구리는 어떻게 되는가. 무지한 자와는 말을 섞지 말라.’ 바로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것이다.

■개가 짖어도 달은 간다

북한 방문단이 돌아왔다. 엄청난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합의문이다. 좀 길어도 읽어보자. 글자 하나 고치지 않았다.

1. 남과 북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해 구체적 실무협의를 진행해나가기로 하였음

2.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간 핫라인(HotLine)을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키로 하였음

3.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음

4. 북측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하였음

5.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음. 이와 함께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였음

6. 북측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조성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을 초청하였음.

어떤가. 놀랍지 않은가. 입이 벌어진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박수 한 번 크게 칠만 하지 않은가. 잠깐! 박수 칠 일은 또 있다. 한국의 특사가 미국에 가서 트럼프와 합의한 것이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초청한다는 사실을 트럼프에게 전하고 트럼프가 수락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사실을 한국 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인보실장이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누가 농담을 했다. 한국외교가 백악관을 접수했다고. 어떤가. 이 역시 박수 칠 일이 아닌가.

■호사다마

앞일을 말하면 귀신도 웃는다고 했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그 말이 딱 맞는다. 어느 귀신인들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점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신뢰하는 것이다. 만약에 신뢰라는 것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을까.

김정은과 트럼프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불신의 강이다. 그 강 위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들어도 묵묵히 나무판대기 하나를 정성스럽게 놓는 사람이 있었다. 차마 들어 넘길 수 없는 별의 별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할 일만을 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가 쏟아놓는 험담과 음해를 누가 모르랴.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하수인이다. 서로 경쟁하는 정당끼리 칭찬에는 야박하겠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북한 특사가 가져 온 김정은의 회답을 불러 주는대로 받아 적어왔느냐는 비난에는 할 말을 잃는다.

김정은과의 6개 합의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온갖 노력을 다 했다. 그 결과가 나타났고 이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물론이고 세계의 화약고라는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의 위험을 제거했다.

한국당을 비롯해서 한국의 야당들이 끈질기게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심지어 김정은에게 끌려 다니는 하수인으로 폄하 매도해도 무 대응으로 견뎠다. 이제 결과로서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는 "위장 평화 쇼"라고 했고, 트럼프는 “세계를 위해 좋은 일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지금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 ‘미투’ 운동은 당연한 것이다.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도 역시 당연하다. ‘미투’가 왜곡될까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미투는 만연되어 있었다. 그럼 왜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불붙지 못했는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는 말도 있다. 미투가 자랄 토양이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 공유하는 말이 있다.

“자유한국당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문화 자체가 없기 때문에, 미투 운동 과정에서도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성폭력 피해 폭로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 문제가 항상 뒷전으로 밀린 한국 사회에서 정권 교체 이후 봇물 터지듯이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당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여성 인권이 얼마나 보장되었는지 살펴보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당이 미투를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미투 운동이 정착되어 여성이 분노를 삼키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투 역시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 주지 않는다. 이명박의 경우 ‘못생긴 여성이 서비스가 좋다는 망발을 했고 홍준표는 ’홍발정‘이란 자랑스러운 별명이 가슴에 붙어 있다.

■이 땅에 주인은 우리다

한국문제에 접근하는 미국의 시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국의 이해득실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함께 손잡고, 북한과 대화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초석을 놓겠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내 배가 고픈데 남의 입에 밥 숟갈 넣어 줄 사람은 없다. 오늘의 현실도 그런 시각으로 관찰해야 할 것이다. 역사마다 어려운 시기는 있었고 그때마다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 고구려에는 을지문덕, 연개소문이 있었고 고려에 강감찬.

그리고 조선에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이들이 어려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선배들이 하는 공통된 말이 있다. 지휘관 잘 만나서 살았다는 것이다. 1·4후퇴 당시 군량미를 착복해서 수십만의 방위군이 굶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지휘관은 공개 처형됐다.

3월 14일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선다. 이명박 개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어떤 일이라도 교훈은 있다. 미투로 정치생명이 끊기는 지도자. 목숨을 스스로 끊은 교수.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시인은 무엇이라고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CNN은 “김정은과 트럼프의 만남을 성사시킨 한국 리더의 외교적인 기술은 칭송받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평창 올림픽을 발판으로 삼아 이를 동력으로 남북회담 제안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워싱턴으로 특사를 보내 트럼프 대통령을 칭송하고 그에게 공을 돌리는 노련함을 보였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은 한국외교의 절묘한 성공’이라고 했다. 여기서 절묘란 표현은 ‘신뢰의 성공’이라고 바꾸고 싶다. 위기는 또한 기회라고도 한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꾼 현명한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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