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끝난 노동자는 피곤해 손발이 늘어진 채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눅눅하고 음울한, 그리고 깨끗하지 못한, 안락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자신의 집을 다시 본다. 그는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략)오염된 공기와 저질의 음식으로 허약해진 그의 육체는 강제로 밖으로부터 자극 받기를 원한다. 그의 사교적인 욕구는 오직 술집에서 충족될 수 있고, 그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는 물론 아무데도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음주벽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단히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음주벽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도덕적 심리적 필연성이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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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카를 카우츠기는 노동자들이 술집에 가는 것은 힘든 현실을 버티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노동자들을 조직해 정치적 변화를 꾀하려면 노동자들을 만나러 술집에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빅토르 아들러와 같은 사회주의적 금주론자들은 노동자들이 알코올과 술집을 일체 거부해야 생활이 나아진다고 주장했다.

어떤 입장이 더 바람직한지 모르겠지만,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서는 가끔 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권리 확보를 위한 학습과 활동 그리고 그러한 행위(노동운동)를 조직화 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켜 노동의 고단함을 줄이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16세기 영국에서는 모직물 공업의 발달로 양털 값이 폭등했다. 지주들은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농경지를 양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개조했다.

이를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이라 한다. 농사지을 땅을 잃어버린 가난한 농부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다. 덕분에 도시의 고용주들은 싼 값의 노동자를 얻는다.

고향을 잃은 상실감, 낯선 도시생활, 과도한 노동과 저임금을 견디기 위해 쫓겨 온 이들(노동자들)은 독한 브랜드를 마시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었다.

유럽에서 술이라 함은 전통적으로 맥주와 포도주를 의미했다. 하지만 17세기부터 맥주와 포도주보다 훨씬 독한 브랜디가 맥주와 포도주의 자리를 대체한다. 적은 양으로도 쉽게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은 브랜디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용주들의 입장에서도 노동자들이 브랜드를 마시면 쉽게 취해서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술이라며 브랜디를 환영했을 것이다.

유럽에서의 브랜디 대중화에는 이처럼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의 역사가 담겨있다. 제사를 지내거나 축제 시 함께 모여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즐겁게 마시던 술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고통을 잊고 힘겨운 현실을 버티게 하는 마취제로 탈바꿈 되었다.

한국에서도 산업화를 거치면서 희석식 소주가 유럽의 브랜디처럼 대중의 술로 자리 잡았다. 소주 역시 전통주다. 이때의 소주란 쌀을 원료로 끓여서 만든 증류식 소주다.

하지만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소주는 알코올에 물을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다. 증류식 소주는 맛도 좋고 숙취도 적지만 비싸다. 반면, 희석식 소주는 가벼운 맛에 숙취도 심하지만 저렴함을 강점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소주(희석식 소주)는 좋게 말하면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이고, 나쁘게 말하면 부당한 노동 구조를 바꿀 원동력을 마비시키는 정치적인 도구다. 저임금에 과도한 노동이 반복되는 구조를 바꾸려면 앞서 말했듯이 맑은 정신으로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술은 현재를 직시할 힘을 앗아가고, 고통을 잠시 잊게 할 뿐이다. 다른 생필품에 비해 소주 값의 인상이 더딘 이유도 소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2016년 ‘참00’은 약 1조 9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1년간 성인 1명당 42병의 참00를 마신 꼴이다. 그런데 어디 소주가 참00 뿐이랴. 우리는 참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있다.

하지만 술에 담긴 정치적 의도와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의 역사는 잘 알지 못한다. 혹자는 인생 뭐 있냐며 그런 머리 아픈 일에 시간을 쏟지 말고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외치며 술이나 더 마시란다. 헐......우리는 술이 아닌 우리의 권리를 마셔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9호(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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