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새섬의 겨울 한파는 바다를 생계로 살아가는 섬사람들에게는 혹독함으로 다가온다.

 한파와 함께 찾아오는 풍랑주의보로 뱃길이 끊겨 육상에서 들어오는 부식들이 원활치 않아 식단을 준비하는 주부들은 이래저래 걱정거리로 짓궂은 날씨가 풀리기만을 기다린다. 이렇듯 섬의 겨울날은 마음속 깊이 황량함까지 다가 온다.
 

지난 가을 캘리그래피 석산 진성영 작가와 어머니가 함께 심은 무(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석산 진성영

지난 가을 어머니와 나는 집 뒤 텃밭에 배추와 무를 심어 겨우내 먹을 김장을 준비하려 했다.키 작은 배추와 무 잎은 겨울 한파와 함께 동반한 눈 속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무를 깨어 깍두기를 담그기로 했다. 

어머니가 옆에 계셨더라면 어머니는 무를 먹기 좋게 썰고 나는 양념장을 만들어 버무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김장철이 훨씬 지난 시간에 비해 늦은 감이 있었지만 깍두기 담그기에 돌입했다. 

처음 담가보는 일이라 무 양과 들어가는 양념장의 비율을 맞추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재료로 양념장을 만들어 깍두기를 버무러 넣고 보니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 나왔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어 어머니를 뵈러 목포로 향했다. 의식이 돌아왔다 하여 바로 보통사람들처럼 말을 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매일 올라오는 어머니의 상태를 파악하고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병원 면회 시간에 맞춰 어머니를 뵙는 일이 고작인 나에게는 어머니가 빠른 회복을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퍼진다.

평생을 자식 위해 쓰러질 때까지 흙과 씨름하셨던 어머니... 당신의 삶은 그렇게도 미련할 정도로 앞뒤를 살피지 않고 오직 전진만을 강요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집니다. 생과사의 원칙과 진리 앞에서 나는 오늘 어머니를 뵙고 다시 뜨거운 눈물을 훔친다.

"어머니! 막내 왔어요. 알아보시겠어요?"

"몰라, 몰라~"

말을 전혀 못 한 상태에서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몰라, 몰라'만 대답하는 어머니... 아마도 언어마비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는 첫마디 속에는 어머니가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내용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면회를 마치고 어머니께 이별을 고하는 말을 건넸다. "어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하자 어머니는 내손을 꼭 잡으시고 고개만 두 번 끄덕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길고 긴 겨울날이 지나고 따뜻한 새봄이 오면 어머니와 함께 새섬(진도군 조도면 소재)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면서...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