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억의 동해바다와 '현송월'
회억의 동해바다와 '현송월'
  • 정동묵 편집위원(작가)
  • 승인 2018.01.2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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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크고 중요한 일"

오랜 만의 호젓하고 오롯한 여행을 강원도 동해안으로 잡았다. 큰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그저 함께 가기로 한 형님들에 대한 일종의 보은 차원이었는데, 내려온 이후로 늘상 형님들이 나를 보러 왔지 내가 형님들에 맞춰 무엇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하여 굳이 핸들을 속초로 돌렸던 것은, 그 '맑은 물'을 꼭 보려 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부터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던 나는, 지나간 청춘에 대한 회억도 회억이려니와, 아직도 연초록의 맑은 물이 있어 그곳을 넘나드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2일 저녁 방남 일정을 마친 뒤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민중의소리 갈무리


그곳.

선친은 돌아가시기 전, 자주 '명사십리 해당화'를 말씀하시곤 했다. 접두어 같았던 그 말씀 뒤에는 늘 일사후퇴 때의 소묘가 따라붙었더랬다. 

과수원이었던 우리집의 과수 울타리를 해당화로 두른 이유를 안 건 그 후로도 한참 지나서였는데, 나는 그 뒤로 이 반도의 통일에 대해서 시나브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각종 온라인 상의 이러저러한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eastsea132'를 고집하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뒤의 132는 동경 132도, 독도를 의미한다)

동해.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청춘의 나로서는, 원산 앞바다로 넘어가고 또 거기에서 넘어오기도 할 동해의 맑은 물을 찾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불찰로 형님들과 했던 약속을 불가불 일주일 미룬 뒤 어제 동해로 달려오는 길. 마침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서너 시간 전에 같은 길을 달려 먼저 강릉해 도착했다. 

오랜 만에 만나는 동해를 반가워함과 동시에 북의 동포들과 같은 길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도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22일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 풍경. ⓒ정동묵


혹자는 온다 했다가 일방적으로 오지 않는다 했다가 다시 온, 그들에 대해 욕을 해대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우리 정부가 그들에게, 북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듣고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크고 중요한 일이다. 서로가 한 발자국씩 내딛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기 그지없다.

이 나라의 어떤  놈들은 그들이 오든 말든 상관없다고, 제발 오지 말라고까지 한다. 이해는 한다. 통일이 되면, 아니 그 과정에서라도 빼앗길 것이 있는 놈들은 그러한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일제강점기부터 해왔던 짓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여 나는 외치고 싶다. 소수의 똥대가리들이여, 이제 제발 이 반도에서 나가달라고.

알기로는, 2008년 박왕자 씨가 돌아가신 이후로 끊겼던 남북 간의 내왕이 10년이 흐른 뒤에야 이제, 비로소,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부디 이 한 톨의 밀알이 소중한 통일의 싹을 틔울  수 있기를 성심을 다해 기원한다.

아래 덧붙이는 자작시는, 박왕자 씨 사건 이후 단칼에 남북 통일의 싹을 잘라버린 이명박 정권에 대해 분노하며 대한항공 <모닝캄>에 실었던 졸작이다.
 

22일 강원도 주문진 동해바다 풍경. ⓒ정동묵


<꼭 가야 하는 길>

걸어가지 못하는 길을
나는 물이 되어 간다

흐르지 못하는 길을
나는 새벽안개로 간다

넘나들지 못하는 그 길을
나는 초록으로 간다

막아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혼이 되어
세월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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