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통해 시간관념을 익히고 근대의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익히다

문명이 발달했다고 시대가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발달한 문명에 대중이 적응하고 이를 향유함으로써 문화가 바뀌어야 비로소 시대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근대라는 시대가 그렇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지만 사람들이 그에 맞춰 변화하고 의식을 바꾸지 못했다면 근대라는 새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남 곡성군이 섬진강 코스에 운영 중인 증기기관차. ⓒ전남 곡성군청 제공


새로운 시대는 발달된 문명과 진보된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의식체계와 행동양식을 바꿈으로써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달라진 세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시대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문명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여 삶의 양식을 바꾸었을까?

학자들은 시간관념의 습득을 그 첫 번째로 꼽는다.

촘촘하게 짜놓은 시간에 대중이 적응하면서 비로소 시대가 요구하는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익혔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기 대중들이 시간감각을 근대화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기차라고 할 수 있다. 기차는 엄밀하고 정확한 시간체계에 맞춰 운행하는 교통수단임으로 사람들에게 표준화된 시간개념을 심어 주었다.

게다가 기차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시간에 대한 관념이 지역과 국경을 넘어 세계각지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결국 기차가 새로운 시간관념을 형성하고 이를 일깨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의 대중들은 일출에서 일몰까지 자연의 풍경을 보고 삶의 리듬을 맞췄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했다. 농사는 하루보다 계절, 혹은 1년이란 큰 단위의 개념이 필요한 산업이기에 지금처럼 초급을 다투는 분, 초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았다.
 

광주역 전경.


이에 따라 중세 유럽에서 시간은 연속적 개념으로만 존재하고,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도 12 간지에 의한 다소 철학적 의미를 가진 시간이 통용됐다.

철학자 칸트의 주장처럼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자연히 옛 사람들의 시간문화는 시간자체보다 ‘식전’이나 ‘식후’처럼 특히 먹는 행위의 시점이 기준이었다.

이후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철도와 각종 제조회사가 생김으로써 그동안 주관적이던 시간에 대해 객관적인 측정과 활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시간에 대한 인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서구문물의 전파에 따라 전통적 시간 문화에 젖어 살던 우리나라도 근대적 시간관념이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어의 타임(Time)이란 단어를 번역한 ‘시간’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만들어져 아시아 각국에 유포 되었는데. 우리나라도 독립신문 창간호에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때맞춰 사회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꾼 ‘갑오개혁’으로 그동안 중국의 시헌력에 의해 나누던 시간을 지금처럼 더 잘게 쪼개 24시간 체제에, 분과 초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바꾸었다.

이후 ‘한일강제병합’을 당한 뒤에는 일제에 의해 본격적으로 근대적 시간관념이 형성되고 전파되었으며 기계시계가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뀐 시간개념을 대중이 제대로 따라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는 기관지를 통해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지키자.’ 등의 표어를 걸고 대중을 계몽하려 했다. 당연히 학교에서의 시간교육은 매우 중요시되었다. 학교는 철저히 연간 행사표에 따라 운영하며 수업시간을 1시간 단위로 작성하여 진행했다.

교과과정을 운영하며 시간훈련도 병행하려한 의도였다. 한편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시간관념을 불어넣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장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시간에 맞춰 교대제를 실시했고, 노동자들은 이 순번에 따라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출퇴근해야 했다. 자본가들은 출근카드 등을 통해 출퇴근을 통제했으며 시간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벌금이나 벌칙 등으로 갖가지 규제를 가했다.

그러나 전통적 시간관념에 익숙했던 노동자들이 근대적 시간관념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각을 하거나 결근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으며 이 때문에 어느 면방 대기업에서는 통근제도를 폐지하고 기숙사를 세운 일도 있었다.

이를 두고 일제는 조선 노동자는 ‘게으르고 시간관념이 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시간개념을 익히고 마땅히 학습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관념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대중이 바뀐 시간개념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차의 운행은 근대적 시간관념을 퍼뜨리고 학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단체생활을 하는 학생이나 노동자는 학업이나 노동에 적응해 가면서 시간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었지만, 농민이나 부녀자, 토착양반 등은 바뀐 시간개념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차의 존재는 매우 유용했다.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선 누구라도 시간관념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1925년 일제시대 지어진 옛 서울역.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


결국 근대의 대중들에게 기차는 운송수단이자 시간에 대한 관념을 확립하고 터득하는 데도 요긴한 학습공간이었다. 더구나 학교나 공장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보급된 시간개념에 비해 자신의 필요에 의해 타야하는 기차는 자연스럽고 거부감 없이 시간개념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기차가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옛 시간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내내 서울 종루에서 치는 종소리에 맞춰 4대문을 열고 닫았던 것을 전차를 운행하면서 폐지한 것도 이 때쯤이다.

마침내 근대적 시간개념이 대중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대중이 시간관념을 익히고 기계문명에 적응함과 동시에 의식체계와 행동양식을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근대’라는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