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반드시’

‘나가서 놀아라. 아빠가 나중에 약속한 가방 사 줄게’

‘거짓말!’

친구는 허허 웃었고 나는 깜짝 놀랐고 친구 부인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빠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거짓말이라고 하는 어린 딸. 허허 웃고 마는 친구. 친구와 차를 마시면서 마음은 무거웠다. 아비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수십 년 동안 술을 마시면서 약속은 수백 번을 했다. 술 끊는다는 약속을 말이다. 부인은 믿지 않는다. 당연하다. 거짓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끊었다. 30년이 됐다. 처음에 술 끊었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뭐 술을 끊어? 개가 웃는다’ 1년이 지나도 믿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 믿지 않았다. 5년이 지나서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30년이 됐는데도 믿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어디서 남몰래 혼자 마실 거라는 것이다. 불신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누리집 갈무리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빽 좋은 친구가 죄를 저질렀다. 위에서는 잡아넣으라고 했다. 잡아넣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질책. “야 진짜 잡아넣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다음부터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지시는 휴지였다.

요즘 적폐청산이 피곤하다고 한다. 언론이 던지는 말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방을 치운다. 치우지 않으면 먼지가 쌓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주위에 더러운 것들은 늘 치워야 한다. 습성이란 묘해서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두면 습관이 되어 더러운 줄도 모른다.

■장택상 총리

6·25전쟁 직후 부산 피난 시절 누구나 공평하게 가난했다. 공무원 월급은 쌀 한 말값도 안 됐다. ‘어지간하면 덮어줘라’. 장택상 총리의 말이었다. ‘어지간’의 기준이 무엇인가. 뇌물은 공공연한 거래가 됐고 도민증 한 장 떼는데도 급행료가 붙었다.

무너져 버린 정권의 신뢰. 영이 서지 않는 정부가 무슨 말을 한들 국민이 납득을 하겠는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그동안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드디어 궐기했다. 5·16쿠데타 세력이 한 말이다.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했다.

재벌이 구속되고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 깡패들은 등에 ‘나는 깡패’라고 써 붙이고 종로를 행진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세상은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정권의 실세 김종필이 요정에서 거액의 수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혁명주체 중의 한 명이 농림부 장관이 됐는데 그 집을 방문했던 박정희는 2층으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놀랐다. ‘우리도 고생했으니 이제 호강 좀 해야 하지 않습니까’ 집 주인의 대답이었다고 했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던 군부혁명 주체의 부패는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방송국에서 녹음한 주체세력은 수표를 세지도 않고 PD에게 건넸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더없이 평화롭다.

■‘반드시’란 말의 의미

‘반드시’는 ‘틀림없이 꼭’이란 의미다. 여기에는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또한, 고위공직자의 대국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읍참마속이란 신주처럼 쓰이는 말이다. 울면서 사랑하는 장수 마속을 베는 공명의 아픔. 그러나 그에게는 애국이라는 거대한 명분이 있다.

‘반드시’ 군령을 지킨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황제의 애첩을 처형한 손자의 고사도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권에서 국민에게 약속해 왔던가. 그 중에서 지킨 것이 얼마나 되는가.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거짓말의 전형으로 국민은 인식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가상통화(암호화폐) 대책회의 보도 자료’가 사전 유출됐다. 국무총리는 이 사태를 엄중하게 생각했다. ‘반드시’ 유출자를 밝혀내겠다고 약속했다. ‘보안 불감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한다. 보안을 우습게 아는가. 국정원 기무사령부가 왜 있는가. 댓글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철통보안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유출자가 나왔다. 다행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총리의 ‘반드시’가 지켜졌다는 것이다. 엄중처벌 받아야 한다. 국가의 기강도 별 게 아니다. 읍참마속도 같다. 정보유출쯤 우습게 알던 자들의 정신이 바짝 들어야 한다.

■적폐가 피곤하신가

적폐가 피로하신가. 누가 그러는가. 해당자들이 그런다. 언론이 그런다. 검찰도 같다. 방 쓸고 마당 쓰는 게 힘들어서 피로한가. 이러지들 말라. 깨끗한 방에서 잠자기 싫은가.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발족했다.

법원의 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사건 가운데 검찰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과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의혹이 상당함에도 검찰이 수사 및 기소를 거부하거나 현저히 지연시킨 사건 등을 조사 대상으로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가 무죄가 난 KBS 정연주 사장 사건.
▲광우병 관련, 무죄가 선고된 MBC PD수첩 사건.
▲구속 수사를 받았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미네르바' 박대성 씨 사건.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 접대 의혹 수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무·검찰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 위원회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옳은 말씀이다. 검찰이 적폐청산에 피로해서 체력이 달린다면 국민 모금으로 보약을 지어 드릴 수도 있다. 차제에 검찰은 공수처 설치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민의 80%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 이럴 때 검찰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부정적 시각은 일거에 소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다. 

광화문의 촛불을 세계의 등불로 승화시킨 국민이 아닌가. 그리고 차제에 외국에 나가 계신 이인규도 모셔다가 ‘논두렁 시계’가 이 겨울에 어디서 떨고 있는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반드시’도 꼭 지켜지리라고 믿는다. 정부가 양약이라면 국민이 독약이라도 믿고 마시는 시대가 와야 한다.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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