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 프라하② 카렐교(Charles Bridge)와 네포무츠키(Jan Nepomucky)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 프라하② 카렐교(Charles Bridge)와 네포무츠키(Jan Nepomucky)
  • 차노휘 소설가(광주대 초빙교수)
  • 승인 2017.12.15 21:5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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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뤄주는 프라하의 수호성인 얀 네포무츠키
스트라호프 수도원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차노휘

프라하에서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노트북을 가지고 숙소 공용 휴게실로 간다.

주방 안쪽에 딸린 천장 높은 여덟 평 공간. 한쪽 구석에 컴퓨터가 있고 중앙에는 플라스틱 의자 여섯 개가 딸린 직사각형 탁자와 그 바깥벽에 등받이를 붙인 소파 두 개.

한 번도 작동 되지 않는 오디오 시스템. 늘 앉는 소파 맞은편 엔틱 가구 위에 가지런히 꽂힌 이국 언어로 적힌 여행정보 팸플릿들. 높은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타이어 모양 갓을 둘러쓴 등.

등은 주황색 빛을 내뿜는데 각도에 따라 노란빛과 초록빛을 띠기도 한다. 무한대로 마실 수 있는 커피와 차 그리고 시리얼. 세계 각국 여행객들이 자기네말로 떠드는 초저녁 공간도 좋지만 홀로 차지할 수 있는 새벽이 더 좋다.

이번 여행 주제는 ‘머무름과 글쓰기’이다. 도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숙소를 선택한 것도 장기간 지불해야 할 숙박비와 무관하진 않지만 무엇보다 조용한 곳을 원해서이다.

고요를 느끼며 홀로 있을 때면 공기 흐름마저도 느리다. 느림은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감성을 돋운다. 감미로운 재즈가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을 통해 고막을 어루만지고 혈액에 녹아들 때면 심장이 턱, 하니 아래로 향하면서 긴장을 푼다. 모세혈관이 바르르 떨리고 모공이 일시에 하늘거린다.

벨벳 같은 시간. 떠나온 그곳에서 나를 그리워해줄, 내가 그리워할 사람(사물들). 시공간을 상관하지 않는 노란 전등빛의 부드러운 애무. 바로 눈앞에서 점멸하는 푸른빛이 도는 백색 모니터빛.

전날 프라하를 다섯 시간 동안 걸었다. 아담하고 조용한 이 작은 도시. 이 도시를 역동적이게 만드는 것은 날씨 변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보다 제일 먼저 휴게실 창을 통해 비가 오는 것도 눈이 오는 것도 창문을 흔들어 대는 바람 강도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읽은 듯 후드득, 헐거운 홀 창틀이 유리를 때리는 빗줄기에 덜커덩, 박자를 넣고 있다. 창가로 간다.
 

숙소 2층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차노휘

천장 높은 2층 휴게실 창문으로 바깥을 보면 시원하게 뻗은 도심지로 향하는 4차선 도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고건물들. 키 큰 가로등. 낙서로 어지러운 빨간색 쓰레기통. 버스 정거장에 서 있는 사람들. 털 풍성한 귀마개와 털모자…. 하지만 비가 오는 새벽 정거장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정거장 안쪽 상점에 걸린 만국기만 비바람에 몸부림치고 있다.

바람도 비도 그리 길지 않다. 숙소를 나설 때는 말끔하게 개어 있다. 공원 산책로를 진입하여 카렐교로 향하면서 주변 풍경에 시선을 둔다. 비 그친 풍경은 엄숙한 신부(神父)와 같다. 잔뜩 비를 머금은 구름이 터질 듯 아래로 축 쳐지면서 건물 일부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뾰족한 지붕에 닿을 듯 말 듯 물 넣은 풍선을 하늘에 걸어놓은 듯한 아슬함. 어떻게 그 모습에서 신부를 떠올릴까. 절로 웃음이 터진다. 카렐교(Charles Bridge)에 가면 소원을 들어주는 신부가 있다더니 소원을 빌어볼까. 장난기 발동한 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프라하 성이 보이는 카렐교 야경. ⓒ차노휘

소원을 들어주는 신부(神父)가 있다. 의심 많은 왕(바츨라프 4세)에게 죽임을 당한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y) 성인이다.

보헤미아의 왕 바츨라프 4세(Wenceslaus IV, 재위 1378~1419년)는 전쟁으로 성을 자주 비웠다. 이때에 왕비가 호위병과 바람이 나게 된다. 왕비가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다.

그 이야기가 바츨라프 4세의 귀에도 흘러들어가게 된다. 왕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추궁하여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신부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 왕은 꾀를 낸다. 이곳에서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알려달라고 말한다.

한참 고민에 빠진 신부는 모든 사람을 제치고 왕 옆에서 재롱부리고 있는 강아지와 이야기를 한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몸에 돌을 매달아 카렐교 위에서 블타바 강으로 내던져버린다.

그 사건 후 나라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블타바 강 위로 다섯 개의 별이 떴다. 그 별들이 떠 있는 곳에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시신이 떠올랐다. 그의 시체를 건져내어 성당에 안치하자 좋지 않던 일들이 사라졌다.

이 이야기가 온 나라에 퍼져 나가면서 국민들은 점점 그를 숭배하게 되었고 1729년 로마 교황청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그 소원은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카렐교에 있는 얀 네포무츠키 성상. ⓒ차노휘

나는 빠른 걸음으로 먹구름을 잔뜩 몰고 있는 숙소 주변 풍경을 벗어나 기찻길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횡단보도 몇 개를 지나 신시가지로 일컬어지는 바츨라프 거리로 들어섰다. 이른 아침이라 바츨라프 기마상이 내려다보이는 대로는 노점상들이 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나는 전투 때마다 승리를 거둬 사람들에게 불사신으로 보였다는, 말 탄 바츨라프의 늠름한 모습을 복습하듯 올려다본다. 그리고 기마상 아래 보일 듯 말 듯 나무사이로 숨겨놓은, 1969년 ‘체코 사태’ 때 소련의 압제에 항거하며 분신자살했던 얀 팔라크(Jan Palach)와 그의 후배 얀 자직(Jan Zajic) 추모비 사진으로 눈길을 돌린다.

목덜미가 간지러워 고개를 든다. 그때다, 저 먼 하늘 먹구름 안쪽으로 황금빛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을 본 것이. 하늘은 점점 잿빛이 물러가고 말끔한 푸른 하늘이 얼굴을 드러낸다.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 빛은 점점 기마상 쪽으로 몰려오면서 그늘을 벗겨준다. 나는 양팔을 활짝 벌려 황금빛을 안는다.

아, 저 빛은 평화를 염원하는 이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을 품은 빛이 아닌가.

농도 다른 먹빛에서 황금빛으로 넘어가는 찰나. 나는 그 찰나의 희망을 안고 뛴다. 카렐교의 얀 네포무츠키. 그에게 소원을 빌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구도심지를 거처 카렐교 교탑을 지난다.
 

얀 팔라크와 얀 자직 추모비. ⓒ차노휘
먹구름 절반이 몰려 있는 구도심지. ⓒ차노휘

프라하 도심을 가로지르는 카렐교(Charles Bridge)가 건설되던 그때 통행세를 받으려고 세웠다던 교탑. 나는 그 교탑을 지난다. 블타바 강에 다리를 최초로 놓을 당시(1357~1402), 구도심지 쪽은 서민들의 땅이었다.

다리 건너편 프라하 성이 있는 말라 스트라나는 귀족들이 살았다. 서민들은 다리를 공짜로 오갈 수 없었다. 통행세를 내야했다. 통행세를 받기 위해 다리 양쪽 끝에 교탑을 세웠다. 지금은 전망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나는 통행세 없이 다리 중앙으로 뛰었다.

서른 개의 성인 상. 그 중에서 유일한 청동상이며 오래된 얀 네포무츠키(Jan Nepomucky)를 찾았다. 전날 이곳에 왔을 때 가장 눈에 띄어 미리 사진을 찍어 두긴 했다. 그를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후광에 별 다섯 개를 찾으면 된다.

나는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을 흘끔 거리고는 열 걸음 더 구도심 쪽으로 이동한다. 소원이 잘 받는 곳은 그의 청동상이 아니라 그가 다리에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에 의식을 행한다. 오른발로 다리 바닥에 박힌 못을 밟고 왼손으로 십자가를 만지고는 오른손으로 막 블타바 강으로 내던져지는 얀 네포무츠키 청동부조상을 만져야 한다.

부조상 하단에 그려진 강아지를 만지면 강아지 소원이 이루어지고 왕비를 만지면 다시 한 번 프라하에 올 수 있는 염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프라하를 다시 방문하는 것은 내 의지로도 충분하다. 집에 있는 강아지 소원을 들어줄까, 하다가 지금은 내게 더 욕심을 부려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게 집중했다.

지극히, 내가 바라마지 않은 것. 그게 소원이라면 말이다.
 

소원을 빌고 있는 필자. ⓒ차노휘

참고로, 소원을 빌 때 아래의 절차를 꼭 밟아야 효과가 있다(Daum 백과사전 참조).

첫째,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했던 자리를 찾는다. 카를교의 석상 17번과 19번 사이에 얀 네포무츠키 신부가 가슴에 십자가를 들고 머리 위로 별이 뜬 모습으로 누워 있는 부조물로 간다. 그 부조물 아래 바로 카렐교 난간 위로 다섯 개의 별이 십자가에서 반짝이는 걸 볼 수 있다.

둘째, 왼손을 그 다섯 개의 별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 무릎 정도 되는 위치에 보면 동그란 버튼 같은 게 보이는데 그 위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댄 후 오른발 위치의 바닥에 박혀 있는 동그란 버튼 위로 오른발을 올린다. 그런 후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한 블타바 강을 바라보며 속으로 소원을 빈다.

셋째, 소원을 다 빌었으면 그대로 얀 네포무츠키 성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소원을 다 빌 때까지 절대 말을 하면 안 되며 별을 만졌던 왼쪽 손은 아무것도 만지면 안 된다.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까지 다 왔다면 성상을 바라본다.

넷째, 성인의 동상 아래도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이야기를 담은 두 개의 동판이 있다. 사람들의 손을 타서 반짝이는 동판들 중 오른쪽 동판을 보면 카렐교에서 순교를 당하는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손가락만하게 작은 모습이다).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별을 만졌던 왼손으로 동판을 만지면서 다시 한 번 소원을 빈다.

 

얀 네포무츠키의 이야기를 담은 동판. ⓒ차노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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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남 2017-12-16 19:09:38
길위의 인생....글도 사진도 생생한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작가님은 인생을 딛는 방법이 다양하다는걸 보여주시네요. 독자로서 열독하겠습니다.

김형만 2017-12-16 12:13:21
덕분에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구경하는 느낌이라는. ㅎ
건강하게 여행잘하길~^^

곽정우 2017-12-16 11:40:31
즐건여행입니다~

제주돌도사 2017-12-16 11:34:12
멀리 가셨네
환한 미소로 좋은 추억 만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