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H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착잡한 심정으로 다시 새섬으로 돌아왔다.

새섬의 산과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 변함이 없었다. 그사이 어머니의 놀이터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다시 찾은 새섬 전경(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 ⓒ석산 진성영

시골집 현관 앞 의자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막내아들을 반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평상시 밭일하며 사용했던 집기들만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늘 함께 계실 거라는 착각이 나에게 이렇게 큰 아픔으로 다가올 줄은 상상도 못 하였던 터라~ 자꾸만 눈물이 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꼭 나만의 슬픈 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지금의 내 심정의 파고는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파장의 세기는 한순간에 멈출 수 없는 폭주와도 같다.

​어머니가 품었던 바다는 숱한 역경을 이겨낸 추상같은 험로(險路)였다. 섬 아낙네로 살아온 세월의 크기만큼 장대한 역사 속에 큰 이정표는 남기지 못했어도 섬사람들 특유의 근성과 뚝심은 우리들의 어머니로부터 나온다.

​이제는 흙길을 함께 거닐 수도, 뒤에서 보행보조기를 밀어드릴 수도 없는 참담함에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진다. 담담하게 받아들이자며 몇 번을 다짐을 해보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야 어느 사랑에 비교가 될 것인가?  

​어머니는 나에게 '봄'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쉼표'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드넓은 바다'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있어서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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