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어머니는 평생 동안 일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재미없는 삶을 살아왔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그 길은 어머니 앞에 바위처럼 무겁게 드리워진 숙명 같은 삶이었다. ​

봄이면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도, 가을이면 온 산하가 붉게 물든 내장산 한번 구경을 못 해본 어머니는 십 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질 않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강복덕 님)를 수발하고 있는 석산 진성영 작가 (목포시 H병원 소재) ⓒ석산 진성영

어머니께서 두 번의 큰 고비를 맞이할 때도 서울에 살고 있었던 막내아들의 빠른 대처로 어머니의 생명을 지켜냈다. 그리고, 이제는 막내아들과 함께 지낸 지 3개월 동안에 세 번째 큰 고비기 찾아왔다.

오늘로써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12일째가 되었다.

매일 아침 8시 30분에서 9시, 저녁 6시 30분에서 7시까지 두 차례 30분간 할애해 주는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어머니를 보고 나오는 게 고작이다.​ 처음보다 몸과 마음이 힘에 부친 듯 몹시 힘겨워했고 얼굴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팔은 혈관을 찾기 위해 잦은 주사 바늘 자욱에 멍이 새파랗게 피어올랐고, 이뇨작용이 원활치 못해 손과 팔은 더욱더 부어오르기를 반복한다. 내가 어머니 대신 눕고 싶은 심정이다. 

어머니께 인공눈물을 주입하자 눈을 크게 뜨고 막내아들을 바라보다가 힘에 겨운지 눈을 감아 버린다. 그것 역시 무의식 속에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암묵(暗默)적인 시선일 뿐이다.​

어머니는 강하다. 아니, 대한민국 어머니들은 모두가 강인하다. 내가 살아온 삶의 한 페이지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어머니에게 손 놓고 있는 병원 측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할 수 있는 일을 백방으로 찾아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욱 못 견디게 만든다.

​그래도 '기적'을 믿고 싶다.

​아침 면회를 마치고 멀리 탁 트인 어머니의 바다를 보기 위해 목포대교를 지나 가던 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친구 아버지는 같은 병원 5층에 폐암으로 입원해 돌아가실 날 만을 기다린다고 했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완치가 되어 의사나, 간호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달 10일쯤 퇴원해 집으로 내려가신다고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적'을 한번 믿어보라는 위로의 말을 내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

나는 다시 저녁 면회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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