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어머니는 남도 잡가 '육자배기'를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잘 불렀다. 특히 밭일을 할 때 지친 심신을 노곤하게 풀어주는 명약이 바로 ‘어머니의 육자배기’였다.

처량하면서도 한(恨) 맺힌 노랫가락은 주위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들어 놓았다.
 

밭 일 하다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육자배기를 부르고 있는 어머니(강복덕님: 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 모습 ⓒ석산 진성영

​특히, ‘장녹수가 임(연산군: 조선 10대 왕으로 조선 역사상 대표적인 폭군)을 그리워하는 대목’과 ‘임과 이별하는 대목’은 어머니가 불렀던 육자배기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다음은 ‘임과 이별하는 대목’ 중 어머니가 가장 혼신에 힘을 다해 역설적인 어조로 불렀던 한 부분을 글로 나열하고자 한다.​

"사라 지~고, 창창 밭을 어느 누구가 갈아 줄꼬 “
“태후장에 좋은 술은 어느 누구가 맛을 보리”
“어린 자식 애기 볼래 어미 간장 다 녹는다
 

“우리 임 떠날 적에 충분 길에 손길 잡고”
“눈물짓고 하는 말이.. 울지 마라! 내 사랑아. 울지 마라! 내 여인아!!”
“내가 가면 아주 가냐. 아주 간들 잊고 가냐”
“너와 나와 맺은 맹세! 독으로도 끊으려고 끊지 말고”
“백 년 천년 살자더니...”
“네가 먼저 변할 줄을 나는 천세(千歲) 몰랐네”

그리고, 늘 마지막 독백 후렴구에 막내아들의 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이런 표현을 추가하셨다.

“내 아들놈아! 내 막 두야.. 천년이나 만년이나 너와 내가 같이 살자더니...

내 운명이 찾아오면 할 수 없네” “내 막둥이! 내 막둥아!! 천리만리 가도 못 잊겠다.”

​솔직히, 유년시절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육자배기는 아버지와 한바탕 싸우시고 술 한잔 걸치고 불러서인지 그때 당시 어린 나이에는 듣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머니의 육자배기는 그 맛을 더해 갔었다. 1999년 방송 VJ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 내 고향 진도군 조도면 신전리 '겨울나기' 촬영차 내려가 밭일하면서 불렀던 어머니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 노랫가락 역시 ‘장녹수가 임을 그리워하는 대목’과 ‘임과 이별하는 대목’이었다.

​자신도 나이가 익어가는 것을 알았는지, 농익은 어머니의 노랫가락은 애절함의 끝이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한 90일 동안 육자배기를 두 번 더 들을 수가 있었다.

​호흡하기에도 힘든 상태에서 깊은숨을 몰아 내쉬며 들려줬던 어머니의 육자배기는 이젠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녹화해 놓은 영상자료가 아직도 남아 있어 어머니를 추억하는데 귀한 보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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