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진성영의 섬이야기

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먹이려는 그 마음에서 우러나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은 싸하다. 여정이 힘들고 찢어지는 아픔이 엄습할지라도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한 줌의 흙이 되기를 원한다.

지난봄부터 낡고 헐거워진 기존 어머니 집을 내리고 그 위에 새집을 짓기 위한 일명 '어머니 새집 지어주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집 짓는 동안 어머니는 서울 큰누님 집에 4개여 월을 머물게 된다.
 

7남매에게 남긴 어머니(강복덕님: 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전길 소재)의 마지막 선물 ⓒ석산 진성영

봄이 가고 초여름이 찾아 올 무렵, 어머니는 그리도 내려가고 싶었던 고향의 흙을 밟는다.

7남매 중 막내아들도 서울생활 청산을 선언하고 따뜻한 어머니 품을 찾아 8월 말 고향으로 낙향하기에 이른다.

어머니와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낸 나는 추수의 계절을 맞으며 어머니의 놀이터 격인 밭을 일구고 콩, 참깨, 수수 등을 깊어가는 늦가을까지 수확을 하며 어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머니는 가끔 나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때 나는 시간 안에 가을 추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내게 직,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줄곧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밭일을 하시고 집에 와서는 그동안 수확한 참깨, 수수 고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항아리에 참깨가 가득 채워지던 날!

나를 부르셨다. 서울에 살고 있는 세 자매에게 보낼 참깨와 황칠 잎을 골고루 나누어 택배로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광주에 계시는 둘째형 앞으로 참깨와 장어 한 마리를 함께 보내라고 해서 또한 택배로 보냈다.

목포에 계신 큰형과 셋째 형에게는 내가 서울 일 보러 갈 때 목포에 들러 직접 갔다 달라고 하시며 다시 항아리에 보관하고 계셨는데.. 그 사이에 어머니는 말을 할 수도, 사람을 알아볼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남루한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은 평생 흙과 한 세월의 징표가 되었다.

더 이상 어머니의 손길 닿는 농작물을 받을 수도, 맛 볼 수도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지듯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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