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서점에 갔더니, 어느 젊은 시인이 ‘계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술이 있을 때 견디지 못하고/ 잽싸게 마시는 놈들은 평민이다/ 잽싸게 취해서/ 기어코 속내를 들켜버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술 한 잔을 다 비워내지 않는 놈들은/ 지극히 상전이거나 노예다/ 맘 놓고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놈들은/ 권력자다//한 놈은 반드시 사회를 보고/ 한두 놈은 반드시 연설을 하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잡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잰다// 한두 놈은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슬슬 곁눈질로 겉돌다가 마침내/ 하필이면 천민과 시비를 붙는 일로/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비극을초래한다/ 어디에나 부적응자는 있는 법이다/ 한두 놈은 군림하려 한다/ 술이 그에게 맹견 같은 용기를 부여했으니/ 말할 때마다 컹컹, 짖는 소리가 난다// 끝까지 앉아 있는 놈들은 평민이다/ 누워 있거나 멀찍이 서성거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먼저 사라지는 놈들은 지극한 상전이거나 노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은 놈은/ 권력자다/ 그가 다 지켜보고 있다.’ (류근, ‘계급의 발견’ 전문)

무릎이 탁, 쳐진다. 공감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젊은 시인의 분석이 맞는지, 오늘밤에는 실험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일었다. 기왕 생각이 이쯤 이르게 되었으니 문득 한 선배의 말씀이 불쑥 떠오른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만한,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수묵화가(그는 접장질하며 절필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잠시 위장폐업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들려주는 ‘인간 분류법’이니, 옮겨 적어보기로 하겠다.

먼저 신선이다. 학과 구름을 타고 다니는 전설이난무하고 때때로 도술에도 능통하다. 그들의 바둑두는 모습을 잠깐 엿보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나무꾼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뿐 여직 그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번째로는 선비다. 삶이 고절하여 그 뜻이 깊고, 세상사 흔들림 없이 제 소신을 목숨처럼 걸고 지킨다면 그는 반듯한 선비다. 말이 능하고 이론에 승하고 사리 분명한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재물을 탐내지 않는 성품을 지니기는 했으나 당파를 짓고 현실감이 어두운 게 흠이다.

세 번째로는 건달바다. 인도신화에서는 천상의신성한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신이었다. 그 소마는 신령스런 약으로 알려져 왔으므로 건달바는 훌륭한 의사이기도 하였으며, 향만 먹으므로 식향(食香)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음악을 담당하는 신이었다.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정법을찬탄하고 불교를 수호하였다 하여, 위장 폐업한 화가선배가 일컫는 건달바는 음주가무를 지극히 즐기고 유유자적 풍월을 잘 읊는다. 갑삭한 내 깐에는 신선이나 선비는 못되어도 건달바쯤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만만치가 않다.

네 번째로는 깡패다. 의리를 목숨처럼 여긴다고는 했으나, 패거리 짓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지들끼리도 치고 패고 칼부림하는 걸 보면 의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치명적인 것은 지들이 마치 건달인 양 착각한다는 거다.

다섯 번째로는 양아치다. 인간을 분류하는 것 중에 가장 저질로 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양아치인데, 구겨진 종이폐품을 대바구니추령에 훔쳐오고도 스스럼없이 고물상 주인 몰래 돌덩이를 집어넣고, 오줌을 싸서 무게를 부풀린다. 

조성국 시인.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 해서 상종도 못할 위인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이 최우선이며, 깡패인 척 위장도 제법 잘하는 인간망종이다. 가담가담 정치인과 내통한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인이다. 건달바의 기질이 농후한 그 화가선배가 ‘사람 취급을 할 것도 못 된다.’며 손사래 치는 줄 뻔히 알면서, 공연히 내가 운동권 전력에다 진보 흉내 좀 내며 정치하는 친구 얘기를 거들먹거렸다가 입주댕이만 살아있다고, 상뒤집고 술병 깨 들며 윽박지르는 통에 혼비백산 도망쳐 나온 적이 여러 번이나 있었다.

이쯤해서, 여러분도 어느 계급, 어느 분류 사람인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조성국 시인은 광주 염주마을에서 태어나 1990년 <창작과 비평> 봄호를 통해 작품활동을 했고, 201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동시를 발표하며 동시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슬그머니>, <둥근 진동> 등이 있으며 동시집으로는 <구멍 집>이 있다.

**윗 칼럼은 전교조광주지부가 발행하는 <광주교사신문> 199호에 실린 내용을 재게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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