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목숨만은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명박

40여 년 전 기억이다. 수술한 경험이 있다. 큰 수술이어서 결과예측이 불명. 수술 직전, 아내의 눈을 보았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보는 아내의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고 미안했다. 잠시 후 마취. 그 순간 살아온 40여 년의 과거가 순식간에 스쳐 간다. 그리고 깜박했다.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눈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생소하다. 그러나 한 가지. 아 아 살아있구나. 아내가 손을 잡는다. 따뜻하다. 인생은 이처럼 따뜻한 것인가. 소중한 인생이다. 바르게 살아야지.

■돌아오지 못하는 강
 

중동으로 출국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 마나마에서 마이 빈트 모하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문화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 SNS 갈무리

한 번 건너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강이 있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강이다. 살아있는 생물은 한사코 이 강을 건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똥통에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살고 싶다는 사형수의 절규는 처절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자살을 볼 때 이 보다 더 큰 고통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던 인간의 최후와 부모와 동생과 자신이 함께 목숨을 끊은 이기붕 가의 비극. 역사는 죗값을 치렀다고 말하지만 비극임은 틀림없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천만에다. 끝이면 왜 살겠다고 바둥거리는가.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목숨을 끊겠느냐고 한다. 남의 말이라 쉽게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끝’이라 한 글자 뿐이다.

검사들이 자살한다. 최고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다. 살아생전에 ‘백호야 내 배 다칠라’ 두려울 것 없는 삶을 누린다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검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얼마나 깊고 깊은 고통에 시달렸겠느냐는 생각도 하지만 이것이 자업자득이라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평가이고 보면 인간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권력과 명예를 양손에 들고 기세등등 살았던 인간들의 죽음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복수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임은정, 김기춘·우병우

죽음보다도 더 소중한 명예라고 말한다. 과연 목숨을 버리는 이유가 단지 명예 때문일까. 명예를 더럽히느니 차라리 이 꼴 저 꼴 보지 않고 죽는다는 생각일지도 모르나 실은 명예보다 살아가면서 겪을 모멸 때문이 아닐까. 왜 부당한 압력을 뿌리치지 못했을까. 불의를 응징하는 검사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미 깨진 접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는 진실을 밝힐 뿐이다.’

윤석열 검사가 한 말이다. 더 말하면 잔소리다. 임은정 검사도 있다. 법정 문을 잠가버리고 소신대로 구형한 임은정 검사. 이들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모의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뇌까리는 김기춘과 검찰에 출두하면서 냉소를 흘리는 우병우도 빵빵한 검사였다.

민주주의를 뿌리째 뽑아 탈탈 털어버린 댓글만행의 하수인으로 구속된 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엄청난 짓을 저지르면서 그것이 죽음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다. 그런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찬사는 못 받을망정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담한 일이 벌어져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남재준의 말이다. 분노로 일그러진 입이 찢어질 듯 토해내는 남재준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분노한다. 검사들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은 진정 누구인가. 누가 그들은 죽음의 강으로 몰아넣었는가.

남재준은 그들의 명복을 빌 자격이 있는가. 용서부터 빌어야 할 것이다. 월사금 내듯 매달 상납하는 5천만 원의 특수활동비는 누구 돈인가. 범법자가 누구인가. 별 네 개를 어떻게 달고 다녔는지 의심스럽다.

똑똑하기 이를 때 없는 검사들이 찍 소리도 못 하게 대의도 명분도 없는 불법을 요구한 남재준이다. 국정원에 파견 온 검사들에게 가짜 사무실을 차리도록 하고 가짜 서류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할 짓인가.

자살한 검사의 영정 앞에서 검사들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고분고분 말 잘 들으면 출셋길이 보장된다는 생각으로 남재준의 말을 잘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목숨을 버려야 하는 비극이다. 그 어려운 공부를 한 결과가 이렇게 끝날 줄이야.

■모두 이겨 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쌀이라고 해도 끓어야 밥이 된다. 밥이 끓는 동안 나쁜 세균도 죽는다. 끓는 고통을 이겨 쌀은 인간 생명의 원천이 된다.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고통을 이겨 낸 수천만 국민은 아직도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 국민의 고통을 검사들이 모를 리가 없다. 촛불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검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방해혐의로 장호중 부산지검장과 이제영 대전 고검 검사가 구속됐다. 이들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변00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목숨을 끊었다.

댓글 관련 압수수색에 대비, 가짜 심리전단 사무실을 차리고 가짜 서류와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침을 받은 혐의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장호중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겠는가.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적폐 청산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자살한 검사의 가족은 남편을 그 지경에 이르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절규했단다.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검찰조직에서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항의다. 아니 그 일을 자청해서 맡기를 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하물며 법을 응징하는 검사임에야 더 말할 게 있으랴.

지금까지 검찰이나 국정원은 공포의 대상이었을지는 몰라도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존경에 대상이었던 언론도 이제는 ‘기레기’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적폐도 저지른 자들의 책임이다.

■국민의 눈은 무섭다

과오는 자신의 눈에는 안 보여도 남의 눈에는 잘 보인다. 잘 보는 눈이 바로 국민의 눈이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국민의 눈을 비켜 가지 못한다. 억지로 잘못을 만들어 억압하던 정권이 바로 이명박근혜 정권이다. 그들은 국민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어느 정권이든 같다. 이제 촛불의 위력을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피해 갈 수가 없다.

내 눈에 들보는 보이지 않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아무리 작은 정권의 티눈이라도 보이게 마련이다. 문재인의 개혁정부는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개혁에 대한 국민의 갈망과 전 정권들의 부패무능이 가슴에 사무쳐 있기 때문이다. 낙관할 것인가. 아니다. 끌어 내리려는 부패세력들의 끈질긴 기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 내부를 포함한 ‘과거’ 기득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세력들. 자신들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이 불편한 세력들. 판이 요동치는 것이 불안한 세력들의 반격이 거세진다. 이들은 ‘정치 보복’과 자신들 또한 희생자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흔히 인사는 만사이자 망사라고 한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만사요 아니면 망사라고 비난한다. 터무니없는 음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일 수도 있다. 떠도는 소문이라고 무시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특히 기득권을 상실한 세력들의 반격은 죽기 살기다. 망사면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홍준표가 말했듯 바퀴벌레는 기회만 있으면 기어 나온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도 몇 몇 바퀴벌레들로 인해 신뢰를 상실할 수 있다. 국민의 신뢰상실이 얼마나 치명적 장애가 되는지는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검찰과 국정원의 대변신을 국민 누구나 열망하고 있다. 변화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 것이다. 이제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밝은 세상에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면서 함께 살아야 한다. 목숨은 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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