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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마음의 안식 - 허영아 작가추억의 '할머니의 밥상' 캔버스에 담아

정성으로 차려진 한 끼 식사는 결핍을 지닌 현대인의 주린 배를 든든하게 한다. 정이 깃든 밥상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자 집밥으로 대변된다.

집밥은 사먹는 밥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따뜻한 정이 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박한 반찬 몇 가지만으로도 허기진 배 뿐만 아니라 허기진 마음까지 끌어안는다.

(왼쪽) 허영아 -상(想)-할머니의 마음, 50×60cm, Oil on canvas, 2017. (오른쪽) 상(想)-정월대보름, 60×60cm, Oil on canvas, 2017.

허영아 작가는 집밥을 그린다. 그는 각박한 세상에 치일 때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일정기간 동안 할머니와 지낸 그는 자신을 위해 매끼마다 밥을 지었을 할머니의 정성을 작품에 담는다.

정월대보름에는 땅콩과 부럼을 깨먹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다. 겨울에는 청국장을 끓이고 더운 여름엔 콩국수를 해먹는 할머니의 메뉴 선정은 소재가 마를 날이 없이 끝이 없게 쏟아져 나온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때가 되면 바로 바로 무엇을 먹을지가 생각이 나는지 할머니의 메뉴선정은 기가 막혔다고 허영아 작가는 생각한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할머니의 밥상을 그림으로 재현하기 위해 손수 상을 연출한다. 직접 상차림을 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보았던 기억을 추억한다. 어린 손주를 위해 산에서 나물을 캐고 바다에서 직접 잡은 싱싱한 재료를 다듬었을 할머니의 모습과 현재 그의 모습이 중첩된다.

(왼쪽) 허영아 - 상(想)-정월대보름, 50×50cm, Oil on canvas, 2017. (오른쪽)상(想)-점심, 54×59cm, Oil on panel, 2015.

직접 상을 차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한 뒤 준비한 음식을 식구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그는 중학생이 된 아이가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종종 자기 자신을발견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사각형의 캔버스 틀을 벗어나 과거 모든 계층에 사랑받은 소반의 모습을 띤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둥그런 양은 상, 육각형과 해바라기 모양의 상 등 작품의 틀을 실제 소반의 형태로 제작한다. 상의 다리는 생략한 채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상의 모양을 통해 옛 추억을 더듬는 향수를 느낄 수 있다.

허영아 작가의 상차림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예상할 수 있다. <상(想) - 아침>은 자신은 아침을 먹지 않아도 하루를 건강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침상을 차린 마음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허영아 - 상(想)-진수성찬, 153.0×100cm, Oil on canvas, 2017

크지 않은 양은 상에 하얀 쌀밥과 조기, 장조림, 계란말이 등 입에 군침이 도는 밥상을 재현한다. 더운 여름에 밭일을 하다가 간단하게 챙겨먹으려고 차린 듯한 <상(想) - 점심>은 국수를 삶아 잘 익은 열무와 함께 한 젓가락 하려는 찰나를 포착한다.

맑은 조갯국, 맛있는 소세지 부침, 잘 익은 고등어와 총각김치가 보이는 <상(想) - 저녁>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세 식구가 모여 오늘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먹는 밥상이다.

허영아 - 상(想)-저녁, 99×58.5cm, Oil on panel, 2016

작품의 관찰자는 정중앙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상과 상에 차려진 음식을 인식할 수 있다. 이 음식들은 먹기 직전 혹은 막 먹기 시작한 모습이다. 접시에 차려진 음식, 수저 등은 서로 다른 시점을 취한다. 상 위에 펼쳐진 다양한 시점은 작가가 음식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밥상을 내오기까지 맛있게 보이고픈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임을 읽을 수 있다.

끼니를 때우는 고민마저 시간낭비가 되어 버린 지금.
한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인 주부.

나에게 밥상은 항상 숙제이자 임무이며, 때로는 부담이 되는 존재이다.
하지만, 아이와 남편에게 내가받았던 우리 엄마의 밥상과 같은
푸근함을 주는 일이 싫지는 않다.
그런 밥상을 차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작업노트 中

프로필

올해로 마흔인 허영아 작가는 전남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엄마인 현재 누군가 자신을 위해 밥을 차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밥상을 그리기까지 여러 생각들이 가지처럼 뻗어나가 지금의 상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주로 광주에서 활동해왔으며 올해 처음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늦게 발을 디딘 만큼 억눌렸던 열정이 꾸준하게 빛을 발하길 바라본다.

정채경 기자  gjin201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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