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의 영화산책

이 영화는 조선시대 인조시절의 병자호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 제목이 [남한산성]인 것은 그 시나리오가 김훈의 소설[남한산성]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란다.

난 소설[남한산성]을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남한산성]에 관련된 내용은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에 반드시 팩트가 있겠지만, 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그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수없이 다양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게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걸 정확하게 알아야 작가의 관점과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경우가 많아서, 팩트와 픽션을 가려낸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2000년에 들어서서 팩트와 픽션이 뒤엉킨 ‘팩션’이 워낙 유행을 타면서, 픽션이 지나치게 설친다. “팩트를 그토록 뒤틀어버리고선, 그걸 ‘표현의 자유’라는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궁금한 게 ‘김상헌의 자살’이다. 병자호란을 이야기함에 주인공은 인조임금 그리고 두 신하 협상파 최명길과 강경파 김상헌, 세 사람이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10가지 이야기들 중에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그 자자한 이야기를 일찌감치 들어왔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후금의 홍타이치에게 삼배三拜-구고두九叩頭하며 그의 신하를 자처하는 굴욕에, 김상헌이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아들들이 알아차려서 살려냈다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건 감독이 만들어낸 픽션이다. 감독은 왜 이토록 지나친 픽션을 만들었을까? 자살에 실패한 뒤에 그의 행적에 그 대쪽 같은 사림士林의 기개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자살실패가 그토록 강경했던 척화파斥和派의 주장이 주변의 비웃음에 묻혀버리는 게 안타까웠을까? 그래서 이 영화처럼 “시퍼런 장검으로 장렬하게 자살했다.”는 걸로 함축하여 결말지어야겠다며 과감하게 상징하려했던 게 아닐까?

인터넷 영화마당에서 다시 예고편을 보면서, 영화 전체를 되새김질해 보았다. 그렇다. 이 영화를 겉으로 보기엔 최명길의 협상파와 김상헌의 강경파가 세치 혓바닥의 서슬 퍼런 칼날을 휘날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 싸우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속으론 감독이 김상헌 쪽에 서서 영화의 모든 걸 짜 맞추어 가고 있다.

과장하자면 최명길(이병헌)마저도 김상헌을 돋보이게 하려는 조연이나 페이스-메이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① 이 영화가 냉혈한 김윤석으로 시작하여 따뜻한 김윤석으로 끝난다. ② 중요한 조연들(특히 대장장이)이 김윤성의 캐릭터를 미화하는 역할을 한다. ③ 김윤석은 보수파의 실세이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보수파 벼슬아치는 저질이다. 그 저질들은 그를 더욱 훌륭한 ‘보수파’사람으로 돋보이도록 만든다. ④ 그의 자살 실패가 찌질하게 못난 사례로 오늘날 역사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장렬하게 자결’하는 모습으로 드높여서 그려낸다. 이걸로 미루어 보건데, 이 감독은 ‘참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제’하는 ‘참다운 보수세력’을 목마르게 갈망하는 듯하다.

나는 이 감독의 관점을 ‘보수파’로 보아야할지 ‘민주파’로 보아야할지 고민스럽다. 그의 다른 작품[수상한 그녀]를 ‘보수파’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일단 그를 ‘보수파’감독으로 분류하겠다. 전쟁장면을 만드는 기술과 내공이 조금 약하다. 제작비가 부족했을까?

우리나라에 보수파 감독 중에서 내공을 잘 갖춘 감독을 만나기 참 어렵다. 우리나라 보수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감독의 작품에 돈 좀 써라! 매갑시 어버이연합이나 국정원에 “밑빠진 도가지에 물붓는 짓” 그만 두고, 짜잔하게시리 ‘블랙리스트’나 음습하게 만들다가 들통 나지 말고, · · · . *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보수파 A0.

이 영화에 제대로 빨려든 관객들은 주저없이 “아! 김윤석! 멋있네~!”를 먼저 내뱉은 뒤에 “역시 이병헌도 . . .”라고 찬탄하거나, 김윤석과 이병헌을 함께 찬탄하면서도 그 중심은 김윤석의 매력에 쏠려든 짤막한 멘트를 날릴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사에 자기 나름대로 얼마쯤의 노가리를 풀어낼 줄 아는 논객(?)은, 안동 김씨의 폐단이나 성리학의 근본주의적 성향에 염증 또는 사색당쟁에서 노론의 오래 묵은 패악질 · · · 을 주절거리며 이 영화에 약간 씨니컬한 비아냥을 토해낼 것이다. 이게 모두, 감독이 겉으론 은근하면서도 속으론 노골적으로 김윤석을 미화하는 연출을 했기 때문이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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