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을 보며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 빈국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분석(2014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급에너지의 95.8%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에너지수입액은 1,741억$로 국가 전체 수입액의 33.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5년에 비해 약 3배 증가한 추세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에너지 안보가 매우 취약한 국가다.

이의 타개를 위해 역대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매진하였는 바, 그 결과 국내 에너지생산량은 4,500만 toe(석유 1톤을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양)에 이른다. 그 중 원자력 발전을 통한 생산이 72.6%를 차지한다고 하니 원자력 발전소의 비중을 실감할 수 있다.
 

김지형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 결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이런 한국적 에너지 수급 상황 속에서 지난 10월 21일 기나긴 90일간의 토론 대장정이 끝났다. 토론의 핵심은 원전 건설을 재개해 에너지 생산량을 늘리느냐, 아니면 세계적 탈원전 추세에 발맞춰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느냐였다.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재개 가동 여부를 묻는 공론화위원회의는 일반국민 중 시민참여단 471명을 선정하여 지난 7월 24일 출범한 이래 14차례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10월 21일 원전 건설 재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내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원전 건설 재개 결정이 국내 에너지 수급 상황에 견주어 잘된 결정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나는 결정 내용이 아닌 그 과정에 박수를 주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국가의 정책 결정에 이처럼 공론의 장을 만들어 주고 장고의 토론을 거쳐 잉태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결정한 적은 없었다.

90일에 걸친 토론은 조셉 베제트가 말한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에 다름 아니다. 숙의(熟議)는 ‘의논을 익한다’는 자구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의미는 단기성, 단발성 의논이 아닌 충분한 대화와 토론 의 시간 속에 무르익은 의논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기에 숙의 결과 나온 결론은 투표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숙의는 투표보다 값지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신고리 원전 5ㆍ6호기 재가동 결정은 한국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색없다 하겠다.

토론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다. 대한민국은 토론 빈국이었기에 대한민국의 민주의의 역시 공허했다. 주입식 교육이 판치는 학교 현장에서 토론 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뒷전에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었다. 토론 문화는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이르러 서서히 개화했다.

토론이 성숙한 민주주의의 바탕임을 간파한 노 대통령은 직접 검사들과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불모의 토론 텃밭에 한 알 밀알이 되고자 했다. 토론은 노무현 정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사회 각 분야에서 토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학교 현장에도 토론 문화가 서서히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학교에서 고1들을 대상으로 토론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출발한 토론의 목적은 상대를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논리적 설득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는 이론과 실전을 병행하며 토론 교육을 진행해나갔는데, 토론의 귀결은 언제나 어느 팀이 승리했느냐였다. 토론의 과정과 내용의 질을 따지지는 않은 채 그저 결과에만 집착했던 터였다. 지금 보니 내 토론 수업은 엉터리였다.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토론은 내 토론 교육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시민참여단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찬반 양측의 발표를 충분히 들었고, 28일간의 숙의 기간을 가졌으며, 석 달에 걸쳐 14차례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밀양 주민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원전 백지화를 요구하며 108배를 올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국민들은 매주 공론화위원회의 언론 브리핑을 통해 그들이 어떤 안건을 심의ㆍ의결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긴 호흡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토론인가. 섣부른 결론과 승부를 물 속 깊이 감추고 장강의 물처럼 샛강과 실개천의 물을 모아가며 도도히 흐르며 서서히 유장하게 민주주의의 바다로 나아가는 토론 대행진.

나는 이를 보며 우리 역사상 이런 토론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권을 잡은 자들은 국민을 미성년 학생 취급하며 그들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며 합리화하거나 속이기에 바쁘지 않았던가.

나는 이번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과정을 거쳐 나온 결론이라면 무조건 따르겠다. 잘 무르익은 의논인 숙의를 거쳐 나온 결론인 만큼 무얼 더 바라겠는가.

앞으로도 국민적 관심사가 큰 정책 결정이 필요할 경우 정부는 최루탄과 군홧발 대신 마이크와 마당 그리고 시간을 충분히 제공하여 제한적인 직접민주주의를 보완하고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이길 빌어본다. 왜? 토론 없는 정책 결정은 맹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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