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11시 국립5.18민주묘지서 35주기 추모식 개최

1980년 5월 16일, 도청 광장에서 거행된 제3차 민족민주화대성회엔 2만이 넘는 군중이 집결했다.

대회의 절정은 전남대 총학생회 회장 연설이었는데, 이날부터 광주시민들에게 박관현은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민주화의 상징이자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쿠데타군이 진주하면서 검거 대상 1호가 분명한 박관현은 들불야학 선배 윤상원의 권유로 일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운명의 18일부터 광주에선 그를 볼 수 없었다.

2년 뒤, 서울에서 피검되어 광주교도서 수감 중 단식투쟁으로 맞서다 단식 40여 일만에 운명했다. 시신은 경찰이 강제 탈취하여 고향 영광으로 강제 이송되었고, 5년 뒤 1987년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망월동 묘역으로 다시 이장하여 하였으나 그마저도 경찰이 막아 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때 장의차 안에 쏜 최루탄으로 말미암아 열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박관현은 '광주의 넋'으로 '들불열사'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 있다. "민주화의 새벽기관차' 박관현 열사의 35주기 추도식이 기다려진다.

박관현 열사 35주기 추모식은 오는 12일 오전11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 차승세 님은 노무현재단 광주지역위원회 기획위원장과 광산구 수완동에서 사회공유경제연구소 대표, 오월공동체 바보주막 대표 등을 맡아 지역공동체에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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