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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두의 기차별곡] 홀로코스트에 동원된 기차
  • 손민두 KTX 기장(코레일 사보 기자)
  • 승인 2017.09.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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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을 실은 모든 기차의 종착역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나 된다. 집시나 부랑자 등 비유대인까지 합치면 1100만 명에 달한다. 오직 유대인이란 것과 나치가 보기에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20세기 최악의 인류 잔혹사를 두고 유럽 사회는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는 어원의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이름을 붙였다. 희생 당사자인 유대인들도 히브리어로 대재앙을 의미하는 ‘쇼아(ha-shoah)’로 부른다.

1939년, 히틀러는 독일 순수 혈통, 즉 아리아인에 의한 유럽제국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유대인 비극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폴란드를 필두로 유럽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한 독일은 ‘반유대주의 종족법’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최하위 인종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모든 유대인을 수용소에 가두어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독일은 점령지 폴란드 각 지역에 죽음의 수용소를 만들어 유럽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색출해 기차에 실어 이곳으로 보냈다. 이로써 인간이 편리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발명한 기차가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학살에 동원된 슬픈 역사를 갖게 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벨기에,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등 유럽 전 지역에서 체포된 유대인들은 기차를 타고 죽음의 수용소를 향해 출발했다. 이들은 기차를 탄 순간부터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독일군은 칸마다 사람이 탄 숫자를 적는 단위를 ‘명’대신 독일어로 조각이나 개수를 의미하는 ‘슈투크(Stück)’라고 적고 이들을 화물로 취급했다.

희생자들의 이동과정은 참혹했다.

대부분 화물이나 가축을 싣는 화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들이 탄 화차는 상부 좌․우에 철망으로 짠 두 개의 작은 창문을 제외하면 외부로부터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없는 참담한 구조였다.

1개 화차 당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냉․난방 시설도 없는 화물칸에서 물이나 음식, 위생시설도 없이 길게는 2주일 동안이나 버텨야 할 때도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면 도착할 때까지 문도 열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가 수용소에 당도하면 모두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수용소에 도착한 희생자들은 노동 가능여부로 삶과 죽음의 길이 갈렸다.

몸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겨우 노동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머지는 즉시 가스실로 보내져 살해됐다. 강제노동자 가운데서도 과로나 질병·굶주림 등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골라내서 제거했다.

1941년 9월부터 시작돼 1945년 1월 옛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할 때까지 벌어진 유대인 집단학살은 인류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온갖 잔인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총살이나 교수형뿐 아니라 사람을 가스실에 몰아넣고 ‘치클론 B'라는 신경가스를 이용해 순식간에 수 백 명을 질식사시켰다. 더욱 끔찍한 일은 수용된 사람들을 의학 실험 대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고결함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살해된 시체들도 소각로로 보내져 모두 불에 태웠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한 곳에서만 백만 명의 유대인과 그 밖의 소수민족을 합해 약 200만 명이 학살되었다

유럽에서의 유대인 박해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나치점령 때처럼 조직적인 탄압이나 학살은 없었다. 결국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할 수 있는 악행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인류사회 전체에 심대한 도덕적 훼손을 가져왔다. 인류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파괴했으며, 철도의 역사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나치가 건설한 수용소들은 모두 철도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희생자들을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기차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치가 철도역과 가까운 곳에 수용소를 건설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폴란드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독일 쪽에서 들어오는 철로의 길목에 위치한 철도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밖에 다른 수용소들도 모두 철도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희생자들에게 철도는 참혹한 비극이 기다리는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는 ‘죽음의 실크로드’였던 셈이다.

나치가 전 유럽을 점령한 지 불과 3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화학무기인 독가스 때문이었다. 또한 여기에 희생자들을 편리하고 신속하게 실어 나른 기차도 한몫했다. 홀로코스트는 기차를 가장 잔인한 목적에 이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기차에 다 지울 수는 없지만 20세기 최악의 인류 잔혹사에 기차가 동원되었던 것은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손민두 KTX 기장(코레일 사보 기자)  smd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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