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가 쏜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났다. 김대중정부에서 쏜 화살도, 그 이전 집권자의 공약을 빙자한 화살들도 잇따라 쏘아 올려졌다. 그 많던 화살들은 다 어디에 꽂혔는가. 과녁이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함부로 쏜 화살과 신중하게 쏜 화살은 목적지를 달리했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도 어느 탁상머리에서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기획서들이 머지않아 수많은 화살이 되어 우리의 머리위로 쏟아지지 않겠는가.

참여정부에서 호남배려의 명분으로 크고 작은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위정자들의 성과주의가 빚어낸 전시성 사업이라는 비판과, 숙원사업이라는 명분쌓기 사이에서 정작 민초들이 들러리는 아니었는가. 줌뉴스는 창간특집으로 3부를 기획하여, 각각의 프로젝트를 점검하고자 한다. 무릇 만사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다. 워낙 거창한 사업이다 보니 그늘도 많았을 터. 당대의 그늘과 빛의 이치를 따져보는 일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의 임무일 것이다.

   
 

" 물이 차야 배가 뜬다. "

민주주의 성지 광주에 아시아문화의 저수지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아직 냉랭하다.

금남로의 밤. 1980년 5월을 광주시민의 함성과 피로 물들였던 자리에서 물끄러미 풍경을 본다. 동구청에서 설치했다는 녹색의 조명등이 가로수 마다마다에 매달려 애꿎은 나무들을 고문하고 있다. 버스 승강장에는 ‘문화전당역’이란 이름표가 붙었다.

다음날 오전. 조선대 앞에서 내려 옛 전남도청 뒤 인쇄소 골목을 끼고 걸었다. 해체된 건물들의 잔해 사이로 포크레인의 굉음이 계속된다. 예전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에 체온을 불어넣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문화전당을 만드는 일꾼들이 건물에 새겨진 그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해두었기를 바란다.

지난해 8월 29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같은 해 9월 27일 공포되었다. 특별법의 골자는 광주를 아시아의 문화허브(Hub)도시이자 미래형 문화경제도시로 조성한다는 것. 공포절차에 따라 6개월이 경과한 2007년 3월 말 특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제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문광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종합계획안 및 세부계획안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광주시는 이 계획안을 검토하여 7대 문화지구 조성과 문화도시기반 구축, 도시문화 활성화 등의 연차별 실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2006년 10월 31일자 경북일보 헤드라인 뉴스는 ‘문화도시, 지역차별 조장하나’ 제하의 기사로 장식됐다. 내용은 같은 달 26일 광주시의회와 광주.전남지역혁신협의회가 발표한 결의문에 대한 경북도의회와 경주시의회의 반발에 관해서다. 광주에서 뭐라고 했기에 발끈한 것일까.
 
광주시의회 등은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광주에서 추진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며 제정 반대를 결의했다고 한다. 경북도의회는 광주에서 합당한 후속조치를 하지 않으면 올해 광주에서 치러질 전국체전 불참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유세용 수사가 공약으로 정리된 이후 만 4년이 지났다. 그간 문화수도는 문화중심도시로 용어를 정립했고, 광주는 아시아로 지평을 열었다. 광주만의 특별법을 운운하는 자가당착과 근시안적 이해, 소모적 논란은 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책사업이라는 공감대 형성은 여전한 숙제다.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하겠다는 참여정부의 배려는 과연 성공적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추진기관인 문광부와 광주시의 온도차가 다르고, 참여의 주체라 할 시민사회의 인식편차는 한층 심각하다. 일반 시민들의 거리감은 어떨까.

그동안 문광부가 발주한 ‘문화중심도시운영전략’ 연구 등 각종 용역에서의 리서치 작업과 지역 언론사의 분석을 통해 광주시민 여론은 “조성사업 전반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있을 뿐 ‘동의나 비판 수준의 관심’이나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 참여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추진기관들의 일사불란한 공조는 여전한 관건이다. 지난 해 2기 조성위원회 구성과정의 난항과 송재구 위원장의 돌출 기자회견 파동은 불안정한 체계의 반영이다. 전당설계경기 당선작인 ‘빛의 숲’을 둘러싼 랜드마크 논란은 건축물과 공간을 이해하는 보수적 시야를 확인시켰다. 전당을 전유물쯤으로 치부하는 일부 예술인단체의 공연․전시공간 확대요구 역시 엄존하는 편차다.

광주지역 여론이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성 언론의 보수회귀와 취재 및 보도의 매너리즘을 우려하는 것이다. 관료주의와 수구적 기득권세력에 투기자본의 이해역학이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사업 등과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타지역에 비해 여론의 건강성과 결집력이 떨어지는 데 대한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2005년 10월. 전남도청 건물이 광주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5.18민중항쟁 때 시민군이 점거한 지 25년만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심장. 이 창백한 건물을 중심으로 구상된 전당이 ‘아시아의 문화메카’가 될 수 있을까.

예정대로라면 2010년 5월에는 국가예산 7천억원이 투입된 문화전당이 준공될 것이다. 작금에 광주 일원에서 준비되고 실험되는 많은 프로그램과 인력양성 과정이 성공적으로 연착륙되어 ‘문화창조와 교류의 저수지’에 물을 채우기를 안팎에서 기대하고 있다.

참여와 자율, 그리고 품앗이. 문화저수지에 채워질 물은 제반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미 많은 담론들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반복되고 있는 지적처럼 광주시민들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아냥과 무관심을 달고 다닌다. 조성사업이 소수 엘리트집단의 전유물이나 일부 인사들의 정치적 성과물로 인식되는 한, 그 괴리감은 더 큰 난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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