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색상들이 돋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수히 많은 점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들은 마치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처럼 보인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독특한 문양들이 붓의 농담에 따라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작품에 임하는 작가 임희진의 단단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비람바이>는 ‘우주를 움직이는 바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자연의 풍경, 일상 속 새로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의 다채로움을 위해 직접 천연염색을 하여 밑바탕을 다진다. 치자, 복분자. 블루베리, 오징어 먹물 등과 같이 천연재료를 직접 구하고 손질하여 많게는 서른 번이 넘도록 염색물에 담그고, 건조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선명하고 맑은 색이 돋보이는 작품이 된다.

임희진 - 비람바이 '내안의 풍경', 50×60,6cm, 와트먼지에 과슈, 2015

 

이후 가느다란 세필로 동그라미 문양을 그려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들을 자세히 보면 둥그스름한 문양이 붙어 있는 모양새다. 이 문양은 작가가 유학시절 우연히 목격하게 된 성충이 나비로 거듭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나비의 모양에 빗대어 고안한 것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작품에 몰입하여 이 문양을 즉흥적으로 반복해서 그린다. 이와 같은 문양의 응집은 무수히 많은 바람들과 희망적인 염원을 함의하고 있는 일종의 기호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내적 고뇌는 신체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작가의 의식과 회화가 만나 물아일체를 경험하도록 한다.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장시간 무아지경의 세계에 빠져들며 반복적인 수양의 과정을 강조하면서도 나비를 통해 본 자기 자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작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그 어떤 서명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고유한 색을 드러낸다.

작품의 진행 과정 내내 수행의 길을 걷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염색 과정을 비롯하여 하나 하나 문양을 그려내는 것까지 작업의 과정이 마음을 정화하고 다스리는 일종의 정신 수련의 결과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상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이미지화하는 작가 임희진의 작품을 통해 은근한 매력과 감동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임희진 - 비람바이 '꽃무릇', 50×60,6cm, 와트먼지에 과슈, 2015
임희진 - 비람바이 '숲길', 50×60,6cm, 와트먼지에 과슈, 2015

프로필

작가 임희진은 뉴욕 롱아일랜드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학을 전공하고, 조선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하였다. 독특한 문양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자기수양과 자아실현에 대한 작품을 해오고 있다. 그는 다수의 미술대전의 심사를 역임해오고 있으며, 박물관과 아트페스티벌의 큐레이터로 등 다양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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