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카치아파카스(이하 조지)와 같은 이와  사실의 진위 논쟁을 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는 단순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한 가지 사실에다 수많은 거짓을 퍼부어 진실을 희석하는 것이 조지가 행하는 일반적 거짓 형태다.

또한 상대방을 끝없이 분열시키는 것이 그의 거짓의 특징이다.  예컨데, 조지는 7월 20자 “반박문”에서는 정작, 반박할 대상인 5월 단체와 5.18 기념재단의 공동성명 대신, 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를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8월 4일자에서는 나만 물고 늘어진다.   

조지가  뻔한 사실을 두고 논쟁을 만드니, 말이 길어지고, 에너지 소모도 많다. 그러나 조지의  최근 반박문이 나 자신에 대한 거짓 정보로 일관하고 있으니, 별도리 없이 이 글을 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다음을 밝힌다.

1) 8월4일자 광주인에 실리고, 스스로가 여기저기 뿌려된 조지의 글은 7월 26일 그가 내게 보낸 이메일의 확장판인듯 하다.  나는 답신으로 그의 거짓 주장에 대해 반박했으나, 8월 4일의 그의 글에서는 그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 그 후 이메일에서 조지는 내게 법적 소송을  할 것이라 말했다. 내게 미국과 한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해 그들의 연락처를 보내달라고도 말했다. 따라서 지금 이 글이 조지의 주장을 반박하는 마지막 공개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3)  사실 조지는 나와 이메일을 통해 논쟁을 시작한 초기부터 빈번하게 내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해왔다.  이미 7월 23일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송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믿는다.  또한 그 모호한 법귀로 말미암아, 강자에게 유리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한국의 명예훼손법에 나는 반대한다.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국제학술세미나가 '광주일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 (Gwangju Diary: A Collective Memory of Democracy and Freedom)'라는 주제로 지난 5월26일 유엔본부(Conference Room 11)에서 5.19기념재단 주최로 열리고 있다. 도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 전 주한 미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대표적 진보적 한국학 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교수(맨 왼쪽)가 발제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더군다나, 백인 미국인 교수가 미국적을 취득한 재미 한국인에게 한국에서 취할 명예훼손 소송의 꼴이 가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소송을 감행한다면 회피할 생각은 없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따라서 조지가 법정소송을 행하려는 동안, 그를 직접 상대할 이유도 필요도 나는 없다. 

그가 변호사를 선임해 그로 하여금 나와 연락 하기를 바란다.(이 점은 이미 조지에게 통고했다).  변호사이던 누구이던 삼자를 통하지 않고 조지와 직접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4) 마지막으로, 이 글의 내용은 나의 개인 입장이지, 이 글에서 언급될 단체나 개인의 입장과 무관하다. 다시말해, 나는 그들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는다.  모든 존칭과 존어는 생략한다.

조지가 그의 문단마다 번호를 붙혀 왔으니, 나는 그 길을 좇아 반박해 나가겠다. 글읽는 사람들은 두 글을 비교해서 읽어도 좋으리라.    

1.

나는 단 한차례도 나를 “광주일지”의 단독 번역자로 소개한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공동번역 편집자의 닉 마마타스 (이하 닉)의 공과 우정이 너무 크고 깊다. 책이 어떻게 번역하게 됐는지는 2015년 5월 오마이 뉴스 기고문에서 밝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10872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에 온 나는 내 영어가 완벽하다고는 절대 여길 수 없다. 그래도 미국에서 영어글 써서 먹고 사니, 책 번역할 실력은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조지가 내게 보낸 이메일과 그리고 공개된 그의 반박문 속에서 곧잘 문법적 오류가 나온다.  우연히, 곧 인용할 조지의 이메일도 문법적 오류를 품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소위 내티브 스피커이자 대학교수인 조지의 변명이 궁금하기는 하다. 

궁금한게 한 가지 더 있다. 왜 나만 영어를 잘해야 하나, 정작 조지는 아직도 한국말이 서툰데?  조지가 광주를 들락달락한지도 대략  20년이 넘었고, 그 동안  두 명의 한국인 아내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어 수준이 간신히 의사소통은 하나, 한국말 책이나 신문을 읽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조지는 그의 수많은 이메일 중 하나에서 고백했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조지는 어디에서인가 그가 한국어 연설로 연설하자,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썼다.  그의 연설내용이 감동적이라서 그런 격한 반응이 나왔는지, 혹은 한국말하는 것이 기특해서 기립박수가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가 빈번히 번역글에 의존하다 보니, 특히 한국어 글에 대한 오해도 잦았다. 또한 글이 잘못 번역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국어 를 배우던지, 전문번역사를 고용하라고 몇 차례 충고했다.

2.

광주일지”를 번역 편집자 그리고 기고자인 브루스 커밍스와 팀 모두가 애초에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을 사실이다. UCLA Monograph  Series가 비영리 출판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4인은 “광주일지”를 절대로 절판하는 일이 없을거라는 편집자의 구두 약속을 믿고, UCLA와 계약을 맺었고, 책은 적어도 30여개 미국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였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오마이 뉴스 기고문을 참조하기 바람). 

조지는 애초부터, 내가 재단으로부터 4000-4800만원을 받고 판권을 넘겼다고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액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여러차례 밝혔다.  조지의  최근 반박문의 기초가 된 7/26일 이메일을 공동번역자 닉에게 비밀참조(bcc)로 보내면서, 조지는 내게 물었다. “그 돈 받아서 닉에게도 공정하게 줬니?” 한 마디로 내가 그 엄청난 액수를 혼자 챙겼다고 가정하고, 닉과 나의  반목을 꾀한 것이다.

굳이 내가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닉은 즉시 조지에게 답장을 보내,  내가 책에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그를 공평하고 평등하게 대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속된 말로 “그만해라”라는 충고도 조지에게 해줬다. 

그래서 밝힌다. 조지가 굳세게 믿는 액수는 터무니없고, 재단에게 받은 금액은 닉만 아니라, 팀과 커밍스에게도 적절하고 공정하게  배분됐다.  판권은 기증했고, 금액은 금년에 나온 개정판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개정판의 수고비였다.  

이 모든 것은 문서화됐고, 나는 서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5.18 재단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여하튼 금전이 오가니, 나도 “기증”이라는 말이 맘에 걸려, 김양래 상임이사님에게 말씀드렸다. 그 후로는 재단 측에서도 “기증” 대신 “판권 확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

조지는 “설갑수는 내가 그는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설갑수]가 30년 동안 CIA요원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 일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은  6월 14일 그가 팀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이다. 

 “To complicate matters, I believe Mr. Kap may also have mentioned all this to Donald Gregg, thereby possible bringing CIA attention to me.” 

우선 글을 해석하기 전에 명칭과 문법의 오류부터 바로잡자.  Mr. Kap이 아니라, Mr. Seol이 맞다. 한국을 20년 왕래하고 “광주일지”를 빈번히 인용한 조지는 내 성이 뭔지 구별하지 못했다. 또한 “possible”이  아니라  “possibly”가 문법적, 어법적으로 맞다. 

해석인 즉슨,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즉슨, 나는 설갑수가 이 모든 것을 도널드 그레그에게 말했고, 따라서 CIA가 나를 주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는 내가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또한 이 지리한 논쟁의 발단이 된 조지의 5월28일자 이메일 “518-CIA connection)에서 조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518 기념재단이 미국과 CIA에 밀접하게 다가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I think there is a real political issue about the 518 Foundation’s drawing close to the US and the CIA.“

그의 글 자체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믿기에, 달리 반박하지 않겠다.  또한 “중국을 통한 북한 압력은 소용없다”라는 그레그의 글을 국내 언론에 싣도록 돕는 일이 “30년동안 CIA에서 일한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표현으로 퉁칠수 있는 것일까?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4.

내가 그레그가 70년대 중반까지 일했다고 한 것은 오타였다. 그는 82년 즉 중반까지는 CIA에 적을 두며, 백악관 NSC에서 일했다. 글이 올라간 후, 비슷한 오타를 한 가지 수정했으나, 저 부분은 놓쳤다.  여하튼 오타는 나의 불찰이고, 따라서  그 글을 읽은 분들께  사과한다. 

나는 그레그가 80년 5.18의 결정당사자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한  조지가 그레그가 그렇게 중요한 인사였다고 믿었다면, 그의 책에서 다만 세 차례, 세 문장만 그레그를 언급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5월 22일 백악관 회의 이틀 전에 쓴 메모를 보면, 그레그가  미 군부와는 사뭇 다른 관점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의 메모의 링크: http://digitalarchive.wilsoncenter.org/document/122097

5.

나는 조자기 2000년 시민법정 기획에 참여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자면, 그렇게 판단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조지의 반박대로 단지 참여만 했다면, 조지는 그레그가 시민 법정에서 기소됐다는 잘못된 근거로 성명을 통해 그레그의 유엔 518행사 참여를 비판하기 전에   팩트 체크부터 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모르는 사실을 되는 대로 말한 것 아닌가? 

6.

또한 그레그는  그의 비판 성명에서 그레그를 명예손님(honored guest)라고 칭한 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주최측 그 누구도 그레그를 명예손님으로 부르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조지는 처음에는 그레그가 돈을 받았기 때문에 명예손님이라고 주장하다가, 그레그가 어떠한 댓가 없이 유엔행사에 참여한 것을 알려주자, 유엔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그레그에게 명예로운 일이니, 명예손님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개발했다.    

7.

그레그의 비판 성명을 실은 “스리랑카 가디안”이 7월15일까지 수정되지  않았다는 게 나의 기억이다. 그 기사가 따로 정정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다고 나는 나의 반박문에서 분명히  말했다.  조지 말처럼, 정정이 6월 26일 전에 이뤄졌다해도 애초 기사가 올라간 13일로부터 열흘 후였다.  다시말해, 518 재단과 깊은 유대를 갖고 있는 스리랑카의 유력지에 거짓 주장이 10일간 정정되지 않았고, 그후 정정 발표도 없었다. 이게 제대로 된 일처리로 보이는가?

8.

얼정한 사실에 거짓을 뒤섞는 것이 바로 가짜뉴스의 근간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방식이 조지의 화법이었다.  다만 조지에게 묻고 싶다. 내가 무슨 인종차별 발언을 했는지, 그가 백인남자의 특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역차별적 인종주의(reverse racism)가 가능한지를 묻고 싶다. 

9.

조지가 그의 주장대로 518 기념 재단이 그레그에게 보고하는 것처러 보이게 만들 의도도 없고, 생각도 없었다면,  왜 7월 23일  반박문에서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했는지 대답해야 한다. 조지는 518재단의 직원이 “나에게 보낸 이메일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함께 참조(CC)로 보내졌다.”라고 주장했다. (A few months later an email sent to me from a member of the May 18 Foundation’s staff was also cc’d to Donald Gregg.). 이메일은 참조(CC)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메일은 재단 직원 유인례가 재단의 국제연대 코디네이터로 승진했다고 발표한 집단 메일이었다.  이에 유인례가 이메일 통해 조지에게 항의하자 조지는 발언 철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지는 아무 해명없이 7월20일 반박문에서 위의 집단 이메일이 그레그에게도 보내졌고, 따라서 전 CIA요원 그레그를 5.18재단이 “친구”이자 “협력자”로 지칭했다고 비난했다.  그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과  그레그를 “명예손님”으로 우긴 억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패턴이 발견되지 않느가? 1) 사실 하나에 거짓말을 덧부쳐 초점을 흐린다 2) 거짓말이 드러나면 해명이나 사과는 절대 하지 않고, 다른 쟁점을 만들어 논점을 계속 희석시킨다.  보통 페이크 뉴스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10.

이미 말했듯이 조지가 팀의 자료를 무단 사용했다는 공방에 대해 팀의 공식입장이 곧 나올것이고,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가 더 이상 발언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다만, 팀이 제기한 문제의 책, “한국의 민중봉기” (5월의 봄: 2015)의 원저 출판사인 PM출판사의 발행인 램지 칸의 이메일을 조지가 공개한 이상, 그 범위 안에서 내 개인의 의견임을 전제로, 몇마디 덧붙이겠다.

먼저 PM 출판사는 팀의 주장을 옮곧게 살펴보지 않았다.  그냥 일방적으로 조지의 주장을 번복했다.  또한 워낙 소규모출판사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지의 책에 대해 팩트 체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것 같다.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단언컨데, 편집 과정에서 걸려지고 지적될 문제를 팀은 제기하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말미암아 분주한 팀이 입장 표명을 곧 하기를 바란다.

사실 출판사가 영세해도 편집일을 제대로 해야한다. “광주일지”를 발행한 UCLA Monograph도 금전적으로야 영세하기 짝이 없었지만 편집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편집 기간 8개월 동안,경력30년차의 편집자는 물론, 두 명의 한국학 교수와 한 명의 한국학 대학원생이 팩트체크와 인용 사례 하나하나를 점검했고, 내게 10 차례 정도 추가 설명과 자료를 요청했다. 

이를 좇아, 나 또한 “광주일지” 재판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저명한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 Magazine)의 팩트체커(fact checker)와 알 자지라 방송의 전 기자를 동원해 편집과 인용상 모든 문제들을 재점검했다. 이 과정은 이번  재단의 간행물 “주먹밥” 8월호의 내 기고문에서 간단히 설명했다.  

설갑수, 나는 누구인가?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편집 번역자.

나의 먹고사니즘은 조지와 나의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백인 노교수가 직접 내 개인 정보를 캐는 고약한 짓을 하셨으니, 나로서는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참 열없는 노릇이지만,  과정에서 조지의 무지와 악의가 드러났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먼저 조지는 내가 기자(staff writer)로 일한 “내셔널 언더라이터”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이 존재하지 않는 잡지라고 주장했다. 긴말 필요없이 다음의 웹사이트를 보기 바란다. https://www.nationalunderwriter.com/magazines

나는 조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재산 상해 보험 산업 정보 사이트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위의 잡지 “생명보험” 에디션에서 일했다.  내가 퇴사한 후, 내셔널 언더라이터는 두 차례 주인이 바꿨고,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도 시작됐다. 조지의 최근 기고문의 원형이었던 그의 이메일을 받고, 나는 이 점을 즉시 지적했으나, 조지는 이를 무시하고 그냥 글을 실었다.

또한, 내가 일했던 또다른 직장, MSCI는 투자회사인 모갠스탠리와 같은 회사가 아니다. MSCI는 소위 인덱스회사, 즉 금융 기업 데이타 분석 전문회사이며, 모갠스탠리에서 오래 전에 분사됐다. 두 회사의 합의에 의해,MSCI라는 약자는 분사된 회사가, 모갠스탠리는 원회사가 사용하기로 했다. 이 점 또한 조지에게 설명했는데, 그는 또한 무시했다.

조지가 말한 것처럼 모갠스탠리는 헤지펀드가 아닌, 일반 투자회사이다. 헤지펀드와 일반 투자회사를 구별하지 못하니, 사회학 박사학위 소지자 조지의 상식 수준이 의심스럽다. 아니면 나에 대한 악의 때문에 아무말 대잔치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MSCI ESG는 전세계 상장사들의 환경 (Environmental)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그리고 지배구조(Governance)를 평가한다.지배구조 분석이 내 전문분야였다. 여하튼 회사에서는 불성실하고, 게으른 존재였으나, 가끔 튀기도 해서 내가 쓴 리포트가  2014년 ESG 보고서 중 가장 많이 읽힌 보고서이기도 했다.      

사실, 학부 때 나름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고, 한 때 스스로를 혁명적 사회주의자라고 믿었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좌익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넘어넘어” 영문판씩이나 출간한 사람이 금융정보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우울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나름 틈틈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 할려고 노력했다.  그러지 않고는 미칠 것 같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한 일 중의 하나가 미국의 평노조원 잡지 레이버 노츠(http://labornotes.org/)에 한국 노동문제에 대해 기고하는 일이었다. 

미국이라 안심하고 실명 기고를 했는데 5-6년 전 사단이 났다. 회사 누군가가 내 기고문을 보고, 나의 상사가 아닌, 그 상사의 경쟁자에게 보고를 한 것이다. 경쟁자는나의 글을 적절히 내 상사를 공격하는데 사용했고,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정확히 말해, 나 때문에 그녀가 사퇴한 게 아니라, 나는 그녀가 밀려나야했던 많은 이유 중의 하나였다. 

솔직히 비참했다. 나의 정치적 글은 저들에게 위협은 되지 못한  장기판의 졸이였다. 여하튼 나는 힘없어서 살아남은 웃기는 존재였다.  그 후 나는 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폐쇄했고,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존재와 의식 간극에서 언제나 울쩍했던 나에게 2011년 월스트릿점령(Occupy Wall Steet)시위는 신나는 일이었다. 특히 주코티 공원을 점거한 시위자들이 매일 집회를 통해모든것을 집단적,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보며, 나는 80년 광주의 도청 앞 집회를 떠올렸다. 

당시, 한진 중공업의 노동자 김진숙이 크레인을 점거하고 장기 농성 중이었고, 뜻있는 시민들은희망버스로 호응하고 있었다.  2011년 10월9일 나는 그와 손전화를 연결하여, 주코티 공원월 스트릿점령 집회에서 연설하도록 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7758

http://labornotes.org/blogs/2011/10/south-korea-sit-connects-us-%E2%80%98occupiers%E2%80%99

이렇듯, 이러저러한 계기로 많은 젊은 노조운동가들과 친해졌고, 그들의 소개로 국제노조연맹(ITUC) 그리고 미전국노조 연합 중 하나인 UNITE HERE!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너무 기뻤다. 조지가 이메일을 통해, 내가 이들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그 누구도 나를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확인할 있도록 도와줄테니, 변호사 통해 연락해 달라고 대답했다 (이미 말한대로, 나는 더이상 그와 직접 소통을 하지 않으려한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일방적으로 글을 올렸다.

내 재산 관계에 대한 조지의 주장에 몇 마디 하겠다. 개인정보를 뒤져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개인 정보가 잘못된 거라면, 공개헤서는 안된다. 그 개인정보가 이 논쟁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내게 먼저 해명과 설명을 구하는 것이 맞다.  조지는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그레그는 정말 누구인가?  

미국 대학은 학생들이 위키피디아를 과제물에 인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오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미국 대학교수 조지는 그레그에 대해, 위키피디아를 인용한다.  그레그가 이란 콘트라 스캔들의 정점이었던 펠리스 로드리게스의 친구였으며, 그가 부대통령 부시를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외에 더 밝혀진 것은 없다.  자세한 설명은 위키피디아가 아닌 이 웹사이트를 참조했으면 좋겠다.  

https://www.brown.edu/Research/Understanding_the_Iran_Contra_Affair/profile-gregg.php

조지는 그레그가 피닉스 프로그램을 지휘했다는 주장을 위키피디어가 아닌 다른 근거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레그의 사과

5.18 에 대한 그레그의사과는 분명 미흡했고, 미국의 공식 사과가 필요 없다는 그의 입장은 잘 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5월 26일 유엔 학술회의는 사과 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과의 유무가 참가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학술회의가 그렇듯 최소 동의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장소였다.

차라리 그레그의  특징은 그가 필요하다면 사과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분단의 미국에 책임에 대해 미안하다 했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77753.html) 심지어 박근혜를 좋게 평가한 것도 사과했다(http://www.ytn.co.kr/_ln/0104_201611071510062253_001).  그런데 무슨 소용이 있나?  분단의 책임과 광주진압의 개입의 사과를 한다면, 미국인이 아닌 미국정부가 해야 한다. 

유엔행사에 연사로 와달라고 부탁하자, 그레그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내가 많이 좌익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은 분명히 우익이다.  남북 화해를 제외하고는 당신과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이슈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는  당신이 주한 대사로 부임할 때, 반대시위했었다.  그러나 당신이 우익이기 때문에 와야한다.”

그리고 지만원류의 북한개입설을 그대로 흡입한 전두환의 저서전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표정이 전두환에 대한 불쾌감으로 어그려졌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전두환 웃기는 놈 아니냐? 부디 와서 우익으로서 전두환 주장이 거짓이라고 말해 주기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레그에게 “연민”도 “민망함”도 없다.  다만 당시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책임진 사회자로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게 민망했을 따름이다.  솔직히 조지가 한국낱말 “민망함”의 함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가 그의 글에서 “민망힘”을 “연민”을 동의어로 취급하니 의문이 난다. 

조지는 유엔행사가 광주시민 모르게 계획되었고, 첫 언론 보도가 5월27일에 나오기까지 시민 대부분이 연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유엔행사는 5.18재단이 매년 초에 발표하는 사업계획서에 나와있다.  그러니 그의 주장은 거짓이고.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의 비협조로 유엔 장소를 구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됐으나, 행사 한 달여 전인 4월20일부터는 일정과 연사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조지의 주장이 거짓이다. (https://youtu.be/fTnBfakPsrc)

조지의 CIA 정보공개요청

조지는 “내가 학술적 연구를 위해 CIA 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5.18기념재단이 CIA를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라고 주장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재단이 CIA 기밀해제된  문서 중 “5.18 북한개입설을 반박할수 있는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커밍스와 그레그의 의견을 듣는게 CIA를 이용하는 일인가?  .  CIA가 광주의 한 비영리 단체에 이용 당할만한 조직인가?

조지는, 2003년, 부산의 한 활동가로부터 부탁을 받고 10.26 박정희 암살관련 CIA 정보공개 요청(FOIA) 했다고 말했다. 그 자체는 아름다운 일이긴 하나, 조지의   FOIA 요청 문건을(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실력도 성의도 모자란다는 것이다.  대강 보아도 사실적 오류가 꽤 많지만, 박정희에 관련 두 가지만 짚어보자. http://www.pmpress.org/content/article.php/20130423151755456

-. 조지는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라고 주장한다 (Park Chung-hee (later to become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61 to 1979) was one such former Japanese officer) 그 소스를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II”에서 인용한다. 인용도 오용했고,  사실관계도 틀렸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급도 못되는 괴뢰국 만주국 장교였다.  이 구별은 매우 중요하다. 5.16쿠테타의 주모자들은 박정희의 만주군 인맥이었지, 일본군 인맥이 아니기 때문이다.

-. 조지는 “박정희가 일본군 정보장교였고, 김일성을 생포하거나 죽이려고 했었다” (Park had been an intelligence officer in the Japanese Army and sought to capture or kill Kim Il-Sung)고 말한다. 이 정도면 거의 소설급이다. 박정희는 정보장교를 할 정도로 뛰어난 주구는 아니었다. 그는 작전장교였다. 또한 이 방면의 탁월한 연구자들인 정운현과 김효순이 그들의 저서에서 밝혔듯이 만군 장교 박정희와 항일 게릴라 리더 김일성이 전투건 추격전이든 조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활동 지역도 시기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정보 조차 모르거나 왜곡한 채, 기밀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조지를 보고 CIA 한국 사료담당과 변호사들이 그를 비웃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지의 정보공개요구서의 결정적 결함은 요구한 정보공개가 실현되면 공공의 이익에 어떻게 복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모든 정보공개 요구서의 기본이다. 한 마디로 사실관계는 틀리고 서식도 못맞춘 것이다. 다만, 조지는 그의 연구와 글이 공공의 이익에 계속 복무할 것라고만 이야기했다 (Dr. Katsiaficas' research and writing has, and will continue to, serve the public interest by address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글을 맺으며

마지막으로 조지는 내가 복수를 다짐하고, 그를 정부에 밀고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통역을 오역인지, 악의적인 왜곡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으나, 다만 나는 조지가 그가 행한 거짓과 기만에 대해 책임져야하고 그렇게 만들겠노라고 말했다.  

또한 조지의 허위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론이 모두 사실에 의거하고 증거가 있으니, “언론기관이나, 책임있는 단체나 정부의 요구가 있다면, 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조지의 논리대로라면, 광주항쟁의 중요한 자산인 “넘어넘어” 영문판은 은퇴한 89세 요원을 통해 CIA과 연결된 자가 CIA를 이용하는 광주단체를 통해 출간한 셈이다.  

따라서 내 요구를 다시 강조하려 한다.

조지의 사과와 해명으로 사태가 진정되기에는 조지는 광주의 전통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고 유지하려는 많은 사람과 단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조지는 사과가 아닌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나는 조지에게 수여된 명예광주시민증(2015)과 후광학술상(2016)은 치탈되거나 조지 스스로가 자진 반납해야 한다. 특히, 조지가 팀의 평생 노력을 무단 도용했다면, 이론의 여지없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설갑수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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