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해 무언가 감이 올 듯 말 듯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에 지난번에 말했던 것들에 대해 사례도 들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단토(A. C. Danto, 1924-2013)가 얘기한 바와 같이 미술작품이 미술작품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첫 번째로 작품은 반드시 어떤 것에 관하여 있어야 한다는, 즉 ‘관함(aboutness)’이 있어야 하며, 두 번째로 이 관함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도록 몸(body)을 주어 나타내야 하는, 즉 ‘체화(embodiment)’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릴로 박스 - 엔디 워홀.

그렇다면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유명한 <브릴로 박스>라는 작품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것도 두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을까?

100여 년 전에 미국의 한 회사는 당시 주방에 필요한 세척용 패드를 개발하였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들은 이 패드를 박스에 담아 슈퍼마켓에 공급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매우 흔한 모습일 것이다.

문제는 앤디 워홀이 슈퍼마켓에 공급했던 상자와 똑같이 보이는 상자를 전시장 안에 두면서 일어났다. 물론 이전에도 워홀은 <캠벨수프깡통>과 같은 유명 브랜드를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다. 평면적인 그 작업들은 누가 보더라도 그저 이미지만 가져다 쓴 것임을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을 보고 켐벨수프깡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1964년도에 맨하탄의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전시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슈퍼마켓에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슈퍼마켓에 있는 세제상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입체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관람객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미술계 전체도 들썩거렸다. 자 그렇다면 이 작품은 미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했을 것처럼, 그저 사기꾼의 장난인가?

이 작품은 겉으로 보기에 슈퍼마켓에 있는 상자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워홀은 슈퍼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다 두지는 않았다. 그는 매우 정교한 실크스크린 작업을 통해서 평범한 나무상자를 실제 세제상자와 똑같이 보이도록 꾸몄을 뿐이다. 정말 사기꾼처럼 말이다.

관객들이 이것을 보고서 가지는 생각은 이런 것이 아닐까. 도대체 왜 슈퍼에 있어야 할 것이 전시장에 있는 것이지?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장에 있다는 것은 미술작품이라는 말인데, 그러면 지금 전시장에 있는 이 작품과 슈퍼에 있는 세제 상자는 어떤 차이가 있지? 등등. 관객들이 던지는 바로 이 질문에 이것이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답이 있다.

단토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구별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있을 경우 “하나는 미술작품이 되고 다른 하나는 미술작품이 아닌 어떤 것이 된다면,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이 질문이 어쨌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이 핵심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야 말로 워홀의 <브릴로박스>가 ‘관하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관함을 그대로 체화시킨 것이 전시장의 <브릴로박스>이기 때문이다. 즉 워홀의 <브릴로박스>는 이와 같은 질문 자체에 관하여 있으며 질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좀 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나 초보자분들은 이게 뭐야?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나의 작업이 어떤 것에 관하여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그대로 체화시키는 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글쓰기를 생각해보라. 필자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것을 이렇게도 표현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내 맘에 쏙 드는 글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간단한 글도 이럴진대 미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말레비치의 작품을 대강 이해하는 것은 조금만 뒤적여 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는 가장 기하학적인 행태인 원, 삼각형, 사각형 등을 회화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로 보고서 그것을 그대로 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업이 관하여 있는 것, 즉 내용은 그가 생각했던 회화의 절대적인 요소이며 그는 이를 우리가 익히 아는 형식으로 체화시켰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회화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며, 이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고 나서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작품을 만들었겠는가.

하지만 미리 기가 꺽일 필요는 없다. 초보자인 만큼 실패를 겁낼 필요도 없으며 남들이 못하는 것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 여러분은 앞으로 99%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광주 아트가이드> 93호(2017년 8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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