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고, 황석영/이재의 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 “Gwangju Diary: Beyond Death, Beyond the Darkness of the Age”(이하 “광주일지”)의 편집 번역자이기도 하다. 

이미 알려진대로, “Gwangju Diary” 지난 5월 26일 5.18 기념 재단이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주최한 학술 컨퍼런스 “Gwangju Diary:  A Collective Memory of Democracy and Freedom”(이하 “유엔행사”)의 일정에 맞춰, 임시판이 나왔고, 곧 대량인쇄는 물론, 재단 홈페이지에서도 다운로드가 가능해질것이다.  

나는 김양래 5.18 재단 상임이사와 함께, 유엔행사의 개념과 계획을 같이 세웠다.  또한, 유엔행사의 연사 결정과 교섭을 주도했고, 행사 관련 일체의 자료(영한 자료집, 초청장, 영한 언론 발표문)을 직접 만들었다.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편집 번역자.

따라서, 전남대 초청교수 조지 카치아피스카(George Katsiaficas: 이하 “조지”)가 왜곡하고 비방한 전 미국 대사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 이하 “그레그”) 의 유엔 행사 초청 문제에 대해 정직하고 자세히 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입장에 내가 처했다고 생각해서 다음 글과 자료를 광주in 독자들을 포함한 모든 민주시민과 공유하려 한다.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 이유는 조지가 5.18재단과 김양래 상임이사에 반론함에 있어서, 거짓과 억지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태의 발단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사건의 발단은 나에게도 있고, 전말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을 알린다:-. 이 글은 나의  입장이지, 재단이나 5월 관련 단체의 입장과 무관하다; -. 이 글의 내용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 이하 모든 경칭과 경어는 생략한다.

-. 사건의 발단은 조지가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팀 셔록(Tim Shorrock: 이하 “팀”)에게 5월 28일에 보낸 이메일에서 시작됐다. 당시 팀은 자신이 평생 모은 광주/한국 현대사 자료를 광주 시청 산하 아카이브에 기증하고, 2개월 동안 광주에 머물면서, 그 자료를 정리하고 귀국 중에 있었다.

-. 조지의 5월 28 이메일의 제목은 “More 5-18-CIA connection”이었다.  그 이멜에서, 조지는 80년 5월 22일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은 전두환에게 광주 무력 진압을 “명령했는데,” 그 회의의 참석자들의 한 사람인 그레그를 유엔행사에 재단이 초청했다고 비난했다.

-. 팀은 위의 이멜의 답장에서 미국은 전두환에게 “명령”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며 반박하며,  그 동안 조지에 대해 품고 있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인 즉슨, 조지가 그의 저서 “한국의 민중봉기”(5월의 봄: 2015)에서 팀의 문건과 글을 인용없이 도용했다는 것이다. 

-. 팀은 유엔행사에서 나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답장을 내게도 보내줬다.

-. 그러자, 조지는 팀에게 거친 답장을 보냈다. 답장인즉슨, 1) 왜 자기가 5.18 재단의 CIA과의 야합(connection)을 제기하자, 도용 시비로 응수 하냐. 팀 너도 수상하다; 2) 설갑수에게 이멜을 보내줬으니, 설갑수는 그레그에게 이 일을 보고할 것이고, 그렇게 되어, CIA가 자신을 주목하게 될거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레그는 올해 89세이고, 마지막으로 CIA에서 일한 시기는 1970년대 중반까지였다. 여하튼, 이 이멜을 기점으로, 조지는  나를 CIA에서 일하는 사람 (work for the CIA)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터무니없으니, 댓구할 가치도 없다. 

- 조지와 팀의 도용 시비는 아직 진행 중이고, 팀이 곧 이 문제를 곧 공론화할 예정이다.  따라서,이 문제를 내가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나는 조지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항의했다. 또한 유엔행사에 대해 문제 제기할 것이 있다면, 재단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나를 상대하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대뜸 조지의 질문은 내가 혼자 “광주일지”의 판권 인도의 대가로 엄청난 액수의 금전을 받았다고 힐난했다.  나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으나, 개인적으로 송사를 벌이는 일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믿기때문에 고소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또한 조지는 그레그를 초청한게 누구였냐고 묻기에 나는 내가 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지는 거의 즉시, 팀에게 이메일을 보내 내가 CIA를 위해 일한다면서, 어떻게 자기를 CIA에게 노출시킬 수 있냐고 비난했다. 

-. 이런 식으로 팀, 조지 그리고 나 사이에 지리하고 어어없는 이메일은 공방이 이어졌다. 

-. 그러던 중, 다소 뜸금없이, 6월 13일, 조지는 그레그의 유엔행사 참가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배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5여개 단체와 많은 개인에게 보냈다고 한다.

-.  조지의 성명서는 두 가지 치명적 사실적  오류를 담고 있었다.

-. 먼저,  그는 그레그가 광주 5월 단체와 민변이 2002년 공동 개최한 광주 시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점은 사실이 아니다. 그레그는 시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미국 관리 8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이 점을 당시 언론 기사와 민변의 판결문을 보내서  조지에게 지적했다. 당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조지는 시민 법정의 원고측 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2002년 이 행사를 기획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기소할 미국 관리들을 선택하는데도 일정 역할을 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구를 기소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왜 간단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을까?  

-. 또한, 조지가 그레그를 “명예손님” (honored guest)로 여러 차례 지칭했다.  유엔행사는 패널형식이었고, 키노트 스피커도 없었다.  재단과 행사관련 어떠한 문건도 그레그를 “명예손님”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음을 지적하자, 조지는 재단이 그레그에게 보수를 지급했을 것이고, 보수를 지급했으니 “명예손님”이라고 우겼다.  나는 그레그가 유엔행사와 관련, 재단이건, 공동주최자인 한국정부건 간에  1원 한 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자, 조지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 조지는 재단과 5월 단체의 해명 요구 성명의 답변 (7월 11일)에서는 희한한 논리를 개발했다. 그레그를 광주 관련 유엔행사에 초청했으니, 그것이 그레그에게는 명예이고 따라서 명예손님이라는였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오른쪽)와 부루스 커밍스 교수. ⓒ뉴스M. 설갑수 제공

- 조지가 밝혔듯이,  시민법정 문제에 대해서는 6월 17일에 실수였다고 이메일로 해명했다. 그러나 조지의 성명서는 스리랑카의 유력지 The Guardian에 6월 15일에 실렸다.  스리랑카의 시민 사회는 5월 단체와 깊은 교류를 맺고 있다.

-.조지는 7월 20일자 반박문에서 위의 기고문이 정정됐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상적 정정이라면, 별도로 “정정 발표와 사과”가 있는게 일반적 관례이다.  조지는 오래전에 수정됐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확인하기로는 7월 15일까지 수정되지 않았었다. 무려 한 달 동안 정정하지도 않았고, 정정 후, 정정 발표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 사실 전직 CIA 요원인 그레그를 유엔 행사 초청에 대해 재단과 나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80년 이후, 미국대사로서는최초로 광주를 방문했고,  4년 재임 기간 동안, 4번 광주를 방문하며, 나름 광주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점과, 대사 퇴임 후, 햇볕 정책의 옹호자로서, 김대중 노무현 집권 시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 하에서도 조차 굽힘없이 남북 관계 북미 관계 개선에 힘썼다는 점을 평가했다. 

-.  또한 한국에서 5.18은 언제나 분열적 이슈였다.  특히, 보수정권이 집권한 지난 9년, 극우 세력은 5.18의 사실과 진실은 스스로의 이해에 따라, 취합하고 왜곡했다. 따라서, 5.18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가 한국 밖에서는 좌우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어서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개념을 세웠다.  유엔 행사에 좌 우를 대표할 수 있는 인사를 패널리스트로 참여토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이들 패널리스트들이 권위와 명망이 높을수록 행사의 목적과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 최소한 동의(minimum consensus)인즉슨, 국제적으로 광주 항쟁은 1) 북한은 물론, 어떤 외부 세력 개입이 없는 자발적 민중 항쟁; 2) 그원인이 구조적이건(좌측 시각), 정책적 실수였던(우측 시각 ),광주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대응; 그리고 3) 광주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와 초석이었다.  

-. 따라서 결정된 패널리스트가 좌측으로는 시카고대 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이하 “커밍스”)  우측으로는 그레그. 1차 증언자로서, 5.18광주를 취재한 AP 통신 기자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 이하 “앤더슨”). 광주일지의 공동편집자 닉 마마타스 그리고 국제 난민 운동가이자 광주대 인권학 교수 욤비 토나였다.

-. 사실, 좌우 다이내믹으로서 커밍스/그레그 컴비네이션을 재단을 2017년 초에 잘 활용한 적이 있었다.  지난 1월, 미국 CIA가 미국내의 줄기찬 정보공개에 요구에 굴복, 기존의 공개된 모든 기밀문서를 웹사이트 하나를 열어 접근권을 높였다.

이 웹사이트에서 나는 광주 관련 문건을 40개를 찾아냈고, 이 문건을 재단과 자체 분석하는 것과 더불어, 커밍스와 그레그에게 커멘트를 받자고 제안했다.  이 문건에 대해 좌우익 전문가의 시각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 우익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는 광주의 북한개입설을 불식하는데 효과적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찾아낸 문건 몇몇은 극우의 북한 개입설을 제압할 수 있는 증거가 됐다.

-.  커밍스는 1,000자가 넘는 분석글을 써줬고, 그레그는 “아직도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 깡패들이 한국에 있다니 슬프다”는 공식 서한을 이멜을 통해 보내왔다.  특히, 그레그의 편지는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북한 개입설을 불식시키는데 큰 도움을 줬다.

-. 커밍스와 그레그의 글은 유엔행사 자료집에 정리해서실렸다.

-. 그레그는 그  이메일은 2월에 보내왔고, 재단의 유인례씨가 자신을 재단의 새로운 국제 연대 담당으로 소개하는 이메일은 3월에 보내졌다. 그 이메일의 수신자 중, 그레그가 들어간 것이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 게다가 조지가 위의 이메일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페이크 뉴스(fake news)를 퍼뜨리는 방식과 동일했다. 다시말해, 사실을 제멋대로 묘사해서 논란으로 만들었다.  7월 11일, 조지는 518재단의 직원이 “나에게 보낸 이메일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함께 참조(CC)로 보내졌다.”라고  주장했다. (A few months later an           email  sent to me from a member of the May 18 Foundation’s staff was also cc’d to Donald Gregg.).  이메일은 참조(CC)로 보내지지 않았다. 그 이메일은 유인래가 재단의 국제연대 담당으로서  재단의 국제 네트웍에 첫 인사를 하는 집단 메일이었다. 그레그의 CIA 전력을 들먹이며, 재단의 이멜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함께 참조로 보내졌다” 말함으로써, 재단이 그레그에게 활동을 보고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거짓은 거짓인데, 그 경계가 미묘하다. 바로 이것이 시쳇말로 페이크 뉴스인 것이다.  

-. 그레그를 초청하기 위해, 나와 김양래 재단 상임이사는 4월 28일 그의 자택으로 그를 직접 찾아갔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레그가 우리에게 그가 쓴 글을 건냈다.  며칠 전, 북한 유엔대표부 외교관과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언론 기고문이었다.  뉴욕타임즈에게 줬으나, 싣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사실 글의 분량이 500자 미만, 주제의 엄중함에 비해 외부기고로서는 글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친구를 통해 한국 언론에 실어도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좋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그 글이 오마이뉴스에 실렸다.  한국이 대선 막바지라 선거 뉴스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한 글의 내용인 즉슨, 미국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압력을 넣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당시보다 요즘에 더 적절한 글인듯 하다. 

-. 유엔행사에서, 그레그는 “북한 개입은 없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식으로 미국의 광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은 실수를 했고, 한국민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 점을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입장은  커밍스는 그레그를 “나의 친구”라고 부르며, 웃으며 여유있게 비판했고, 앤더슨은“미국은 공수부대를 비폭력 시위대 진압에 동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수부대를 민간인 시위에 동원하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 것 아닌가? 그러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언성을 높히기도 했다 .  사회를 보는 내가 조금은 민망할 정도로 그레그에게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 조지가 지적한 대로, 그레그는 5월 22일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15명의 참석자 중에 하나 였다. 국무성과 국방성의 장차관에 대장급 장성이 참여한 회의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불과했던 그레그가 무슨 발언을 했는지는 그리고 그 발언이 받아들여졌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최근 광주 MBC의 김인정 기자가 입수한 국방성 차관보 니콜라스 플랫 메모에도 그의 발언을 기록되어 있지 않다.   

-. 다만, 그레그는 몇 차례 자신은 광주의 마지막 진압에 군이 아닌 경찰을 동원해야 했다고 주장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 또한 증거없는 발언이니 온전히 믿을 것은 못된다. 다만, 그가 5월 22일 회의 이틀 전 회의를 위해 작성한 메모를 보면, 광주 항쟁이 지역 차별과 김대중 탄압에서 야기됐으며, 어떻게 정리되던, 미국이 곤란한 입장에 놓일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적어도 당시 미국 국방성이나 군부의 고위층과는 생각이 달랐다는 것은 엿볼수 있다. 

-. 그레그는 한국의 정치역학이나, 북한의 동향, 그리고 미국의 대한 정책 결정 요인과 동기를 잘 알고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조지가 7월 20일 말한것 처럼 그레그를 80년 5월의 정책 결정을 한 주요인물(key figure)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이 점은 조지가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방대한 “한국의 민중봉기”에서 그레그는 모두 세 차례, 한 문장씩만 언급된다. 한 번은 5월22일 백악관 회의 참석자로, 두 번은 90년대 주한 대사로서 말이다. 조지는 스스로가 진압을 승인한 주요인물이라고 믿는 그레그를711 페이지에 이르는 책에서 이렇게 간결하게, 세 문장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 조지는 수차례 CIA문건을 믿을 수 없는 자료, 인용할 수 없는 자료로 치부하고  있다. 팀이 최초 입수, 공개한 5월 22일 백악관 회의록 조차 미국에 의해 조작됐다는 주장도 한다. 그의 주장인즉슨, 회의에서는 전두환에게 진압 명령을 했는데, 공개된 회의록에서는 그런 진압명령이 삭제됐다는 것이다.

-. 조지의 주장이 너무 황당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으나, 다만 조지 스스로는  자기 책에서 CIA보다 더 흉칙하다는 국방정보원(DIA)의 문건과 온갖 미국 기밀문서를 인용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 또한 2013년 조지 자신은 박정희 암살 관련 CIA  문서의 정보공개 요청을 했다. 한 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 

-. 미국의 사과 문제는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니, 다른 기회에 내 의견을 자세히 피력하겠으나, 나도 미국이 광주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레그가, 심지어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사과한다고치자. 그것은개인적 사과  이상 이하도 아니다. 사과는 미국인이 아닌, 미국정부가 해야 한다. 

나는 5월단체와 518재단이 이 문제에 대해 조지보다 전략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데, 올해 초, 재단은 리퍼트 대사가 제공하는 5.18 관련 미대사관과 국무성를 오간  전문을 받았으나, 공개서한을 통해 미국이 갖고 있는 모든 자료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또한, 미대사관이 광주에서 최초로 주최하는 미 독립 기념일 행사에  5.18 사과 문제를 제기하며 불참했다.  투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원칙 속에서, 다방면적으로, 유연하게.

-. 5.18 항쟁 당시, 도청에 최후에 남는 투사들은 우직해서 옥쇄를 결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원칙 속에서 다방면했고, 유연했기 때문에 이길 가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최후 항쟁을 선택했다. 그 상황에서 원칙에 걸맞는 가장 이성적 판단을 한것이다.  구두선으로만 “원칙, 원칙”하는 먹물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솔직히, 지금 당장 80년 5월의 최후 항쟁의 상황이 온다면, 조지와 김양래 중 끝까지 도청에 남아 있을 이는 누구겠는가? 이 물음을 스스로 물어보면, 이 사태의 본질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조지의 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이 문제에 대한 첫 공식 문제제기는 5.18 재단과 5월관련 3개 단체들이 6월 30일자 공개질의서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조지는  재단과 5월 3단체에게 답해야 했다. 그런데, 조지는 재단의 상임이사 김양래에게 답변서를 공개적으로 보내고 있다.  재단과 광주의 일부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에 거론되는 인물에게 포화를 집중, 분열과 반목을 더욱더 조장하는 비열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더욱 가증스러운 일은 그 과정에서 5.18 왜곡으로 광주를 지독히도 괴롭혀온 지만원의 글을 꼬박꼬박 싣고있는 뉴스타운 기사를 인용했다느 것이다.  아무리 밉고 섭섭해도 5.18 재단과 김양래는 동지 아닌가? 지만원의 논리로 김양래를 공격하고 싶은가 말이다.  그러면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읇조리는 조지는 학자로서도 활동가로서도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다.

-. 내가 위에서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며, 스리랑카 가디언 지의 정확한 정정날짜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자료로서 증명할 수 있다.  조지의 거짓과 기만 그리고 왕따놀이까지 모두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조지와 나의 갈등 그리고 518재단과 조지의 갈등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문제가 됐다. 따라서, 언론기관이나, 책임있는 단체나 정부의 요구가 있다면, 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

-.  결론을 말하자면, 그의의 사과와 해명으로 사태가 진정되기에는 조지는 광주의 전통을 국내외적으로 알리고 유지하려는 많은 사람과 단체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조지는 사과가 아닌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나는 조지에게 수여된 명예광주시민증(2015)과 후광학술상(2016)은 치탈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조지가 팀의 평생 노력을 무단 도용했다면, 이론의 여지없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설갑수
현 UNITE HERE! 기업분석/국제 캠페인 Analyst 
현 ITUC (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 Consultant
전 MSCI ESG Analyst
전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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