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달용 개인전

전시기간: 6월15일~28일
오픈: 6월15일(목) 오후 6시
장소: 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

저항기질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의 막내 동생 목재 허행면(木齋 許行冕 1906~1966)이 조부(祖父)이고 그의 장남 연사 허대득(蓮史 許大得 1932~1993)이 부친인 허달용. 일반적으로 전통 남종화의 가풍을 이어받고, 소위 집안의 그늘아래 화가로서 무난한 생활을 할만도 하지만, 그는 그가 누릴 수 있었던 기득권을 접어두고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허달용은 그림에 대한 각별한 열망은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림인지라 무난히 미술대에 입학하고, 별다른 고민 없는 대학생활을 하다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다. 그가 제대 한 88년 즈음 한국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올림픽이후 세계화라는 시대적 분위기로 서구의 다양한 미술형식이 유입되고 각종 실험적 미술경향이 대두되던 시기이다.

이와는 다른 편에서 민중미술은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걸개그림, 깃발, 벽보 등 현장미술의 형태를 띠며, 많은 청년미술가들과 대학생 미술운동 단체가 가담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청년 허달용 또한 자기존재와 그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지역에서 진보적 미술운동의 이론적 배경을 지원하던 전남대 이태호 교수와 만나게 된다. 허달용은 이교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광주미술인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소위 민중미술과 조우하게 된다.

광주미술인공동체가 해체된 후 허달용은 한국민족미술인총연합 회장, 광주민예총 회장, FTA 집행위원장, 스크린쿼터 반대운동본부 등 민중운동의 중심부에서 사회운동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활동 중 일부 동료들에게 학생운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무시를 받는가 하면, 미술인들에게는 작업도 안하는 작가라며 작가적 역량을 의심받는 등 맘고생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럴수록 그는 낮에는 집회현장에서 더욱 열심히 뛰고, 밤에는 쪽잠을 자며 독을 품고 작업을 이어가며 매년 신작을 발표해 나감으로써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켜 나갔다.

은유와 상징, 어법의 변화

초창기 허달용은 이태호 교수의 조언으로 단원과 겸재의 그림을 모사하며 먹의 운용과 수묵의 기본기를 다졌다. 이 시기 다져놓은 기본기는 훗날 다양한 기법과 소재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때로는 섬세하고 사실적 묘사로 때로는 직관과 통찰에 의한 즉흥적 붓놀림으로 화면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

대부분의 민중미술 작가들은 리얼리즘 형식을 유지한다. 허달용 또한 90년대까지는 사회비판적 시각으로 시사적인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민중미술의 형식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죽창 들고 깃발 휘날리며 민중을 일으켜 세우는 그림은 이제 포스터나 다른 매체로서도 충분하지 않는가, 살벌한 시위현장에서 고생한 농민이나 노동자에게 위로가 돼 줄 수 있는 그림이 필요하지 않나’ 이러한 고민은 그의 그림 형식을 상징과 은유의 방식으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매화 연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 일 때, 우연히 깜깜한 밤에 달빛 아래 하얗게 발광하는 매화를 보았다. 매화는 매서운 겨울바람과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으로 강인함의 대명사다.

하지만 그렇게 험한 과정을 거쳐 피어난 매화의 꽃잎은 여리고 애달프기 그지없다. 그 연약함을 이겨내기라도 하듯 매화는 홀로 피지 않고 무리지어 피고, 함께 바람에 휘날린다. 매화는 험한 세상 속 군중의 무리와 닮아있다. 허달용에게 구름 낀 하늘은 암담한 현실로, 달빛 아래 비친 매화는 촛불 시위현장에 나온 청소년들의 모습이 되어 그렇게 가슴에 꽂혔다.

이를 계기로 점차 사회현상이나 정치상황에 대한 사실적 재현보다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감성적 공감을 끌어내는데 주목한다. 최근에는 소나무, 버드나무, 대나무, 난초 등을 통해 시대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이입하거나, 해질녘 석양에 물든 강변이나 먼 산 풍경 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적 시각을 담아낸 작품이 주를 이룬다.

사람을 닮은 나무

최근 허달용의 그림에 소나무가 자주 등장한다. 2007년 연리지 연작에서부터 소나무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당시 연리지 소나무는 보수와 진보논리에 의해 반목하고 갈등하는 사회•정치적 현상에 대한 반성과 올바른 정책결정을 위한 화해와 조화에 대한 염원을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의 교훈에 담았다.

연리지 연작에서 소나무는 일상의 농촌 아낙네의 모습이나 시골 풍경 혹은 눈 덮인 산야 풍경과 함께하며 전통적 실경 수묵화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점차 소나무는 풍경의 일부가 아닌 단독 대상으로서 화면 가득 등장하며 전통 수묵화의 형식을 탈피해 간다. 특히 빛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며, 역광에 몰두한 후부터 소나무는 더욱 대담해졌다.

역광으로 인해 근경의 소나무는 먹을 갈아 반나절 정도 수분을 증발시켜 진하게 만든 초묵을 여러 차례 덧칠해 가며 무심히 쓱쓱 그어낸 듯 시커멓고 강직하다. 온통 시커먼 먹빛 소나무에는 일체의 기교나 기법을 제거하고 먹 그 자체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자하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근경의 소나무가 우직하고 단순한 형태로 인해 대상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는가 하면, 원경은 적절한 먹의 농담을 활용해 자유롭고 즉흥적인 여유를 보여준다.

소나무 풍경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나는 버드나무 풍경은 몸통보다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듯 수많은 가는 줄기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다. 빽빽한 줄기들의 엉킴 혹은 바람결에 따라 능청능청 흔들거리는 모습은, 휘청거리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사람을 닮은 나무”, 즉 나무에게로 작가의 감정이입은 민초의 삶을 표현한 ‘탱자 꽃’이나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처참함에 눈물을 흘리는 ‘난초’와 ‘대나무’ 시리즈에서 극대화된다.

빛과 어둠, 수묵 본질의 탐구

수묵화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많은 작가들은 현란한 발묵이나 먹 이외의 재료를 끌어들여 감각적인 조형미를 생산해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다. 그러나 허달용은 오히려 깡먹 위주의 작업을 통해 먹 맛의 정통성 탐구에 관심을 갖는다. 결국 흰 종이와 검은 먹, 그 기본을 통해 수묵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노력은 수묵을 통한 빛의 발현에 심취하게 된 배경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역광으로 인해 검은 덩어리로 보이는 인물상이다. 역광은 피사체를 배경으로부터 두드러지게 하여 대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나타내며, 대상의 모습을 좀 더 현실적으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장치이다.

민중운동가로서 배고픈 작가로서 험난한 인생경로를 함께 해온 선후배, 동료, 스승의 검은 얼굴... 온통 검은색인 그들의 얼굴에는 평상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얼굴 이면의 치열하고 선명한 날것과 같은 기운이 보인다.

겉으로는 밝고 당당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깡으로 버텨 살아온 그들의 힘들고 고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허달용은 역광의 인물화를 통해 보다 깊은 수묵의 본질로 접근을 시도하며, 블랙과 화이트로 대변되는 세상사에 관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어둠과 밝음, 고난과 희망, 선과 악, 빛과 그림자 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상호 공존할 수밖에 없는 개념들이다. 긍정적인 개념들은 부정적인 개념과 함께 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질긴 시련 속에서도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열대여섯 살 무렵부터 먹을 써온 허달용은 “먹 작업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이 먹이다. 세상살이와 비슷하다. 앞으로는 먹을 가지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종이와 먹물과 붓의 맞닥뜨림 너머의 공기와 수분, 작가의 에너지 사이의 불가항력적인 힘의 밀고 당김, 즉 수묵 본연의 성질에 대한 이해이자, 수묵의 참 멋을 찾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과거 허달용이 차가운 감성으로 무장한 주제의식, 즉 의미(意味)에 중점을 둔 계획적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면 이제 의미와 더불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재미의 맛을 알아가며, 붓과 먹으로 놀 수 있는 무심(無心)을 갖추어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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