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 대통령에 바란다]

길고도 지난한 여정이었다.

지난 가을 시작하여 겨울을 지나 새봄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 계절을 밝혀온 촛불의 결실, 한 번이라도 촛불의 의미를 제대로 새겨본 사람이라면 새 날의 시작에 가슴이 뜨겁지 않을 수 없다. 어떤 후보를 지지했든 간에 대다수 국민이 염원한 정권교체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그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시기다. 그 많은 바람과 요구들을 순식간에 해결할 순 없다. 고전에서 그 지혜를 빌려보는 건 어떨까?

ⓒ광주인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정치란 경제(足食), 군사(足兵), 그리고 백성의 신뢰(民信之)에 달려있다.”

그러자 제자 자공이 묻는다.

“만약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사를 버려라.”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묻는다.

“남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경제를 버려라. 예로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는 없었으나,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서 제대로 선 나라가 없다.”

여기 공자의 말에서 ‘백성이 죽는 일’이란 굶주림과 전쟁에 의한 죽음을 지적한 것일 게다. 당시 중국은 말 그대로 전국시대(戰國時代)였으므로 국가 간 전쟁이 일상사였고 수많은 백성이 전란 통에 죽어나갔다. 

상호 반목과 증오로 인해 경제는 파탄 나고, 농사를 돌볼 사람이 없어 아사자 또한 속출하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군사와 경제에 의존한 당장의 문제해결보다, 긴 시간의 노력과 소통을 통해서나 얻어질 백성의 믿음에다 두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요즘 말로 번역하면 ‘북핵문제나 전략적 외교에 앞서 국민들의 신뢰를 먼저 얻으라, 경기침체와 실업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기 전에 국민들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라.’ 정도의 말이 아닐까 싶다.

한때 유행어가 되었던 ‘뭣이 중헌디?’라는 영화 ‘곡성’의 대사가 떠오른다. 공자는 이미 2500년 쯤 전에 그걸 묻고 또 그 대답을 내놓았다. 정치에서 국민의 믿음을 얻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고. 경제도 국방도 그 어떤 찬란한 정책도 국민들의 신뢰 위에 세우지 않고선 금방 무너지는 종이 탑일 뿐이라고.

우린 해방 이후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목도하였다. 속도와 성과에 초점을 맞추면서 묻지 않고 되돌아보지 않으며 혼자서만 내달리던, 누구와 함께 달려야 하는지에 관한 통찰조차 없던 정부가 어떤 식으로 무너져 내렸는가를.

천만 촛불로 분출된 대다수 국민의 염원을 안고 출범한 새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나라냐?’던 국민들의 준열한 물음은 믿음을 배신한 정부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러니 답은 얼마나 쉬운가?

하겠단 약속은 함으로써 지키고 하지 않겠단 약속은 하지 않음으로써 지키면 된다. 그런 단순함과 철저함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다.

정치, 경제, 외교, 국방, 교육 등 당장 수습해야할 일부터 긴 안목을 두고 차근차근 해결해야 할 일까지 수많은 난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쌓인 적폐만큼이나 해결에 대한 열망도 커서 요구는 넘치고 속도에 대한 압박은 커질 것이다. 해결과정에서 여러 이견과 복잡한 상호이해가 충돌하고, 누군가에게는 희생을 요구하게도 될 것이다. 그럴수록 가장 단순한 질문으로 돌아가길 권하고 싶다.

‘이게 대다수 국민들의 믿음을 얻는 길인가, 아니면 믿음을 잃는 길인가?’

새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그 기반 위에서 성공하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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