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3차 소송 원고 김영옥 할머니 신문 예정

일제강점기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3건의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지난 4월 7일 2차 소송 변론에 이어 오는 25일엔 3차 소송의 3차 변론이 열리는 등 답보상태에 있었던 근로정신대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2차 소송 원고 중 한 명인 김재림 할머니가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서 겪어야 했던 강제동원의 아픔을 토해 놓았고, 오는 25일 광주지방법원에서는 3차 소송 원고(2명–김영옥 이경자)이자 피해 당사자인 김영옥(1932생. 金英玉) 할머니가 당시의 아픈 고통을 직접 증언할 예정이다.

원고 김영옥 할머니는 1944년 당시 여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미평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에게 일본에서 돈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은 큰 유혹이었으나 현실은 군수공장인 미쓰비시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강제 동원이었다. 미쓰비시 공장의 노동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고됐고, 특히 지진과 폭격의 공포는 지금도 괴로울 만큼 끔찍한 기억이다.

원고 이경자(1943생. 李敬子)씨는 나주초등학교 졸업 후 미쓰비시로 강제동원되었다가 1944년 나고야 일대를 강타한 도난카이대지진에 사망한 고 최정례의 유족이다. 이경자 씨가 이번 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고 평생 한을 품고 사셨던 시할머니 때문이다.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딸을 잃은 이후로 이불조차 덮지 않으셨던 시할머니는 명절이면 억울하게 죽은 딸의 제사상을 차려 늘 대문 밖에 내놓으셨다. 시할머니를 생각하면 이경자 씨는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시할머니의 한과 시고모의 억울함을 대신에 이번 소송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한편,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영옥 할머니는 재판을 위해 광주에 오며, 아울러 일본의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다카하시 마코토(高橋信)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小出裕) 사무국장도 재판 방청을 위해 직접 광주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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