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사, 이게 아니었는데

작심하고 시위를 당겼다. 이상하다. 날아가던 화살이 되돌아온다. ‘부메랑’으로 변한 것이다. 피할 수도 없다. 이를 어쩐다. 자신이 쏜 화살에 자신이 맞게 생겼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이렇게 생겼구나.

■‘빙하는 움직인다’

너도나도 회고록이다. 회고록 하나 못 쓰는 인생은 서러워서 못 산다. 특히 정치라는 흙탕물에 발 좀 담갔다는 사람들은 회고록 한 권 없으면 축에도 못 낄 판이다. 한데 신뢰가 안 간다. 뻥을 치더라도 좀 그럴듯하게 쳐야지 욕이나 먹을 거라면 뭣 하러 쓰는가. 그냥 살다가 죽지. 국민들의 냉소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누리집 갈무리

홍준표는 ‘나 돌아가고 싶다’라는 자서전에서 ‘돼지흥분제’ 사건을 고백했다. 미친 돼지 꼴이 됐다. 홍준표는 45년 전 일이니 용서하시라고 싹싹 빌었다. 이때나 그 때나 돈키호테 기질을 못 버리는 모양이다. 시효가 없다면 쇠고랑감이다. 4월 23일 후보자 토론회는 19금이다. ‘성폭행’ ‘강간미수’ 등의 벌거벗은 말들이 난무해서 함께 보던 미성년 손주들을 얼른 퇴장시켰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송민순이다. 참여정부 외교부 장관 출신이다.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회고록을 썼는데 빙하가 녹는 바람에 바다에 빠질 딱한 처지가 됐다. 외교부 장관쯤 지냈으면 자신의 한 일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정도는 가늠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영 꽝이다.

회고록이 담고 있는 내용 중에는 밖으로 새 나가면 안 될 국가기밀에 준하는 ‘내부문건’들이 수두룩한데 안 본 건지 무시한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국회의원에 안보실장, 외교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몰랐다고 하면 너무 무시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천 상 알면서 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국가비밀에 준하는 비밀 ‘내부문건’을 흘린 만용의 저의는 무엇인가. 만용의 결과로 무엇을 얻자는 것일까. 다시는 고위공직자 출신이 이따위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사실 책 속에는 복잡하게 써 놨으나 내용은 별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물어보고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기권을 했다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북한의 눈치를 보고 결정을 했다는 것이니 나라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다.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이란 간판을 내려야 할 일이다.

■머리 좋은 송민순

진짜로 한국은 북한에게 기권해도 좋으냐고 사전 보고를 하고 유엔에서 기권을 한 것일까.

2007년 11월16일 관저에서 이재정 장관이 요청한 회의가 열리게 됐다. 백종천 실장, 이재정 장관, 송민순 장관이 관저에서 대통령과 함께 회의했다. 그날 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졌고 마지막 최종적으로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기권으로 가자”라고 최종적인 대통령 입장 정했다. 그리고 회의는 종료됐다.

송민순을 제외하고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송민순은 자신의 기억만 가지고 다른 사람 기억을 깡그리 무시한다. 이런 독선이 어디 있는가. 외교는 소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민순 외교장관은 미스캐스팅이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대장이다. 대장이 결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만약에 박근혜 시대라면 ‘레이저’ 한 방 맞고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소통을 매우 중요시한다. 송민순이 반발을 하니까 체면 좀 봐 주라고 관계 장관들에게 “논의해보라”고 했을 뿐이다. 대통령이 결정한 사항이고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문제를, 비서실장이 북한에 물어보라 말라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번 송민순 회고록 발간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회고록이 발간됐을 때 한번 논란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불거졌다. 시기가 묘하다. 왜 하필이면 이때인가. 문재인을 제외한 후보들은 ‘주적’ 논란 빼면 할 말이 없다. 문재인을 종북 좌파로 몰기 위해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것이다. 송민순의 회고록이 얼마나 좋은 불쏘시개인가. 송민순은 고위공직자 출신이다. 처신이 천금처럼 무거워야 한다.

송민순은 자신의 회고록으로 누가 공격을 받으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송민순과 특정 후보와의 관계도 거론된다. 더욱이 송민순이 대통령 기록물에 속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기록이 공개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한데 송민순 주장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회고록에 “11월 16일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고 적은 바 있었는데 4월 23일 인터뷰(JTBC보도)에는 “16일에 기권 쪽으로 정해졌을 수도 있다"고 한 걸음 물러났다. 기억이 헷갈리는가. 속속 제시되는 증거도 송민순에게 불리하다.

문재인 측은 그날 이미 기권으로 결정됐지만 송 전 장관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 판단은 국민이 할 것이다.

■후보들은 이토록 싸울 정책이 없는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이 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지금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그 덕에 대선을 빨리 치르게 됐다. 후보가 14명이나 된다. 그나마 국민을 관심을 보이는 후보가 5명. 헌데 한국당 바른당 국민의 당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이라는 것이 몇이나 되는가. 온통 정신은 ‘주적’ 논쟁이고 종북 좌파 타령이다.

이제 국민들은 과거의 국민이 아니다. 2012년 12월 18일, 18대 대선 하루 전날 김무성은 부산  유세장에서, 속칭 '찌라시'에서 봤다고 하는 조작된 NLL 남북정상 회의록을 핏대를 올리며 목이 메어 낭독했다. 뻥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불법은 흐지부지됐다. 처벌받았다. 이번에는 송민순이 불법을 저지르는가.

이번 송민순 회고록만 하더라도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인가. 주적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적이다. 국민의 인식도 같다. 후보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연구·개발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속이 빤히 드려다 보이는 송민순 회고록이나 뒤지고 시비를 거는 후보들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정 할 일이 없으면 쪽방에서 외롭게 사는 노인들 찾아가 다리라도 주물러 드리면 한 표 찍어줄지 모른다. 딱한 후보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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