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3주기와 촛불시민혁명

어제는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인양된 세월호가 조사를 받기 위해 모로 누워있는 목포 신항에서는 가톨릭 광주대교구에서 주관하는 4.16희생자 추모미사가 열렸다. 

광주전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온 가톨릭 신자와 일반 추모객들 1만 명 가량이 함께 모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을 함께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그리스도교 최대 명절인 부활절과 겹치는 날이었다. 인간을 계급과 신분, 재산과 출신지역으로 나누어 차별하던 시대에 가난하고 비천한 자로 태어나,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을 외치다 기득권 세력의 박해로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했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16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노란 풍선을 날리고 있다. ⓒ광주인

여러 종교적 의미를 제쳐두고 보아도 예수의 부활은 놀랄만한 상징성을 지닌다. 불의한 자들에 의한 억울한 죽음은 그대로 영원히 파묻히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힘과 권력으로 억눌러도 진실은 끝내 밝혀지고 만다는 것, 의로운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희망과 생명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상징성은 지난 4개월간의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노랫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도 놀란 그 많은 촛불들은 어디서 왔을까? 오직 평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 냉철하고도 뜨거운 열정은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나는 그것이 무고하게 희생된 세월호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교회나 절에 다니지 않아도, 특별한 신을 믿지 않아도 모두가 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빌 수밖에 없었던 건 무엇보다도 미안했기에, 300여명의 생목숨이 죽어가는 데도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컸기에, 기도라도 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을 향한 기도는 하늘을 향해서만 타오르는 촛불에 실려 저 높이 저 멀리 피어올랐다.

그 기나긴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올린 기도는 마침내 불의한 이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그들의 오만과 무책임을 법정에 세우고, 그들의 무례와 방종에 역사적 책임을 지울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절대로 올라오지 않을 것 같던 세월호도 뭍으로 올라와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에 대한 희망을 지피고 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딸을 기다리며 3년 세월을 버텨온 한 엄마는 "더는 미수습자 가족이 아닌 유족이 되고 싶다"며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기도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애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그분의 안타까운 절규가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하였다.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기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기도는 지나간 과오에 대한 참회와 용서를 구함으로써 자신을 정화하려는 행위이자 다가올 미래를 우리의 바람대로 만들어보려는 의지의 강렬한 표명이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나 자신을 과거에서 또 미래에서 비추어볼 때만 가능한 고도의 지적능력이기에,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선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기도해달라는 말은, 또 기도해주겠다는 말은 인간능력의 최상 치에 대한 서로간의 신뢰와 존중이 바탕 되었을 때만 가능한 요청이며 약속이다.

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을 찾은 추모객들이 철조망에 내걸린 세월호 희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광주인

우리는 지난 겨울을 뜨겁게 밝힌 촛불을 지나오면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보았다. 작고 하찮은 불꽃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걸 보면서, 나 하나 너 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귀한 우리 하나하나가 정말로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도 무수히 생각하게 되었다.

이젠 머잖아 그 맹렬했던 시간들을 추수해야 할 때가 온다. 누군가를 위해 진짜로 기도할 줄 아는 인간과 기도하는 척만 하는 인간의 차이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하물며 죽을 만큼 가슴이 아픈 사람들의 기도요청을 조롱과 험담으로 무시하고 폄훼하며, 기도하는 척조차도 할 줄 모르는 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더더욱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인간과 인간 아님의 차이를 더욱 예민하게 판별해야 하는 때이다.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소중한 나는, 나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한 너와 더불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세상을 그려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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