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적폐청산을 두려워하는가

교통위반을 하면 면허증과 함께 건네는 것이 있었다. 주민등록 사본 한 장, 인감증명 한 통 떼는 데도 꼭 필요한 것이 있던 때가 있었다. 통행료라고도 했고 급행료라고도 했다.

6·25 전쟁이 터지고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했다. 공무원 월급은 쥐꼬리만 했는데 도둑질은 할 수 없고 별 수 없이 눈을 돌리게 된 것이 부수입이었다. 부수입이 뭔지는 다 알 것이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택상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웬만큼 해 먹는 건 내버려 두자. 불법과 부정의 공식 승인이었다.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주고받는 촌지는 생활의 수단이기도 했다. 살기 위한 적폐라면 용서가 되는가. 이제 통행료는 사라졌다. 작은 적폐가 청산된 것이다. 생존을 위해 손을 벌렸던 작은 적폐는 사라졌지만 큰 적폐는 아직도 끄떡없다.

■적폐, 바퀴벌레 생명력

촌지란 이름의 적폐. 언론계 어느 선배는 촌지 봉투를 부욱 찢어 지폐를 흔들며 ‘겨우 요거야’ 하는 용기도 보여줬다. 거대신문사 조선일보 고위간부의 부정은 놀랍다. 신문이 조·석간을 발행할 때 석간이 나올 시간이면 광화문 동아일보 앞은 공무원들로 북적거렸다. 신문에 자기 부처 관련 기사가 났는가 살피기 위해서다. 불리한 기사가 나면 바빠진다. 다음 날 조간에서 기사를 빼기 위해 서다. 언론계의 엄청난 적폐였다.

국회에서 답변하는 우병우. ⓒ국회방송 갈무리

불법과 부정을 처벌하는 사정기관으로부터 언론, 교육, 스포츠, 나라를 지키는 군대에까지 퍼졌다. 국민방위군 사건에 연루된 사령관은 총살형을 당했다. 나이롱 군대라는 것도 있었다. 입대했는데 근무는 안 하고 휴가증을 집으로 보내준다. 빽이 쎄거나 부잣집 자식들이다. 일선 부대장이 불법으로 벌목해서 팔았다. 목재 수송 차량을 헌병차가 앞장섰다.

대학에는 청강생이란 이름의 학생이 정규학생보다 더 많았다. 이들도 버젓이 졸업장을 받고 학사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불법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사회의 인식이었다. 비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수억 년을 살아온 바퀴벌레의 생명력도 무색할 적폐세상이었다.

■적폐청산 없이는

지금 적폐청산이 공약인 대통령 후보가 있다. 문재인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문재인이 마치 국민 전체를 적폐세력으로 몰고 있는 것처럼 왜곡한다. 선거 전략이라면 국민을 너무 우습게 아는 것이다. 국민은 적폐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나름대로 다 알고 있다. 적폐청산이 두려워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기득권 부패세력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책동은 그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것이다. 바로 그들도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인 것이다.

적폐청산이 되면 국민들은 비로소 사람다운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이 중요한 것이다. 국민은 적폐청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소름 끼치는 적폐. 법조비리에서 구속되는 법조인들의 끔찍한 비리. 법과 양심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국민들은 절망한다. 수백억을 최고 권력에게 바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재벌의 풀 죽은 모습을 보며 평범한 국민들은 분노조차 잊는다.

법꾸라지라는 별명이 붙은 우병우의 구속영장이 또 기각됐다. 영장담당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기각을 했다고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은 시궁창으로 떨어졌다. 우병우 구속을 외치던 촛불집회의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는데 웃고 있을 우병우의 모습이 눈부시다.

우병우는 자신이 구속될 경우 몇 년을 더 살더라도 모두 끌고 들어가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소문이다. 나 혼자 죽지 않겠다는 치사한 협박이다. 물귀신 협박 작전이 효능을 발휘했다고는 결코 믿고 싶지 않지만 왜 이리도 허망하고 서러운가.

편파 왜곡 과장 보도를 일삼는 일부 보도를 보며 감시견의 무디어진 이빨에 절망한다. 이러한 언론행태가 특정한 세력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하기에 더욱 신뢰를 떨어트린다. 이승만 정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받은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면 답답하다.

최근에 여론조사를 보자. 이러한 여론조사를 누가 믿을 것인가. 스스로 불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불신은 자신들뿐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그 엄청난 해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런 행위들이 바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아무리 여론조사를 교묘하게 해도 국민은 알 것을 안다. 표본 조사를 어떻게 하고 이미 폐기된 조사방법을 왜 사용했느냐.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것들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이제 언론도 정신이 들 때가 됐다.

광주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후보 첫 경선에서 전북의 일부 학생들을 차로 실어 날라 부정선거에 동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고기를 사 준다고 유혹했다니 더욱 가증스럽다.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잘못 생각한 것이다. 오폐수 속에서는 못 산다. 오폐수를 걷어내자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다.

■누가 적폐를 척결할 수 있는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살아갈 미래도 보인다. 아무리 자신이 청렴결백한 지도자라고 자화자찬을 해도 국민은 꿰뚫어 보고 있다. 국민의 눈을 속일 수 없다. 대선 후보자들을 검증한다고 야단법석이지만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국민이 밝힌 촛불의 혜안을 피해 나갈 재주는 아무도 없다. 평소 신뢰를 받지 못하면 비록 아버지라 해도 자식들이 믿지를 않는다. 신뢰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 국민들은 뼈가 저리게 느꼈다. 왜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전쟁터에서 누구나 다 지휘관이 될 수는 없다. 지휘관이 할 일과 사병이 할 일이 따로 있다. 대통령이 할 일과 국민이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공동의 목적이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은 맞는다.

전투에서 누가 마지막으로 고지를 점령하는가. 사병이다. 누가 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가. 국민이다. 적폐청산도 같다. 지도자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노력할 때 이 땅에서 적폐는 사라질 것이다. 법꾸라지는 또 법망을 빠져나갔다. 법망에 구멍이 뚫렸는가. 미꾸라지의 재주가 비상한가.

촛불을 밝힌 2000만의 눈, 더욱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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