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두견새를 보내왔다. 그러나 두견새는 울지 않는다.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목을 쳐버려라.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에도시대 말기부터 전해오는 시조(하이쿠)다. 내용 중에 나오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정적(政敵)이나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온갖 수를 동원해서 내편으로 만들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끝내 내편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반면에 오다 노부나가는 무조건 죽이거나 탄압했다.

폭군의 대명사 오다 노부나가와 혼노지변

오다 노부나가. ⓒ위키피디아

1467년, 일본 역사상 두 번째 막부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후계자 문제를 놓고 여러 다이묘들이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 이른바 ‘오닌의 난’이다. 이후 130년간, 일본 전역에서는 끝도 없이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는 전국(戰國)시대가 펼쳐졌다. 

그때 전국시대 막판에, 대부분의 세력을 평정하고 일본 최초로 천하통일을 꿈꾸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 1534.6.23.~1582.6.21.)다. 당시에 오다 노부나가는 정적이나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매우 오만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탄압했던 폭군의 대명사였다.

1573년, 다케다 신겐이 갑자기 전쟁 중에 병으로 급사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정적들 가운데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다. 남아있는 모리, 호죠, 우에스기 세 가문 중 변방에서 멀리 떨어진 호죠와 우에스기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남은 적은 모리 가문뿐이었다. 

이제 노부나가가 천하의 주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1582년 6월 21일,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갑자기 벌어진다.

당초 노부나가는 모리 가문의 평정을 위해 하시바 히데요시( 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전쟁의 총지휘권을 맡겼다. 출정을 명받은 히데요시는 열심히 분투했으나, 싸움이 길어지자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자 긴급 지원요청을 받은 오다 노부나가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 그런데 목적지로 이동하던 중, 노부나가의 부대는 교토의 혼노지(本能寺)라는 절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당시 노부나가 주변에는 최측근 가신으로 일컬어지던 아케치 미쓰히데 라는 장수가 있었다. 늘 그랬듯이 노부나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던 미쓰히데가, 갑자기 어느 순간 자신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교토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병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미쓰히데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혼노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미쓰히데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그러자 미쓰히데의 병사들이 벌떼처럼 혼노지를 에워싸며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런데 미쓰히데가 공격을 명했던 ‘적’이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였다.

혼노지의 변(메이지 시대, 요사이 노부카즈). ⓒ위키피디아

그때 혼노지 안에 있었던 인원은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하여 가신인 모리 란마루와 수십 명의 호위무사, 그리고 흑인 노예 몇 명이 전부였다. 그 숫자로 사방을 둘러싼 1만 3천 대군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 결국 오다 노부나가는 혼노지 안에서 끝까지 남았던 병사들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미쓰히데가 갑자기 노부나가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서는 후세의 다양한 설들이 있다. 이 중, 미쓰히데가 개인적으로 품게 된 원한에 의한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추론이다. 노부나가가 미쓰히데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일이 그동안 수없이 많았고, 갑자기 영지를 빼앗으려 하자 미리 선수를 쳤다는 내용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일본에서는 ‘적은 혼노지에 있다’는 말이 자주 흔하게 사용된다. 가까운 측근이나 내부의 적을 미리부터 경계하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있다. 일본 전국시대 3인방 중 260년 에도막부 시대를 열면서, 결국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사람은 인내의 대명사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는 점이다. 

온갖 굴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묵히 참아내며 참모와 장수들을 규합하고 민심을 등에 업은 결과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에 비교할만한 인내의 정치인은 과연 누구인가?

박근혜 판 혼노지변

ⓒ민중의소리 갈무리

박사모를 비롯해 ‘박근혜 지킴이 결사대’를 자처하는 이들이 삼성동 박 전대통령 사저를 둘러싼 채 한동안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결국은 구속이 되고 말았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헌정사상 세 번째, 냉정한 법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는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친박계’라는 단어가 정치권에 등장하기도 전, 소위 ‘원조친박 3인방’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시절, 각각 대변인, 비서실장, 사무총장을 맡았던 전여옥, 유승민, 김무성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박근혜 전대통령과 적대적인 관계다.

“박근혜 위원장은 자기의 심기를 요만큼이라도 거스르거나 나쁜 말을 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명 자기 자신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클럽에 갈 때에도 왕관을 쓰고 갈 것 같다.”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이었다. 한국은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였다.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히 여긴 ‘나의 국민’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 my family's job )'이었다.”
 - 전여옥 전의원. 2012년 출간 자전적 에세이 < I 전여옥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 유승민 의원 . 2015년 7월 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퇴의 변

“현 사태를 헌법 위반이 아닌 대통령에 대한 의리 문제로 인식을 하고, 헌법보다 의리라는 생각, 이게 바로 제왕적 권력주의고 군신 간 관계다. 저는 박 대통령에게 ‘동지적 관계지 상하 관계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얘기했다가 결국 멀어졌다.”
 - 김무성 의원. 2016년 11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각계 원로들과 함께하는 비상시국 토론회’

시점과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뜻이다. 박근혜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왕조국가였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그 스스로를 여왕처럼 생각했고 전여옥, 유승민, 김무성 등은 동지가 아니라 신하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그래서였을까? 대변인 시절, 전여옥 전의원은 박근혜 대표 비서로부터 박대표와 같은 차에 타지 말라는 굴욕적인 지시를 받았다. 국회법 개정안 사태 당시 ‘배신의 정치’ 운운한 박대통령을 향해, 유승민 의원은 90도로 절을 하며 공개사과를 해야만 했다. 

당대표 시절, 중요현안마다 내려오는 청와대 지시로 인해 김무성 의원은 그저 꼭두각시 신세였다. 아마도 그들 내면에서 모욕감이 층층이 쌓이면서 분노가 타올랐을 것이다. 무조건 충성 아니면 배신, 그 둘 가운데서 그들은 배신을 택했다.

측근에서 적으로 돌아선 사람들은 이들 외에도 많다. 탄핵에 이어, 새누리당을 탈당해서 분당에 앞장섰던 바른정당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한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역할을 했던 안종범, 정호성, 차은택, 김종, 장시호 등은 모든 책임을 박근혜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국정농단의 공범이었던 최순실 마저도,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배신의 말을 던졌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의사표시를 했을 뿐, 국정농단은 내 조언을 잘못 반영한 대통령 책임이다.”

정치적 핵심기반이었던 대구에서조차 주말마다 수천, 수만 명이 모여서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외쳤다. 한때 무너지지 않았던 콘크리트 지지는,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되었다. 노부나가를 배신했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역할, 그 선봉은 유승민, 김무성 등 바른정당을 만들어서 뛰쳐나간 새누리당 출신 의원들이 맡았다. 

날이면 날마다 박근혜 찬가를 부르더니, 갑자기 어느 날부터인가 안면을 정반대로 바꿔서 박근혜 때리기에 매진하던 종편들도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끝까지 참지도, 상대방을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들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불통과 독선의 대명사인 박근혜 스타일은 일본 전국시대 3인방 중 오다 노부나가와 가장 가깝다. 

지금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은, 마치 전제군주 시대의 여왕과도 같은 오만하고도 시대착오적인 의식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에 따른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박근혜 판 혼노지변에 대해서는 동정의 여지가 없다.

촛불혁명의 X맨들

304명. 세월호 희생자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3년 전 그때, 온 국민은 희생자 가족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반드시 구조해주리라, 아이들아 조금만 버텨다오.

메르스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최소한 정부기능은 작동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들은 철두철미 무능하고도 무책임했다. 어느 날 담배 값을 갑자기 두 배 가까이나 올렸을 때도 그랬다. 설마 국민들 건강 생각해서 그랬겠지 서민들 호주머니 털려고 그랬을까...

수십년 만에 찾아온 작년의 살인적인 한여름 찜통더위 속에서, 우리는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고 에어컨 끄면서 절약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 소박한 미덕마저도 대기업에 대한 전기료특혜와 누진제 논란 앞에서 비참하게 조롱당하고 말았다.

하루하루 악착같이 살면서도 정부의 무원칙한 보육정책 때문에 애들 육아걱정 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 헬조선 흙수저, 이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도 없는 이 나라에서 발버둥 치며 절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 알바를 뛰고 투잡도 모자라서 밤잠 줄여가며 쓰리잡 포잡을 뛰는데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삶, 그 외에 수없이 많은 한숨과 분노들이 모여서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거대한 촛불의 심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국가와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믿고 사는 대다수 국민들, 박근혜와 그의 부역자들은 우리를 그렇게도 교묘하게 농락했다. 때문에 분노했고 마침내 일어섰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연인원 1600만이 넘는 위대한 ‘촛불혁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다 죽어가던 박근혜 세력들을 뒤늦게 다시 살리는 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꼼수 연대'는 분노의 촛불 앞에 무너질 것

광주 금남로 촛불집회. ⓒ광주인

우선 간판만 바꿔달고 신장개업에 나선 자유한국당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단지 문재인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집권을 막겠다고 ‘반문연대’ 깃발을 내건 채 자유한국당과도 손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인가? 

이와 더불어 ‘문재인-안철수’ 양자대결 운운하며, 국정농단 부역세력과 연대하려는 일부 국민의당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야말로 정권교체를 방해하려는 ‘촛불혁명의 X맨’들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미 기울어진 형세를 인정하지 않고 끝내 저항하다가, 혼노지 안에서 비참하게 불에 타 죽었다. 배신자 아케치 미쓰히데 역시, 전쟁 중에 황급히 도망을 가다 어느 이름 없는 농부에게 목이 베이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경고한다. ‘촛불혁명의 X맨’들은 타오르는 민심의 불에 함께 타죽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죽은 가신과 호위무사, 흑인 노예들, 그들과 똑같은 운명을 끝내 맞이하고 싶은가? 꼼수연대에 의한 ‘보수정권 연장시도’는 이미 타오르고 있는 분노의 촛불 앞에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촛불혁명의 최종결말은 반드시 ‘정권교체’가 되어야만 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이 거대한 드라마의 끝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만들어갈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다. 

마침내 다가올 5월 9일, 민주공화국 주권자로서의 권리행사는 필연이다. 분노와 한숨의 세월을 다시 되풀이 할 수는 없다. 그들을 반드시 심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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