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올레길 18번- 칼집에서 칼을 빼낸 형상의 명당자리가 있는 별도봉

1.

헉헉. 들리는 것은 가쁜 숨소리와 타박타박 박자에 맞춘 걸음걸이.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 퍼지는 입김. 이마에 걸린 헤드랜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손바닥만한 그 동그란 빛에 의지한 채 나는 겨울 한라산에 올랐다. 

성판악에서 6시 10분에 출발한 산행이었다. 미처 헤드랜턴을 준비하지 못해 등산객 무리에 끼어 빛을 빌려 밟으며 한 시간 십 분여 만에 4.1km 지점인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어둠이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등산객들이 속밭대피소에 잠시 머무르면서 헤드랜턴을 껐다. 나는 내 발길에 빛을 빌려준 이름도 모르는 동행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백록담에서 내려다본 한라산. ⓒ차노휘

곧장 백록담으로 오르는 주등산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20여분동안 올라 사라오름 산정호수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름 꼭대기에 호수라니. 안개 낀 수면 위로 괴물체가 불쑥 튀어 오른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였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그곳에 정적만 쌓여 있었다. 맞은편으로 가는 데크가 물에 잠길 정도로 호수는 범람했다. 호수 너머 풍광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백록담을 2.3km 남겨둔 진달래대피소에서 잠시 쉬고, 가파른 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을 때 눈발이 날렸다. 내려갈 일이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펜스 너머 사발처럼 움푹 꺼진 백록담으로 눈길을 던졌을 때, 지극히 혼자 해낸 산행이어서 가슴으로 치미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찬바람이 물러가고 매화가 만개한 지금,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 창문 너머 햇살을 볼 때마다, 지난겨울 한라산 등정과 올레길을 걸었던 시간들이 졸음이 밀려오듯 일상 속으로 끼어든다.

올레길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2016년 12월 20일에 첫 발을 내디뎠다. 7일 동안 동쪽으로 걸어 나갔고 다시 복귀하여 2017년 1월 4일부터 9일까지 걸었다. 2월 3일부터 6일까지가 마지막 걷기였다.

제주도 내륙 21개 코스와, 선택코스인 1-1(우도), 10-1(가파도), 18-1(추자도), 그리고 7-1과 14-1. 총 26개 코스에 누계거리 403.6km의 천리길이었다. 길을 잃고 헤맨 것을 생각하면 더 걸으면 걸었지 덜 걷지는 않았다(스마트폰에 있는 S헬스는 합산해보지 않았다). 추자도를 마지막 코스로 총 16일에 걸쳐 완주했다.

올레길을 걷기 전에도 제주도를 가끔 갔다. 그때마다 나는 제주 공항에 내려 분주한 사람들을 피해 1번 게이트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수많은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전광판과 버스가 시야에 잡혔다가 사라졌다. 

여권을 본 따 만들어진 올레길 패스포드(빨간색 커버), 그 아래 스탬프 박스와 시작점 표지석(왼쪽). ⓒ차노휘

하지만 그 수많은 멈춤과 지나침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연로한 모습으로 시들어 가는 야자수 나무가 우두커니 서서 분주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풍광을 바라보곤 했다. 이국의 저 어디를 동경하며 타향에서 늙어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왜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숨겨진 욕망이 꿈틀대는 것일까. 네 본연의 모습을 보고 말거야, 라고.

본연의 모습이란 화려한 휘장을 걷어낸 속살이다. 간혹 화려함을 감춘 남루함도 있을 것이다. 시간의 나이테와 같은 것. 제주도에서 그 많은 유흥업소와 편의시설, 쇼핑몰을 걷어낸, 순수한 대지와 바다, 사람이 살아왔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나는 올레길이 그 속살과 닿아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제주도라는 땅에 땀을 흘리는, 그 수고로움을 느꼈을 때에야 비로소 시간의 궤적을 따라 간직한 상흔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2학기 학생들 성적처리를 끝내고 2016년 12월 19일, 광주에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일단 떠나보고 뒷일을 감당하기로 했다.

며칠이라도 집을 떠나 있으려고 하면 남아있는 ‘것’들에 대해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이것도 덜 했고 저것도 덜해서 마무리지어야할 것들이 늘어난다. 무엇보다도 낯선 곳에서 몸으로 부딪쳐야 할, 용기 없음이 제일 큰 걱정거리가 된다. 그래도 내 속에서는 떠나라고 아우성을 친다. 나는 그 외침에 기꺼이 나를 맡길 용기를 낸다.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접이식 우산을 광주 공항에서 티켓팅을 할 때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32리터 배낭 속에 판초우의가 있었지만 콘크리트 건물 안, 캐리어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속에서 판초우의를 둘러쓰고 싶지는 않았다. 

숙소까지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망설였다. 그때 빗방울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주황색 조명 아래 키 크고 노쇠한 야자수 나무가 제 모습을 짙게 드리우고 서 있었다. 밤이라 그 그림자는 더 짙었다. 일상이라는 공간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일상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나를 닮아있었다.

2.
 

올레길 진행 방향을 가리켜주는 화살표, 파랑색(순방향)과 주황색(역방향)으로 나뉜다. ⓒ차노휘

전날 내리던 비는 다행히 개었다. 아침에 늘 운동하는 시간인 6시 40분에 짐을 챙기고 나와 서문시장을 지나 올레길18번 출발지인 간세라운지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 동문로터리가 출발지였으나 12월 10일에 바뀌었다고 한다. 굳이 시작점 장소를 확인하려는 것은 이왕 시작한 올레길 완주에 대한 결과물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올레길 패스포드에 스탬프를 다 찍고 싶었다.

여권을 본 따 만들어진 올레길 패스포드는 각 코스마다 처음, 중간, 끝, 이렇게 세 군데에 도장을 받게 제작되어 있다. 스탬프가 보관되어 있는 스탬프 박스는 나무로 만든 우편함처럼 생겼는데 그곳에 두 가지 종류의 스탬프가 끈에 매달려 있었다(시작점과 종점에만 두 가지 종류 스탬프가 있다). 상주하는 직원이 없어도 어느 때라도, 올레길을 걷는 사람 즉, 올레꾼이 찍을 수 있게 스탬프 박스 머리 안에 스탬프와 잉크패드가 보관되어 있다.

시작점표지석은 스탬프 박스와 현무암 위에 코스의 경로를 보여주는 검은색 안내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곳을 시작점으로 리본과 화살표를 따라 길을 찾아가야 한다. 리본은 전신주나 나뭇가지 등에 주로 매달려 있다.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이다. 화살표는 길바닥, 돌담에 그려져 있거나 나무기둥에 부착되어 있다. 파란색이 정방향 진행표시, 역방향 즉, 코스의 종점에서부터 거꾸로 걸어올 때(역올레)는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

이 외에도 ‘간세’가 있다.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당나귀’를 가리킨다. 간세는 아주 단순하게 당나귀 형상으로 만든 파랑색 모형으로 머리가 가리키는 곳이 진행 방향이다.

간세에 부착된 판에 바로 걸어가야 할 곳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가로세로 16센티미터 판으로 도심지역의 전봇대, 숲속의 나무 등에 설치되어 정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방향과 지나온 거리를 표시해주는 플레이트가 있다. 

올레길 진행 방향을 가리켜주는 리본. ⓒ차노휘

마지막으로 위험구간이나, 일시적으로 우회해야 하는 곳에 설치되어 돌아가는 길의 경로지도와 시간, 거리 등을 알려주는 ‘우회 및 위험 안내판’도 있다. 우회로에는 주황색 리본 두 가닥이 달려 있다.

올레길 첫 출발지를 제주시내에서 시작하는 18번 코스로 잡았다. 이곳을 시작점으로 동쪽으로, 그러니깐 시계방향으로 걸어 나갈 참이었다. 이렇게 계획한 것은 올레길 센터 직원의 도움이 컸다. 제주 공항 인근에 있는 코스가 18번이어서 그곳으로 향하는 올레길이 있다. 역방향(주황색 화살표, 서쪽으로 돌기)보다는 순방향(파랑색 화살표, 동쪽으로 돌기)이 초보자에게 길 찾기도 쉽다는 말을 들었다.

18번 코스는 제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간세라운지에서 시작하여 사라봉정상(망양정), 곤을동 4·3유적지, 화북포구, 삼양검은모래해변, 불탑사, 신촌포구, 연북정을 거쳐 조천만세동산에서 끝난다. 대략 19km가 넘는 거리고 소요시간은 6~7시간이며 난이도는 중간정도다.

정방향으로 걸을 때의 진행방향과 지나온 거리를 표시해주는 플레이트. ⓒ차노휘

이른 아침에 찾아간 17번코스 종점이자 18번코스 시작점인 간세 라운지(간세 라운지는 제주시내와 서귀포시내 두 군데에 있다)는 푸르스름한 여명에 잠겨 있었다. 전날 비가 왔고 아침에는 보슬비가 내렸다. 시작점 표지석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쓱, 쓸고는 사진에 담았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간세라운지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스탬프 박스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 본 그것은 이제 막 새내기 올레꾼이 된 나를 설레게 했다. 잉크패드에 스탬프를 찍어 올레길 패스포드에 흔적을 남겼다. 밤새 내린 비로 촉촉한 포도를 바삐 움직여 지나쳤다.

17번 종점이자 18번 시작점인 간세라운지(ganse launge), 그 앞에 당나귀 모형의 간세, 같은 모양의 스탬프 박스, 18번 코스를 소개한 시작점과 표지석이 보인다(왼쪽부터). ⓒ차노휘
광제교와 산지교 아래로 흐르는 산지천. ⓒ차노휘

아침 일찍 문을 연, 생선비린내가 훅 끼치는 동문 시장을 통과하자 말끔한 동문로터리가 나왔다. 동문로터리는 사라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고 바다로 합류하는 산지천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광제교와 산지교 아래로 흐르는 산지천은 그 바닥이 검은 현무암이었다. 물빛도 검은 빛이었지만 한없이 맑아 보였다.

산지노인자원봉사자들이 산책로를 가꾼다는 그곳은 일찍 편 동백꽃과 때 이른 꽃밭이 어울려져 겨울이어도 봄날처럼 화사했다. 그때서야 나는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나서는 어귓길(올레의 제주 토박이말)’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어귓길과 어귓길을 이어 만든 길을 ‘쉬멍 걸으멍 생각하멍’ 걸어야 했다. 그래야 그 길 위에서 끝없이 몸통을 바꾸며 진화하는 이야기를 만날 것이다.

3.

“봉순아, 저 손님방에 이 술상 좀 들고 가거라.”

오씨는 하얀 살결에 뺨이 붉은 계집종에게 술상을 맡겼다. 그 전에 계집종에게 단단히 일러둔 것이 있었다.

육지부에서 지관이 내려온 것은 4일 전이었다. 산을 들러보던 그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선친의 묏자리를 지정했다. 별도봉의 중턱 즈음이었다. 하지만 오씨는 선친의 묘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는 지관의 표정이 썩 개운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접대가 소홀했는가도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라봉 오르는 길. ⓒ차노휘

삼시 세끼 바다에서 잡은 귀한 것과 육지의 귀한 것을 상에 올렸고 침구 또한 매일 햇볕에 고슬고슬하게 말려 준비시켰다. 선친 묏자리를 잡았으니 돌아가는 길에 노자돈을 충분히 챙겨줄 거라는 것 또한 넌지시 암시했다. 

그렇다면 묏자리에 대한 탐탁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이다. 직접 오씨가 물어보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얼굴이 반반한 계집종 봉순이에게 술상을 봐가게 해서 슬쩍 떠보라고 언질을 주었다.

다음날 지관이 아침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던 오씨는 그가 여장을 꾸리고 나서자 버선발로 따라나섰다.

“선생님, 선친 묏자리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지관은 오씨의 질문에 아차, 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만 전날 술을 마시고는 경솔하게 계집종에게 사실을 말해버렸던 것이다. 술을 연거푸 따라주던 계집종은 지나가는 말로, ‘죽은 사람이 명당자리에 묻힌 게 맞지요?’라고 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좋겠지만, 이 집 복에는 그 정도면 됐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오씨가 이렇게 묻는 것은 계집종에게 전날 했던 말을 전해 들어서일 것이다.

“선친의 묏자리를 조금 위쪽으로 다시 보아 주십시오, 선생님.”

별도봉에서 내려다본 제주항 여객터미널. ⓒ차노휘

버선발로 쫓아 나온 오씨는 무릎까지 꿇으며 부탁하였다. 지관은 화들짝 놀랐다. 만약 어젯밤 계집종에게 말한 자리에 오씨 선친 묘를 잡으면 자신이 큰 화를 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씨 집안사람들은 하늘로부터 명당을 받을 만큼 큰 덕을 쌓지 않았다.

명당자리는 하늘이 내려주는데, 그곳을 알려주면 그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자신이 받게 된다. 그러나 계집종에게 말한 이야기도 있고, 이렇게 체면도 사양하고 무릎까지 꿇으며 부탁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지관은 결국 자신이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장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묏자리를 알려 주고 말았다.

오씨는 지관이 떠난 일주일 뒤에 선친 묘를 이장했다. 별도봉 전체가 하나의 칼 모양이었다. 선친이 묻힌 자리가 칼집에 해당하는 곳이라면 이장할 묏자리는 칼집에서 칼을 조금 빼어 낸 형상이었다.

그 후 오씨 집안은 더욱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관이 육지에 도착하고 얼마 후 갑자기 나타난 벌떼의 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4.
제주도에서 전통적으로 ‘산’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는 곳이 다섯 군데가 있다. 다섯 군데를 ‘오대산’이라고 부른다. 한라산, 산방산, 영주산, 청산(성산일출봉), 두럭산이다(다음에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화산활동으로 ‘솟아오른 것’을 오름(‘기생화산’이나 ‘독립화산체’로 부르나 여기에서는 후자를 선택한다)이라고 하며 총 368개가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계속해서 ‘+@’가 붙는다고 한다. 그 중 옛날 봉수(烽燧)가 있던 오름 대부분에 ‘봉(峰)’ 자를 붙인다. 별도봉과 사라봉도 마찬가지이다. 정상에 오르면 봉수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라봉(해발 148m)은 제주 시가지 중심에서 동쪽으로 2km쯤 떨어진 해안에 자리 잡은 오름이다. 주택과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오르막길을 걸어야 오를 수 있다. 접근하기 쉬운 곳이라 주민들의 운동장소로도 활용된다. 잘 관리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팔각정이 나오고 팔각정 주위로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이 있다.

팔각정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주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검푸른 바다 위에 뿌옇게 안개 낀 수평선, 특히나 매립지에 세운 탑동의 웅장한 건물과 제주항 여객터미널의 분주함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애기업은돌이라고 부르는 괴암. ⓒ차노휘

팔각정에서 크게 쉼 호흡을 한 뒤, 올라온 곳과 반대편으로 내려가 별도봉과 사라봉을 잇는 장수 산책로로 걸어갔다. 별도봉도 오름이다. 화북봉 또는 베리 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별도봉 오씨선묘〉라는 위와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단단한 흙길인 산책로는 해안가를 끼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려가고 올라가고를 반복했다. 왼쪽 아래로는 잘 정비된 부두와 바다가 보였고 먼 수평선 너머로 아침 바다의 생생한 기운도 접할 수 있었다.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고래라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해식 동굴이 있었다. 먼 시야에는 애기업은돌이라고 부르는 괴암이 보였다. 괴암에 이르기 위해서는 데크 계단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괴암에서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바닷가와 맞닿은 그곳에 돌담과 풀밭으로 형성된 ‘그곳’이 나올 것이다. 그곳은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인 곤을동을 말한다. (계속)

차노휘 소설가(광주대 초빙교수).

**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다. 소설집으로는《기차가 달린다》가 있다. 문학박사이며 광주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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