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성재단, 오는 23일부터 ‘다시 봄, 기억을 품다’전 개막

임남진·김화순·정진영 작가... 슬픔과 희망 형상화 눈길

눈부신 봄날에 무참히 스러져간 꽃들을 기리는 추모미술전이 열린다. 재단법인 광주여성재단은 오는 23일부터 6월30일까지 재단 내 8층 여성전시관에서 개최하는 기획전 ‘다시 봄, 기억을 품다’를 연다. 

이번 전시는 37년 전인 1980년 5월18일 광주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오월광주민중항쟁과 3년 전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터진 세월호 침몰 참사를 추모하는 자리다.

정진영-나를 잊지 말아요 Do not forget me!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미는 꽃망울과 포근한 바람 내음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돌아온 봄을 맞고 있지만, 이 봄은 무고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린 역사이자 아픈 상처의 이정표기도 하다.

광주여성재단은 여성작가들을 중심으로 해 광주5·18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장을 마련한 것.

출품작가는 지역을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임남진, 김화순, 정진영 등 3명의 여성작가들이다. (사)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오월 광주와 세월호 사건이 낳은 아픔과 희망을 담은 작품들을 내건다.

임남진 작가는 5·18과 세월호와 같은 거대한 민중의 아픔을 일상 속 풍경에 녹아내 오히려 더 큰 슬픔을 전한다. ‘Holiday-야만의 시간’과 ‘Still Life-무기력’, ‘Still Life-불면’ 등의 작품은 어느 일상의 한 순간, 혹은 정지된 프레임을 포착한 듯한 화폭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우리네 삶의 구석구석을 묘사하고 있다.

잠을 이룰 수 없어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아버지의 무덤덤한 뒷모습이나,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널브러졌던 지난 나날의 상흔을 담담하게 담아낸 집안 풍경들은 직접적인 아픔의 묘사보다 더 아리게 다가온다.

현대 한국화 장르의 형식적 해석을 넘어선 임 작가의 작품들은 철학적 주제성과 섬세한 감성, 무엇보다 회화적 힘이 돋보이는 작품세계를 전한다.

김화순 작가는 오월 광주공동체의 소중한 기억을 표현한 ‘자네 밥은 먹었능가’와 세월호 유가족의 희망을 그린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노란 봄에 간절히 바란다’, ‘아버지 삼열씨는 우릴 보고 웃는다’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화순-자네 밥은 먹었능가 97×130cm acrylic on canvas 2008

김 작가는 미처 피우지 못하고 저버린 어린 꽃들을 그렸고, 그러면서도 남아있는 어른들의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물속으로 잠긴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이나 밭고랑을 짓이기면서 거슬러 내려오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아픈 세월’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린다.

또 ‘자네 밥은 먹었능가’는 주먹밥을 건네는 거친 어머니의 손을 통해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한다.

정진영 작가는 은행나무와 합성수지 등을 깎고 새긴 조각과 설치작품들은 아픈 역사에 대한 슬픔과 치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아픈 역사로 인해 아스라진 생명을 형상화했고,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화해와 용서, 치유에 이르기까지의 열망을 표현했다.

이들 작가들은 여성작가로서의 섬세한 감성을 기반으로 회화와 조각 등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보다 자본과 정치의 힘이 우선시 되는 천박한 사회를 꼬집고 있다.

또 “언제나 미술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고 말하는 출품작가들은 결국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대동세상(大同世上)’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 오픈식은 23일 오후 2시 전시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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