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눈물이 안 보이는가

각종 행사 때마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있다. ‘국민의례’다. 국기에 대한 경례다. 엄숙한 음악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근엄한 소리.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 너머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전시 중이다. ⓒ팩트TV 갈무리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응시하는 두 눈에 태극기와 겹치는 것은 애국이다. 민주주의다. 비록 그 자리에 을사5적 이완용이 있다 해도 그 순간만은 애국자가 되었을 것이다.

국민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원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날카로운 죽창에 매달려 있다. 동학 농민군이 청나라군과 일본군을 향해 들었던 죽창이 아니다.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시궁창으로 밀어 넣었던 박근혜와 그의 추종세력들이 애국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을 향해 겨누는 죽창이다. 그 죽창에 달려 있는 태극기다. 변호사라는 자가 국수를 먹으며 사용하는 턱받이의 대용품이 태극기가 됐다.

지난 4일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 너머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전시됐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심   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定)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일제 치하에서 조국광복의 염원을 갈망하던 <심 훈>의 이 시도 광복 후인 1949년에야 해방을 맞았다. 가슴을 끓게 하는 이 시를 지금 새삼 소개하는 것은 국민의 염원과 갈망이 그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무능’과 ‘더 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 박근혜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다. 바로 탄핵이다.

지금이 일제치하냐고 질타할 것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오죽했으면 수천만 국민이 엄동설한 속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는가. 80%가 넘는 국민여론이 일관되게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갈망하고 있는가.

불과 5%의 지지를 받는 박근혜와 그를 추종하는 한 줌의 기득권 세력들은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그들도 알고 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비열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저항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 줌의 애국심과 국민의 염원을 헤아리는 양심이 있다면 저토록 태극기를 모독하는 만용을 자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도 국민과 더불어 2017년 3월 10일 11시. 바로 ‘그날’을 목 느리고 기다렸어야 한다.

■날이 선 죽창으로 누굴 찌를거냐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한다. 화가 나면 과격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한계는 있어야 한다. 개도 함부로 물지 않는다. 함부로 물면 미친개다. 미친개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한 것은 그들의 신앙인 박정희가 한 말이다.

특별검사의 집 앞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온 갓 공갈 협박을 한다. 주XX이란 여자는 목을 잘라야 한다고 고함을 친다. 박영수 특검의 부인이 살해 위협에 혼절했다고 전한다. 

광기가 소름 끼친다. 최고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협회장 출신 김평우 변호사와 서기석 변호사. 진정 하늘이 부끄럽지 않은가.

ⓒ광주인

국민을 대표한다는 김진태·윤상현·조원진 입에서 나오는 살기 어린 말을 들으며 그들의 처자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소름 끼치는 말을 마구 쏟아내는 그들의 집 앞에서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이 한 말을 쏟아낸다고 하자. 야구방망이를 들고 살해 위협을 한다고 하자. 반성을 해 보라.

국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 모르는가. 박근혜 탄핵으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로 시작된다고 믿는다. 능력이라고는 가증스러운 거짓말 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대통령은 이제 다시는 이 땅에 나타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定)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미국 하바드 대학의 ‘바우라’ 교수는 전 세계의 저항시를 모아 정 리를 했다. 그는 심 훈의 <그날이 오면>을 최고의 저항시라고 했다. 지금 탄핵이 인용되기도 전에 이 글을 쓰며 눈물짓는 대한민국의 늙은이도 같은 생각이다.

2017년 3월 10일 11시 그 날. 우리는 그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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