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 교육칼럼] 대학, 미래의 직업을 강권하다
[김용국 교육칼럼] 대학, 미래의 직업을 강권하다
  • 김용국 (정광고) 교사
  • 승인 2017.03.0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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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신학기 초만큼 바쁜 시간도 없다. 가정환경조사서, 교복 구입신청서, 체육복 구입신청서, 학교폭력예방 체크리스트, 자율학습 희망신청서, 중식·석식 희망신청서, 증명사진, 응급환자 관리동의서, 방과후학교 참가신청서 등등을 숨 돌릴 틈 없이 나눠주고, 걷느라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다.

여기다 수업자료 준비까지 챙기다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나처럼 고1 신입 남학생 담임교사이면 말해 무엇 하랴.

지난 2일 열린 광주여상고 입학식 모습. ⓒ광주시교육청 제공

나는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학생 상담자료 파일을 만들다 학생들 중 십여 명이 가정환경조사서의 희망직업란을 텅 비워둔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에 입력해야 되는데….”

나는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 십여 명을 상담실로 불렀다. 녀석들은 미지의 고교 세계와 험상궂게 생긴 나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실린 눈을 조심스레 내리깐 채 상담실로 들어섰다.

“이놈들, 이걸 이렇게 성의 없이 작성하면 안 되제. 느그들은 커서 바라는 직업이 읍냐?”

내 투박하고 거친 언사에 녀석들은 입에 지퍼를 채운 채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샘이 무섭냐? 안 잡아먹은 께 대답해봐. 이놈들아!”

그러자 한 녀석 씩 입을 떼었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대기업 연구원, 교사 등등이 녀석들의 입에서 쏟아졌다. 그런데 한 녀석이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너는 왜 말이 읍냐?”

나는 질문을 던진 후 녀석을 응시했다. 녀석은 입을 떼려다말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음을 직감한 나는 나머지 녀석들을 돌려보낸 후 녀석을 소파에 앉혔다. 녀석은 손을 쥐락펴락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 꼭 희망직업이 있어야 해요?”

“당연하지. 수시 전형으로 대학 갈라믄 있어야제. 니 그 희망직업에 맞춰서 1학년 때부터 독서활동도 해야 하고, 동아리 활동도 안 해야겄냐?”

“그… 그래요….”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의 미디어 교육 장면.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제공

녀석은 맥없이 말끝을 흐리고는 내일까지 알아오겠다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내 마음은 뭔가 께름칙했다. 뒷일 본 후 닦지 않은 느낌이랄까. 나는 소파에 앉아서 이런 심리상태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대입이란 막연한 조급증에 휩쓸려 내가 희망이란 단어의 긍정적인 의미에만 홀려 녀석에게 희망직업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녀석에겐 폭력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도.

유럽의 고교생들은 미래의 직업을 억지로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교를 마친 후에도 미래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경우엔 대개 일단 놀고 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직업(職業)도 유후탐(遊後探)’이다.

이렇게 놀면서 차분히 여유 있게 직업을 찾다가 불현듯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거기에 맞춰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은 우리나라와 달리 획일적인 연령층 대신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로 구성된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사고와 창의성이 샘솟고 활기와 생명력 충만한 대학이 유지되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우리의 교육환경에서 고1에게 희망직업란 작성은 너무 섣부른 감이 없지 않다. 성적 지상주의에 함몰되어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의 경험과 안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교과서와 문제집 속 간접경험이 대부분인 아이들의 꿈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학은 고1부터 고3까지 학생의 진로와 희망직업의 일관성을 요구한다. 학생들은 여기에 맞춰 독서활동, 동아리활동 등을 해야 하고, 학과도 선택해야 한다.

이렇듯 아이들은 대입 수능에 의해 꿈과 희망을 갖도록 강요받고 있다. 생기부 희망직업란이 비었을 경우 입학사정관들은 목표의식과 삶의 의지가 부족한 학생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래서 일선 고교의 담임교사들은 나처럼 빈칸을 메꾸라고 학생들을 종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으로부터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다시피 하고는 하릴 없이 빈 칸을 끼적이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성인이 되어 학창 시절 희망직업란에 끼적인 직업을 가진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리라. 경영학과를 졸업한 나도 교사가 될 줄은 학창 시절 어림짐작도 못했다. 교사는 내 세 번째 직업이다.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선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지난 2일 열린 전남대학교 2017년도 입학식. ⓒ전남대학교 제공

이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이름이 평생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대한민국 학벌사회에서 생기부에 기재된 한때의 희망직업을 토대로 고3의 등락을 결정하는 대학 당국의 처사는 지나침을 넘어 부당하기까지 하다.

나는 반성하는 마음이 배인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교실로 돌아가 마지막 그 녀석을 불러냈다.

“야, 미정이어도 좋으니까 결정되믄 말해라이.”

“네, 선생님.”

녀석은 어리둥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지만 의외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홀가분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나는 녀석의 웃음을 보며 조급증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깨달을 때까지 넉넉하게 기다려주는 우리 사회의 넉넉함과 여유를 꿈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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