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70년대 시절, 그 시절은 나에게 가슴 시리도록 눈부신 청춘이었다. 그 청춘의 한 가운데에 이른바 ‘쎄시봉’이라고 일컫는 송창식 · 윤형주 · 김세환 그리고 이장희 · 김정호 · 조영남 · 어니언스 그리고 양희은 · 박인희 · · · 의 ‘포크송’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2년 전에 그 이야기를 그려낸 [쎄시봉]이라는 영화에, 난 그토록 절절한 감동의 눈물을 쏟았다.

내가 가장 즐기는 예술분야는 단연코 영화이고, 그 다음을 꼽으라면 노래이다. 노래에서도 정태춘의 ‘봉숭아’ · 이동원의 ‘향수’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 정오차의 ‘바위돌’ ·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와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 그리고 가곡 ‘청산에 살리라 · 동심초 · 그리운 금강산’을 가장 즐기고 자주 부른다.

우리 국악에도 관심이 많아서, 대금이나 가야금과 해금 연주를 즐기지만, 판소리를 매우 즐긴다. 스물 시절에 우연히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만나서 한 소절을 흉내내고 그 뒤 끝에 ‘진도 아리랑’을 덧붙여 부르는 노래로 무려 30여 년을 무던히도 우려먹었다.(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 동생이 부르는 걸 녹음해서 흉내내어 배운지라, 발성도 창법도 엉터리다. 그래도 눈곱만큼 스며나는 조선 토종 냄새에, ‘또랑 광대’에도 끼어들지 못할 ‘얼치기 가락’을 사람들은 열광해 주었다. )

ⓒJTBC 팬펌싱어 갈무리

이렇게 나는 평생을 노래와 가까이 더불어 살아왔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노래를 좋아한 건 아니다. 중고등시절부터, 난 오페라의 ‘벨칸토 창법’을 싫어했다. 애당초 왜 싫어하는지 몰랐지만, 나중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들마다 갖는 자기만의 음색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창법은 살아있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그 어떤 꼭두각시의 억지로 길들여진 위선적인 발성으로 느꼈다. 그래서 갑돌이 노래와 길동이 노래를 구별하기 어려웠고,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음색에서 우러나는 감정적 생동감을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한 마디로 그건 내게 미이라처럼 ‘메마른 박제물’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추앙하는 예술에, 나는 왜 이렇게 삐딱한 걸까? 서양문화가 그 거룩하고 숭고한 신에게 바치는 찬양에 인간의 냄새를 없애는 순결함을 갖추려는 노력에서 비롯하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인간의 냄새’라는 게 숭고한 영혼의 반대쪽에서 이글거리는 육체의 욕망이고, 엄정한 이성의 반대쪽에서 날뛰는 감정의 찌꺼기이다. 그 인간의 냄새를 없애는 순결함을, 난 “살아있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그 어떤 꼭두각시의 억지로 길들여진 위선의 가면”처럼 느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벨칸토 창법이 그토록 싫으면 함께 어울려 놀지 않으면 되는데, 우리 가곡에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다. 목련화 · 봄처녀 · 비목 · 청산에서 살리라 · 그리운 금강산 · · · .

그래서 난 이 노래들을 일부러 ‘포크 창법’으로 내 음색을 살려서 불렀다. 그리곤 언젠가 유심초의 ‘별이여 사랑이여!’를 일부러 ‘벨칸토 창법’으로 불러보았더니 노래가 아주 맛깔났다.

금수현의 가곡 ‘그네’를, 장난스레 ‘벨칸토 · 뽕짝 · 째즈 · 포크’라는 네 가지 창법으로 뒤섞어서 불러보았다.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좋아했다. ‘장사익의 찔레꽃 · 이연실의 찔레꽃 · 백난아의 찔레꽃’을 내리이어서 부르는 ‘찔레꽃 3부작’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게다가 난 지난 10여 년 동안, KBS FM1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하루 10시간 가까이 들으면서 라틴 음악 · 스페인 음악 · 그리스 음악 · 러시아 음악 · 이슬람 음악 · 인도 음악 · 동남아 음악 · 중국 음악 · · · , 수없이 다양한 음악을 만났다.

내가 주섬주섬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1955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그런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우리는 이렇게 가히 ‘잡탕 문화의 세대’라고 할 ‘격동하는 문화의 물결’에 휩쓸려야 했다.

우리 문화가 중국문화 · 일본문화 · 미국문화 · 유럽문화와 어우러지면서, 동양 전통문화와 서양 근대문화 사이에서 상류층 문화와 서민 대중문화가 요동을 치고 뒤섞이며 휘몰아쳤고, 그게 다양하게 만나고 섞여들면서 최근에 음악 분야에선, ‘크로스 오버’라거나 ‘월드 뮤직’이라고 불렀고, 그 중에 하나의 물결이 이른바 팝(Pop)과 오페라(Opera)의 만남이라는 ‘팝페라’의 뮤지컬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나의 노래인생은 ‘크로스 오버’의 물결과는 아무 상관없이 내 스스로 즐기다가 생겨난 갈증에서 자발적으로 만든 내 개인의 작품들이다. “벨칸토는 지나치게 엄정하여 건조하다. 뽕짝은 감정이 지나치게 넘쳐서 흐물흐물하다. 째즈는 지나치게 분방하여 어수선하다.

포크는 지나치게 간질거리며 여리다. 국악은 너무 개성이 강해서 다른 음악과 잘 어울리질 못한다.” 그래서 나는 라틴음악과 그리스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클래식의 단정함과 포크의 간결함을 잡고서 깔끔하게 샤우팅하는 걸 즐겼다. 그러하다보니 내 나름대로 찾아낸 노래가 우연하게도 ‘팝페라’와 엇비슷했다.

음악영화를 좋아하지만, 음악회나 팝페라까지는 찾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KBS FM1의 ‘세상의 모든 음악’으로 다양한 음악을 향한 갈증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하다가 JTBC의 뉴스룸 뒤 끝에 우연히 [팬텀 싱어]를 만났다. 단박에 빨려들었다.

그 동안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만나는 수많은 음악 중에서 열광할 만한 우리나라 팝페라 가수들의 크로스 오버 노래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 [팬텀 싱어]엔 바글바글 많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아! [팬텀 싱어], 대박!!!” 이토록 좋은 가수들이 그 동안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퀀텀 싱어’라는 불빛에 우르르 몰려드는 불나방처럼 나타났을까? 팝페라 장르가 음악 안에서 하나의 장르로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성악 쪽이 자기 우월감에 빠져서 다른 음악에게 굳게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어서 문득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 그 동안 이런 훌륭한 재목들이 세상에 드러날 마당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구나! 둘, 그런 마당이 없으니까, 훌륭한 재목들이 그저 그런 재목들에게 덮여서 제대로 드러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JTBC 홈페이지에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어둠 속의 숨은 실력자. 천상의 보이스를 숨기고 살아온 가면속의 꽃미남들. 우리는 그들은 ‘팬텀’이라 부른다. 팬텀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지상최후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순간, 그들은 ‘팬텀싱어’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팬텀 싱어]에, 우린 “누가 누가 더 잘하나?”에 관심이 많겠지만, 그것보다는 성악의 교만을 깨뜨릴 마당이 생겨났다는 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지금 이 글로 “누가 누가 더 잘하나?”를 말하기엔, 이 글마당이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그게 오히려 번거롭다 하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 동영상들을 직접 만나보는 게, 글자 그대로 “百聞이 不如一見이다.”고 하겠다.

그들의 노래가 초점이지만, 심사위원들의 표정과 논평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들의 논평에 동의하지 못할 때도 없지 않지만. 가수들과 심사위원들 그리고 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손을 노래가락에 실어 나르다가 온 몸에 절로 추임새가 일어난다. 감동하여 절로 박수를 치다가도, 그것도 모자라서 감동의 눈물이 쏟아지기까지 . . . .
 
<명장면 보기> http://tv.jtbc.joins.com/clip/pr10010427/pm10037055

감동의 눈물까지? 그렇다. 한 두 곡이 아니다. 김현수의 ‘사랑의 묘약’ · 이동신-곽동현의 2중창 ‘카루소’ · 고은성-고훈정의 2중창 ‘Show must go on’ · 고훈정-이동신-이준환 3중창 ‘루나’ 그리고 유슬기-백인태의 2중창 ‘위대한 사랑’ · 유슬기-백인태-박상돈의 3중창 ‘사랑이 시로’ · 유슬기-백인태-박상돈-곽동현의 4중창 ‘사랑이 움직인다’ 이 중에서도 ‘사랑의 묘약’ · ‘위대한 사랑’ · ‘카루소’ · ‘루나’ · ‘사랑이 시로’는 그 감동의 눈물을 멈추기 힘들었다.

딱 하나만 꼽으라면 ‘카루소’이다. 가수를 꼽으라면, 김현수 · 유슬기 · 고훈정 · 곽동현인데, 한 명만 꼽으라면, 곽동현이다. 그는 락커이다. 그 어떤 노래도 그 노래에 딱 들어맞게 요리하고, 그 맛이 절묘하다. 그의 최고 무기는 극강 고음이다.

그리고 그 극강 고음을 내지르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거기에 매서운 고추맛을 담아내거나 단단한 얼음을 씹어낸다. 그 소리와 그 맛이 놀랍고 놀랍다. 그 맛을 처음 만난 ‘카루소’에서 너무나 놀랐다.

마지막 결승전의 경희대 무대가 너무 넓고 메아리가 너무 겹쳐들어서 그의 그 맛을 잡아내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1등을, 고정훈 팀이 먹었는데, 난 유슬기 팀이 먹어야 한다고 보는데 아쉽다. 그게 어떠하든, 문화예술계엔 대박이고, 나에겐 감동이었다. “[팬텀 싱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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