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치는 ‘혁신과 미래가치’이지 ‘꼼수’가 아니다

입춘이 지나고 대지에는 생명의 새싹이 움트고 있다. 한국정치도 ‘박근혜 3월 탄핵’, ‘4월 정권교체’를 위해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고 있다. 온 국민이 ‘희망의 봄’을 목 놓아 부를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2월이다.

그러나 광주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37년 만에 또 다시 진실규명이라는 역사적 책무 앞에 놓여 있다. 당시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과 일대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의 진실이다. 그리고 미궁에 놓인 발포 책임자를 찾는 것.

이용섭 전 의원. 지난해 6월 총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 전 의원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을 지구당 위원장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져 지역정가에서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 ⓒ이용섭 전 의원 누리집 갈무리

광주는 지난 37년 동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올해도 어김없다. 광주의 아픔과 바람은 무엇일까? 국민 누구나 권력과 경제규모, 지역출신을 떠나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것.

‘광주의 정치’는 쉼 없는 혁신과 미래를 향한 민주주의를 지향해왔다. 그래서 정치적 시기마다 온 국민이 호남과 광주를 주목했다. ‘야권의 심장부’, ‘한국 민주주의 보루’라는 광주정신의 수식어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정작 광주 안을 들여다보면 부끄럽다. 그 동안 광주일꾼으로 선출한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광주정신과는 반비례형이 대부분이었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광주에서 명멸해갔으나 광주정신으로 한국정치, 광주정치를 반듯하게 일궈내지 못했다.

원인과 배경에는 정치제도와 환경 등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나 가장 큰 이유는 ‘인물론’이 될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광주정가에는 광주정신과는 그리 어울려 보이지 않음에도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관료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용섭 전 의원 누리집 갈무리

일부 관료출신 정치인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시민사회 형성과 통일시대 준비라는 시대적 담론과는 거리두기를 해오다가 광주와 온 국민의 눈물과 피, 그리고 죽음을 바쳐 정권을 교체해 놓으면 무임승차와 편승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용섭 전 의원이라면 지나친 말이 될까. 이 전 의원은 8일 일부 언론매체를 통해 직무대행체제인 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을 지구당 위원장 신청설이 보도됐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당에서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여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을 통한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당 요청과 정권교체를 이유로 위원장 신청에 무게를 뒀다.

이 전 의원은 1980년대 고시에 합격한 후 5공 시절 청와대 근무, 90년대 재정경제원 간부를 지내다 김대중 ‘국민의정부’에서 재경부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지낸다. 노무현 ‘참여정부’에서는 승승장구한다. 국세청장.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비서관, 행자부 장관, 건교부 장관을 역임한 것.

그 뒤 광주 광산을에서 18대, 19대 국회의원으로 연거푸 당선됐다. 18대 초선 출마 당시 5공 당시 청와대 근무 이력이 5.18단체에 의해 공개 비판되자 직접 단체를 찾아 해명하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 6년 기간 동안 정치적 가치관이 드러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병원 영안실로 옮기는 관을 멨던 그가 정작 당 대표를 출마해서는 ‘나는 친노가 아니다’ 발언으로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놀라게 한 것.

지난 2014년 광주시장 출마 당시에는 현 윤장현 시장 공천에 반발하여 ‘눈물의 탈당’을 결행한 후 광주시장이었던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단일화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발산했으나 시장권력 쟁취는 실패했다. 이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는 민주당에 복당하여 광주 광산을에 출마했다가 ‘국민의당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2014년 2월 광주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는 이용섭 전 의원. ⓒ광주인

낙선 2개월 후 지난해 6월 14일 이 전 의원은 “이번 선거결과는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더민주의 광주선거 전패, 저라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고 정치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이제 광주 정치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저의 진정성이 시민들께 전달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광주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결코 호남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고 자진 퇴각을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정치에 대해 “광주의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낙후를 위해 제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시장선거에도 나가보고 국회의원에도 출마했습니다.”고 정치이유를 밝혔다.

이 전 의원이 밝힌 ‘광주의 정치적 소외’, ‘경제적 낙후’라는 정치적 대의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과 절차는 ‘광주공동체’ 방식이 아닌 자신의 화려한 관료경력과 ‘개인기’에 더 기대진 않았을까? 그래서 정치적 계기마다 ‘광주다움’은 거세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정치적 수사’가 자리했을까?

20대부터 전라도 출신이라는 지역차별을 극복하고 중앙부처의 관료생활을 탄탄하게 해온 것은 이 전 의원의 피나는 노력은 아무리 찬사해도 부족하다. 여기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 탄생에 힘입어 화려한 관료 경력과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것은 광주와 온 국민 그리고 시대에 대한 부채일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시대적 배경으로 탄탄하게 성장해온 이 전 의원도 ‘광주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해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이어져온 광주 금남로 촛불은 ‘광주 인물보기’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용섭 전 의원 누리집 갈무리

화려하고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관료형 정치인보다는, 지역에서 지역민과 함께 여민동락(與民同樂)하면서 시대담론을 개척해온 혁신적인 인물을 찾고 있는 것. 이제 광주는 화려한 명함보다 소박하지만 ‘공동체 마음’으로 묵묵하게 일해 온 ‘젊은 지역일꾼’을 통해 ‘광주정신’ 실천과 ‘미래형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이 전 의원도 이러한 금남로 촛불민심을 잘 알 것이다. 지난해 6월 이용섭 전 의원은 정계 은퇴 기자회견문 마지막 부분에 “보내주신 성원, 평생 살아가면서 갚겠습니다. ‘정의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만드는 길목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 ‘길목’이 지금이라면 촛불이후 달라진 ‘광주인물론’에 깊이 천착해보기를 정중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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