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고3은 심신상실한 금치산자 아니다

세계 추세 맞춰 선거연령 19세에서 하향해야

최근의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의 악의 축 중의 하나인 김기춘, 조윤선의 구속만큼이나 반가운 소식 중 하나가 ‘18살 선거권’이었다. 

‘드디어 이 땅에도 민주주의를 갉아먹던 거악 세력에 맞서 각성한 국회의원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 텃밭에 ’18살 선거권‘이란 새 씨앗을 뿌리려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래서 난 내가 가르치는 고1들에게 말했었다.

“야, 느그들 고3되믄 투표허겄다이. 만약 내가 대통령 출마허믄 나 찍어줄거제?”

하지만 애들의 정치적 식견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찍어주고 싶지만 함부로 찍었다간 나라 꼴이 요 꼴이 되자나요.”

“샘 공약 뭣인디요?”

요쯤 되면 나도 요놈들의 표를 거저 먹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공약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샘 공약은 간단하다. 박근혜 반대로만 헐란다.”

“그거면 되죠!”

“뭐가 더 필요해요. 팍 밀어줄게요!”

18세 선거권 보장 서명운동 모습. ⓒ민중의소리 갈무리

그러자 애들은 내가 결코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걸 진작 간파했는지 순식간에 동정심이 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이에 화답하여 나 자신이 벌써 대통령이라도 된 양 두 손을 번쩍 치켜 든 채 고개를 두어 바퀴 돌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뻐기는 시늉을 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내 기쁨의 여운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가뭄 날 찔끔 내린 여우비에 불과했다. 아이들 볼 면목도 없었다. 부정부패, 수구적 작태와 결별한답시고 새누리당을 나와 진보적 보수, 경제민주화란 기치를 내걸고 딴집 살림을 꾸렸던 ‘바른정당’의 배신 때문이었다. 바른 정당은 정유년 올 초인 1월 4일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과 더불어 선거권 만 18세 하향에 찬성했다가 단 하루 만에 이를 뒤집어 버렸다. 이들에게 배신은 그저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한 놀이나 되나보다.

나는 배신의 이유가 궁금해 얼른 인터넷을 뒤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으로서 입바른 소리 좀 하는 걸로 봐 좀 깨어있는 인사로 여겼던 권성동 의원이 고3인 18살은 독자적인 판단능력이 부족하단다. 한 때 박근혜에 맞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쳤던 유승민 의원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단다.

이들의 반대를 보자니 울컥 분노가 치밀며 ‘그럼 그렇지.’란 말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국정농단의 장본인 중 하나인 새누리당이란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 ‘그른 정당’임을 방증한다. 이들이 가까이 있었다면 면상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또 ‘진짜’와 ‘사이비’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던 이들에게 속을 뻔하였다. 하지만 어찌 보면 잘된 일이다. 그들에게 주저 없이 ‘사이비’란 낙인을 찍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들의 말대로 18살 고3들이 독자적인 판단능력이 부족한가? 그럼 대한민국의 고3들은 자기 의지대로 판단을 내릴 줄도 모르는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자들이란 말인가?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고교는 금치산자들의 집합소다.

그럼 묻고 싶다. 바른정당 의원들도 고교 시절 심신이 박약한 금치산자로서 대학 입학은 어찌했으며 대학생활은 어찌했냐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선거 연령을 하향시키는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채 자국민을 이렇게 비하하다니 이들에겐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국민의 세금이 아깝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고1인 만 16세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 고3은 이들 나라 고1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이는 민주주의 교육의 산실인 대한민국의 학교와 교육 자체에 대한 부정이요, 불신에 다름 아니다.

하나 더 묻겠다. 만약 댁들의 자녀가 수시 전형을 치르는 고3 수험생이라고 가정하자. 수시전형에선 자기소개서가 매우 중요한데, 자녀의 자기소개서에 댁들은 ‘독자적인 판단력이 부족한 학생’과 ‘독자적인 판단력을 갖춘 학생’ 중 어떤 문구를 써넣겠는가고. 모르긴 몰라도 이런 의원들이야말로 후자를 떡하니 써넣도록 주문할 것임은 명약관화다.

교육학자인 피아제는 인지발달의 마지막 단계인 형식적 조작기에 속하는 15세가 되면 가상적,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고 도덕적 개념, 철학적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15세면 선악미추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다. 모르긴 몰라도 16세 선거권을 부여한 나라들은 이 이론에 입각해서 청소년들의 선택을 존중한 것일 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만 19세 선거권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걸핏하면 세계화, 글로벌화, 지구촌만 빚 좋은 개살구 식으로 거들먹거리지 말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고3에게 현실인식의 눈을 똑바로 뜨도록 만 18세 선거권이나 제대로 부여하자.

18세 선거권, 이것이 박근혜 탄핵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살리고, 민주주의를 살리는 보약임을 명심하자. 국회여,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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