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중략)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정영일 광주시민협 상임대표.

도종환 선생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시를 읽다 보면 가끔 떠오르는 아이들의 얼굴이 있다. 어느 학교 현장이나 비슷하겠지만, 항상 결석하고 학교생활에 불성실한 아이들을 보면 우선 화가 치밀어 올라 문제아라는 선입견속에서 신경전을 시작한다. “제적시키겠다.”는 말에서부터 온갖 협박(?)을 다 동원해도 대책이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보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어느 날 문득, 학교에 와야 하는 시간에 도대체 오지 않는 아이들의 일상이 궁금해서 추적해보기로 했다. 그때 또래 친구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아이들에게 부끄러웠는지,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많은 아이들의 일상이 한부모 가정이라는 환경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곳인지,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인지를 오래지 않아 이해하게 되었다.

병든 엄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노동 현장에 가야 하는 아이의 절박함. 자신의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아이. 상담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사정과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그들을 학교에서 노동 현장으로 내몰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지훈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생활고와 아빠와의 불화로 가출해서 집을 비우고,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서울로 가서 몇 년째 연락이 두절되었다. 평소에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애만 태우다가 가까스로 만난 지훈이의 손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할머니와 생활하기에 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생계비를 충당하기 위해 식당에서 배달 일을 하다가 지나가는 트럭에 사고가 나 다쳤다고 한다. 이제는 일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아이의 힘없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아이에게 미안했다.

휴학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고, 복학하여 한 학기를 마친 후에 또 다시 생계를 위해 휴학을 반복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두 배나 더 긴 세월을 생활 현장과 학교를 오가는 모습.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조차 미안하기만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지난 3일 열린 광주시국촛불집회. ⓒ광주인

지훈이는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올해 초에 졸업을 하고 부사관에 지원하여 멋진 군인이 되었다. 지난주 휴가를 얻어 멋지고 강한 해병대 부사관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능력보다는 부모의 능력을 믿으라.”는 최순실 정유라 사건의 스캔들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이 아이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를 생각하면 참담하기까지 하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도 강한 의지와 꼿꼿함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리라. 나는 검게 그을린 건강한 그의 듬직한 모습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의 진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본다.

정치가 부패하고 정의와상식이 죽어버린 현실 속에서, 분노하는 촛불의 절규를 보면서 아이들의 사기가 꺾이고 희망보다는 분노를 노래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흔들리며 피는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

어린 나이에 살벌한 생존의 현장을 맞닥뜨려야 하는 지훈이의 모습은 가슴 먹먹한 아픔이기도 하지만, 당찬 모습으로 꺾이지 않고 흔들리며 피어난 아름다운 꽃은, 온실에서 태어난 유약한 화초보다 더 아름답고 그 진한 향으로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되리라 믿는다.

춥고 가난한 이 겨울, 삶의 현장에서 아직도 흔들리며 피어나는 청춘의 꽃들이 어디 지훈
이 혼자뿐이랴? 수많은 지훈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동초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그들이 희망을 가질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내일이 되도록 하자.

**윗 칼럼은 전교조광주지부가 발행하는 <광주교사신문> 190호에 실린 내용을 재게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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