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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높은 것은 뾰족하지도 않고 평평하더라무등산 규봉암

저녁, 겨울 빛은 비스듬히 누워서 온다. 벽에 기대어 서서히 미끄러지면서 잠들듯이, 겨울 해는 기운다.

예민하지 않은 각도로 다가온 겨울 빛은 그래서 노을이 길고, 그림자가 길다. ‘직사광선’으로 높은 곳에서 내리 쬐는 여름 빛과 달리, 내가 ‘옆사광선’이라고 부르는 겨울 빛은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그 기울기로 온다.

눈 내린 등성이가 붉게 물든 산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찻길이 끊긴 산속으로 십 리 길을 더 가야 한다. 해는 늘 수평선 너머로 지는 것이지만, 산에서는 그 높이만큼 일찍 저문다. 그것을 알면서도, 해찰을 부렸다.

ⓒ불광

어둑어둑한 겨울 고갯마루를 넘어가면서, 분 바르고 사연 많은 여인이 앉아 있는 주막을, 어찌 막걸리 한 잔 걸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나목의 산이 하얗게 화장하고, 하늘은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데, 카메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산새 한 마리 날지 않고, 하늘에는 별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잠깐 그친 눈이 다시 온다. 소복소복 내리지 않고, 눈은 바람에 실려 모자 차양 밑으로 파고든다.

날은 춥고 길은 멀다. 한눈을 판 대가가 혹독하다. 저 멀리 백마능선이 말의 잔등처럼 휘어져 하늘과 땅을 하나의 선으로 가르고 있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걷고 또 걸었을 때, 갑자기 숲이 끝나고 툭 트인 곳, 너덜에 도착했다.

너덜은 돌의 강이다. 저 규봉圭峰 꼭대기에서 동남향으로 3km에 걸쳐 흐르는 석강石江. 인도 출신 고승 지공指空 대사가 여기 석굴을 지어 정진했다 해서 이름 붙은 지공너덜이다. 너덜을 지나 왼쪽 산모퉁이를 돌면, 드디어 무명이 걷히고, 규봉암에 도착할 것이다.

멀리 불빛이 보이는 마을에서는 저녁 먹을 시간이건만, 산중 암자는 삼경三更이다. 주승은 아니 보이시고, 남색 행건을 찬 행자님이 방사를 안내해 준다. 행자는 묵언 수행 중인지 말이 없다.

ⓒ불광

묻지 않은 저녁공양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다 꿀꺽 넘어간다. 우리는 탈탈 굶고 누웠다. 방은 따뜻했고, 금방 곯아떨어졌다. 중간에 깨었을 때, 아직 오늘이었다. 겨울밤은 여름밤을 2개 이어 놓은 것처럼 길다.

그러다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 아! 도량석 도는 소리가 들린다. 목탁 반주에 맞춰 낮은 독경소리가 우퍼에서 흘러나오는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처럼 아늑하게 감싸 안고 돈다.

도량석은 예불로, 예불은 반야심경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 시대신주是大神呪 시대명주是大明呪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

규봉암이 앉아 있는 무등산無等山의 이름은 바로 저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에서 왔다. 반야바라밀다가 얼마나 크고 신비한지, 얼마나 크고 밝은지, 더 높은 것이 없을 만큼 높은지, 그렇게 점증으로 나아가다, 결국 이르는 곳이 무등이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것을 말할 때, 하늘보다 더 높다고 하고, 최고 높다고 한다. 가장 높은 것이 하나만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은 기독교적이다. 무등은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무엇이 더 높은지 헤아릴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불교에서 가장 높은 것은 뾰족한 것 아니라 평평한 것이 되는 것이다.

ⓒ불광

무등산은 꼭대기가 없다. 머슴 등처럼, 둥글고 완만한 곡선이다. 이 산의 동쪽 8부 능선쯤에 거대한 주상절리가 팔 벌려 감싸 안은 제비둥지처럼, 규봉암은 깃들어 있다.

동쪽 하늘에서 여명이 튼다. 새벽은 아침으로 바뀌고, 구름은 붉게 물들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아침햇살이 관음전을 비추고, 처마 밑으로 들어온 빛은 관음보살의 무릎에서 빛난다. 빛은 계속 올라가 주상절리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눈 내린 겨울 산사에 따사로운 황금빛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그 황홀하고 무등한 아름다움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규봉암은 신라 의상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전해 내려오지만, 그 흔적은 없다. 고려 말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격전지라 하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사지가 되었다가, 영조 때(1729) 연경 스님이 ‘웅장하고 날아갈 듯’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한국전쟁 때(1952) 흔적도 없이 불타고 말았다. 지금의 규봉암이 어엿한 모습을 갖춘 것은 1991년 정인 스님이 주지로 와서 원력을 세운 덕분이다. 규봉암은 지리산 법계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곳에 자리하여 불사가 쉽지 않은 곳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다 쓰러져가는 두 칸짜리 양철집에 한 칸은 법당이고, 다른 한 칸에는 내가 살았는데, 며칠 나갔다 왔더니 쥐가 이불 밑에 새끼를 낳아 놓았더라.”면서 “몇 번 떠날까, 떠날까 하면서도 공부라는 것이 별 것인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인연이고, 금생에 내 몫이 아닌가, 절을 복원하는 일이 내가 부처가 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게에 돌을 져 나르며 축대를 쌓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 되어 간다.”고 정인 스님은 말했다.

광주 시내에 절을 지었으면 빌딩을 올렸을 것이고, 돈을 알았으면 못했을 것이고,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고, 신도들이 기와 한 장 한 장 십시일반 모아 절을 지었는데 정말 절은 저절로 되더라고 하고, 등기도 없던 절을 내가 사설사암이 아닌 송광사 공찰로 등록했다는 스님의 말씀이 어느 법문보다 깊이 가슴에 닿았다.

ⓒ불광

무엇을 공들여 쌓되, 쌓은 뒤에 미련을 두지 않는 마음이 스님의 마음이다. 그것은 광석대廣石臺가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암자 뒤로 병풍을 두른 거대한 기둥 모양의 바위들, 하늘로 치솟아 오른 용암이 타서 재가 되고, 다시 얼고 녹고 굳으면서 돌이 되었고, 그렇게 윤회를 거듭하여 8,500만 년의 세월이 흐른 광석대.

사람들은 그 주상절리의 비경을 여래존석, 미륵존석, 관음존석의 삼존석三尊石이라 부르고, 그 앞으로 펼쳐진 돌기둥들을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등으로 이름 지었다. 그러니까 광석대는 인간이 만든 고대 신전이 아니라, 신이 만든 태고의 신전인 셈이다. 그 앞에서 무엇을 높다 할 것이며, 무엇을 길다 할 것이며, 무엇을 미련이라 할 것인가?

아침 공양으로 누룽지 한 그릇 얻어먹고, 합장하고 나왔다. 그 흔한 석탑 하나가 왜 규봉암에는 없는지, 하룻밤 자고 나면 안다. 급할 것도 없이, 왔던 길을 서서히 거슬러 돌아간다.

저 앞에 지공너덜이 펼쳐져 있다.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너덜 위를 지나갈 때, 바람은 돌의 속삭임을 들려줬다. “네가 서 있는 이 너덜도 옛날에는 주상절리였다.”는 속삭임. 바위들이 쓰러져 있는 너덜은 저 홀로 생겨난 돌의 무덤이 아니었다.

그것은 옛날의 광석대였고, 아름다운 주상절리였다. 무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돌기둥은 중력을 따라 뒤로 무너져 내렸고, 그것이 돌의 강을 이룬 너덜이 되었다는 옛 이야기를, 지나가는 바람이 들려주었다.

**이광이 작가는 전남 해남에서 1963년에 태어났다. 조선대, 서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신문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산과 절이 좋아 늘 돌아다녔다. 한때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면서 불교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됐다. 음악에 관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등이 있다.

**윗 글은 월간<불광>에 연재 중인 <이광이의 절집 방랑기>를 재게재한 것 입니다. (www.bulkwang.co.kr/)

이광이 작가  yiyi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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