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촛불 詩' 연재

닭그네야, 너는 거기서 오래오래 그네나 타렴
이봉환 


요즘 닭그네보고 그만 닭장을 떠나라며 달구새끼 주제에 그네를 다 탄다고 꼴만 봐도 재수없다고 걍 꽉 잡아먹어버리고 싶다고 난리들인데 생각하기에 따라 닭그네가 잘 한 일도 많다 먼저 즈그 아부지 장닭에 대한 환상을 깨준 건 참 잘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 부족 늙은 언니오빠들은, 닭그네 아부지 장닭님 덕분에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얼마나 그를 숭앙했던가 콘크리트처럼 수십 년 건재해오던 그 대책 없는 장닭 망령을 단 몇 주 만에 닭그네는 거뜬히 두드려 잡아줬다 둘째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희망도 없는 부족민들에게 밥맛을 돌게 해준 일이다 요즘 만나는 이들마다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도 무슨 일인지 얼굴에 잔뜩 신바람이 나 있다 돈벼락이 하늘에서 쏟아진 것도 아닌데 이토록 싱글벙글하다니, 참으로 요상한 부족민들의 심리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부족들을 대통합으로 이끌어준 공로 또한 매우 크다 찬성5%, 반대90%로 부족 대부분을 제 반대의 방향으로 똘똘 뭉치게 해주었다 그리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부족민들을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게도 하였다 헌데 요즘 상당수의 닭들이 닭그네와 한통속이 되기 싫다고 닭장을 탈출하겠다고 꼬끼요~ 홰를 치며 곡소리 높여댄다는 소문, 저들도 폐계가 되기 전에 야생의 싱싱한 지렁이를 한번 먹고 싶은 것이다 저 어둠 속 비선에서 던져주는 사료 나부랭일랑 거부하고 닭장 밖으로 나가겠다고 어디 뚫린 구멍은 없나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다는데,

그러므로 닭그네야, 내려오란다고 덜컥 내려오지 말고 우리한테 좋은 일 더 많이 하면서 너는 닭장 속에서 왔다갔다 그네나 타렴!

 













1988년 <녹두꽃>에 ‘해창만 물바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밀물결 오시듯> <내 안에 쓰러진 억새꽃 하나> <해창만 물바다> <조선의 아이들은 푸르다>가 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