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광주박물관, 도자 제기 140여점 특별전

2016년 한 해를 마감하는 본 전시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제기의 특징과 의미를 파악하고, 유교 문화의 확산으로 도자 제기가 애용되는 과정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송의정)은 오는 6일부터 2017년 4월 2일까지 특별전“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중시한 조선 왕조에서의 제기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올리고 복을 내려 받는 그릇이었다. 동시에 시공간을 넘어 국가, 지역, 친족공동체를 묶어주는 기능을 하였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제기의 재료는 금속, 목재, 도자 등 으로 만들어졌지만 조선 초기에 금속이 부족해지면서 왕실 제례에 도자 제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도자 제기는‘예禮’를 상징하는 도구이자 특유의 미감을 담은 예술품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5세기 전후에 제작된 '황금눈(黃目) 구름무늬 준尊(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 모양 제기'등 140여점이 대거 선보인다.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취지에서 광주 충효동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의 분청 제기를 한자리에 모아 공개한다. 충효동에서 나온 제기는 조선 왕실의 크고 작은 의례에 사용하였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번개, 꽃, 물결, 넝쿨무늬와 게나 가재 등 독특한 문양이 장식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시에 출품된 조선시대의 도자 제기를 보면 제작 형태에 따라 크게 세 시기(15~16세기, 16~17세기, 18~19세기)로 나뉜다. 각 시기에 따라 모방과 독창적인 변모를 거쳐 완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유교 문화가 보급되고 확대되면서 사용 계층은 왕실에서부터 점차 향교, 사대부가, 민가까지 저변화되면서 도자기 문화가 폭넓게 파급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특별전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광주 충효동에서 분청제기가 생산되다’에서는 무등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광주 충효동 가마터에서 출토된 조선의 제기를 소개한다.

충효동은 14∼15세기 무렵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백자를 만들었던 곳이다. 1963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을 통해 처음 알려진 이후,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재조사를 하면서 이곳 일대에서 청자, 회청사기,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기 등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가 생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분청 제기 중에서는 보簠와 궤簋, 산준山尊, 희준犧尊, 작爵, 상형象形 제기 등이 보이며, 15세기 조선 왕조의 의례儀禮에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하였다. 기본적인 형태는 중국 제기의 교본인제기도설祭器圖說의 내용을 따르면서도 화려한 장식 보다는 간략한 문양을 선호하였다.

번개, 꽃, 물결, 넝쿨무늬 등이 주를 이루며, 게나 가재처럼 독특한 문양이 장식되기도 하였다. 특히 궤의 뚜껑에 ‘최상崔尙’과 같은 사기장沙器匠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조선의 제례祭禮와 왕실의 대소大小 의례에 사용하였고, 중앙 관청에 공급하기 위한 공납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제2부‘제기도설祭器圖說의 금속 제기를 본뜨다’에서는 15~16세기에 조선 왕실와 관청이 제기도설의 내용을 따라 제작한 도자 제기에 대해 살펴본다. 조선 초에 제작된 상감분청사기 제기는 금속 제기처럼 세밀하게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점차 조화, 철화, 귀얄, 덤벙분청사기의 단계로 가면서 생략과 변형이 시도되었다. 이 후 관요官窯가 설치(1466~1469)된 후에는 백자 제기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보, 궤, 작, 준, 이 등 도자 제기의 종류와 제사에서의 쓰임을 제기도설의 도해와 함께 살펴본다.

제3부‘독창적인 백자 제기로 바뀌다’에서는 16~17세기에 만들어진 독창적인 백자 제기를 소개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는 전란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의 결속과 유지를 위하여 제사가 성행하게 된다.

그 결과 백자 제기의 질과 형태, 심지어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제기가 도자기로 바뀌면서 도자기의 특성에 맞게 형태도 바뀌게 된다. 16세기 백자 제기는 장식이 과감히 생략되고 특징이 과장되고, 17세기에는 완전히 추상적이고 독창적인 제기로 변모하게 된다. 굽 측면을 삼각형 또는 반타원형으로 몇 군데 도려낸 분할굽과 몸체에 둘러진 세로 톱니무늬 장식띠도 그 특징 중 하나이다.

제4부‘가장 조선다운 백자 제기를 완성하다’에서는 가장 조선다운 백자 제기가 완성되는 18~19세기의 제기들을 전시한다. 18세기 이후 양반이 증가하면서 가문의 제사도 늘어났으며 사대부가를 비롯한 민가에서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사당에서 사용한 제기는 굽이 높은 백자 제기로서 많은 양을 생산하였다. 청화로‘제祭’라는 명문이 쓰여지기도 했다.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된 만큼 단정한 선과 면, 정결한 백색의 제기들이 특징이다.

이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마지막 코너에서는 제사의 절차에 따라 사용한 도자 제기와 관련된 영상과 함께 제기를 전시하였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처음 마련한 특별전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를 통하여 조선시대의 제례의 절차와 성격, 그리고 도자 제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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