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침묵은 유죄

수 없이 많이 써먹은 기록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드골이 조국 프랑스에 돌아왔다. 그가 제일 먼저 단행한 나치 협력자 처형에는 수많은 언론인이 포함됐다. 처형장에서 언론인들은 항의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드골의 대답이다.
  
“바로 그것이 죄다”
  
침묵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프랑스의 언론인. 그들은 처형한 드골을 비난한 프랑스 역사의 기록은 없다. 프랑스 인들의 지성이다. 4·19 당시 분노한 국민에 의해 불탄 서울신문을 아쉬워하는 기록은 없다. 민심이다.
  
10월 29일, 청계광장 집회장에서 언론사 차량을 보며 시민들이 쏟아 낸 말은 “저 XX들 왜 나타났냐.” “KBS 기자들 빼라. MBC 기자들 빼라” “조·중·동 종편 기자들 빼라” 시민들의 시위집회 현장에서 기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카메라가 부서졌다. 회사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 남의 회사 기자를 사칭한다. 대중 앞에서 얻어터지는 개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거짓말로 모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겠지만, 거짓말을 하는 기자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 ⓒ청와대 누리집 영상 갈무리

며칠 밤을 새운 노름꾼들의 썩은 냄새 꽉 찬 방문을 열 때 들어오는 청정한 바람 같은 한 줄의 기사는 막힌 가슴을 뻥 뚫는다. 박근혜가 던진 개헌이라는 똥 볼을 한 방에 날려버린 JTBC. 기죽은 국민이 모두 일어나 환호하고 박수친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다. 이것이 언론의 힘이다.
  
언론의 힘을 우리는 안다. 이승만의 독재 시절, 동아일보가 국민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던 한 줄의 기사가 얼마나 희망을 주었던가. 잡혀가 매 맞고 해고되고 굶주려 죽은 언론인들을 이루 열거할 수도 없다. 책을 팔러 다니던 해직 기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래도 그들의 붓은 꼿꼿했다.
  
이승만을 찬양하고 박정희를 미화하고 전두환에게 무릎 꿇은 언론인이 사장이 되고 장관이 되고 그 앞에서 아양을 떨던 기자들의 비굴한 얼굴. 종편에 나와 개소리를 지껄이는 정치평론가는 대부분 언론인 출신이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지금 무엇이 있는가. 광화문과 청계천 광장을 메운 수만 국민을 보면서 그들의 입은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미 변하고 있다.
  
■광장의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10월 29일 청계광장, 바로 옆에는 채널A의 건물과 그 건너편에 조선일보가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다. 광장 곳곳에 세워진 취재 차량들이 뜨거운 열기를 뿜는다. 고양이처럼 냄새를 맡은 것일까. 자신의 신분도 밝히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공중파와 종편 기자들이 지금은 마음 놓고 신분을 밝히는가. 조·중·동의 기사가 달라졌다고 한다. 왜 달라졌을까. 왜 지금인가.
  
주머니 깊숙하게 비수를 감추고 언제나 빼 들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며칠 사이 조선일보의 변신놀음은 현기증이 난다. 기레기 놀음은 끝내고 이제 정도를 걸어야 한다. 강천석은 칼럼에서 ‘서두르라.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이 나라의 언론도 시간이 없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한다.
  
KBS노조가 '최순실 보도참사 관련 7대 취재 제언'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어 "KBS의 관련 보도는 여전히 타사 단독 보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참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자사 기사는 외면한 채 JTBC 뉴스룸을 보고 있는 불쌍한 공중파 기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국정감사장에서 보도국장에게 ‘대답하지 마’ 명령하는 KBS 사장 고대영은 누구인가. 기자 출신이다.
  
"온 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관련 보도를 접하며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보도를 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처절하게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국민들 볼 낯이 없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외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말리는가. ‘외쳐야 하지 않을까가 아니라 당연히 외쳐야 한다’ 국민들은 존경받는 공영방송, 기개 있는 기자들이 쓴 기사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정말 간절하게 보고 싶은 것이다.
  
MBC를 ‘엠병신’이라고 한다. 똘똘한 기자들은 말 안 듣는다고 모가지 자르고 당당하던 취재기자는 광고유치 외무사원 신세가 됐다. 수시모집 기자가 수백 명이라는 현실에서 기자는 할 말이 없다. MBC가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가. 이용마 기자의 오늘을 아는가. 가슴이 찢어지지 않는가.
  
■국민의 혈육 같은 기자들을 기억하자
  
남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면 얼마나 날아 갈 것 같을 것인가. 리영희 송건호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 기자는 없다. 존경받는 언론인은 많다.
 
KBS 민주광장에서 찢어져라 북을 치던 고 이임호 기자를 기억한다. 조달훈 기자를 기억한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해직이 되고 이제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혈육 같은 이용마 기자.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언론민주화를 놓지 못하는 이상호 기자. 왜 그들은 목숨을 던졌고 가족과 자신의 안일을 버렸는가. 언론의 자유가 바로 살아가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민주언론이 자유 민주국가를 세우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 많은 우려의 시선을 보란 듯이 씻어버린 손석희 앵커. 이제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언론이 가야 할, 아니 우리 국민이 가야 할 인생의 좌표처럼 되었다. 그의 오늘은 어디서 온 것인가. MBC 노조활동으로 오랏줄에 묶인 채 웃으며 차에 실리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의 웃음은 통곡으로 느껴졌다. 그가 JTBC로 옮길 때 사람들은 ‘손석희 너마저’라며 탄식했다. 그러나 믿었다. 인간이 걸어 온 길을 보면 걸어 갈 길도 알기 때문이다.
  
개헌을 한 순간으로 엎어버린 파일을 공개할 때 세무조사를 비롯한 온갖 협박공갈이 있었다는 소문이다. 왜 고민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하고 공개했다. 역사를 바꾼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길이며 기자의 길이다.
  
눈가에 어른거리는 떡고물을 생각하며 왜곡과 편파와 허위보도를 일삼는 언론인들은 생각해 보라. 죽은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기레기란 오명인가. 기자의 명예인가.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거울이 있다. 영광의 거울과 치욕의 거울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눈을 명심해야 한다.
  
■종편의 변신, 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지금 어느 국민이 대통령의 말을 믿는가. 한 마디 말마다 조롱이다. 문제는 심각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할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상징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이 있는 각료들은 모두 사퇴해야 한다. 검찰도 바꿔야 한다. 검찰총장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KBS와 MBC의 사장은 물러나야 한다. 임기 따질 처지가 아니다. 국민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 왜 사과를 하는지는 잘 알 것이다.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한 사원들에게도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 나라 언론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최소한의 속죄다.
  
청계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게 나라냐” 그렇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서 살았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