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두의 기차별곡] '안나 카레니나'와 톨스토이
[손민두의 기차별곡] '안나 카레니나'와 톨스토이
  • 손민두 KTX 기장 <코레일 사보> 기자
  • 승인 2016.10.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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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를 탄생시킨 톨스토이의 기차
기차, 불후의 명작을 낳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원의 계절, 기차까지도 눈의 옷을 입고 들어오는 플랫폼. 아름다운 한 여인이 사뿐히 기차에서 내리고 그 앞에 멋지고 늠름한 청년장교가 나타난다. 숨 가쁘게 뿜어내는 기차의 증기는 여인의 몸을 휘감으며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 톨스토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 기차도 마치 살아있는 양 숨을 몰아쉬는데 기차가 토하는 하얀 수증기는 이제 두 사람을 안개 속에 가둬버린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안나 카레니나>속의 명장면이다.

<부활>, <전쟁과 평화>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3대 명작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 뛰어난 문학성과 별개로 매혹적인 여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담아냄으로써 영화의 단골소재가 되었다. 그동안 영화로 만들어진 것만도 12번이나 된다고 하니 소설의 유명세가 놀라울 뿐이다.

역과 기차는 예술가들의 영감 속에서 끝없는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 상징성에 버금가는 공간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기차는 로맨틱한 감성을 일깨우며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만남과 떠남의 공간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정회와 미련, 안타까움은 모든 사람의 정서를 관통한다. 영화 속에서 증기기관차의 수증기가 화면 가득히 퍼질 때 안나의 슬픔이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들이 기차에 대해 갖고 있는 애틋한 정서 때문일 것이다.

톨스토이가 살던 19세기 러시아에서도 철도와 기차역은 문명과 기술을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기차는 그동안 마차에 의존하던 여행문화를 새롭게 바꾸었으며 자연에 속박돼 있던 러시아인들의 시간과 공간개념을 일거에 뒤흔들었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범선과 무역이 주도하던 해양교통시대를 마감하고 육상교통시대로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견인차가 바로 기차였다. 이런 맥락에서 사방이 얼음바다로 둘러싸인 거대한 내륙국가 러시아가 근대화의 여정을 향해 걸음마를 떼고 유럽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배경에는 철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차는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데도 한몫을 했다. 신분제도와 가부장제도 등 전통적 가치관이 도전 받는 상황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사회소설이다.

▲ 영화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가 1877년 완성한 <안나 카레니나>는 미모의 귀족부인 안나의 부정한 사랑을 중심으로 러시아 귀족사회의 허위를 벗겨내면서 갖가지 양상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고위관료인 남편과 슬하에 외아들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안나는 바람둥이 오빠에게 실망한 올케를 위로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하는 길에 불행하게도(?) 멋진 청년장교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을 이어가지만 치명적 사랑의 끝에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급기야 운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안나가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진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결혼과 사랑, 삶과 죽음, 개인과 사회라는 인간의 영원한 문제를 다루면서 안나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즉 안나의 구원받을 수 없는 관능적인 사랑과 소설 속 또 다른 주인공 레빈의 자기희생적 사랑, 즉 기독교의 박애정신을 대비시키며 독자를 향해 또 하나의 도덕적 사고를 요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소설도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읽는 사람의 몫이다. 우리는 작가가 제시하는 레빈의 형이상학적인 사랑보다 뜨거운 정열을 가진 안나의 사랑에 더 매력을 느낀다.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영지 주변에서 일어난 열차사고 때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 여인이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여인은 톨스토이의 영지와 가까운 마을에 사는 남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남자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이를 비관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불운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문학적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그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했다. 여인의 사연은 주인공 안나의 안타까운 자살 장면의 모티브가 되었다. 작가의 명민한 관찰력이 현실과 결합해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져 세계적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기차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소설 속에서 그의 사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레빈의 입을 통해 기차의 운행이 러시아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소설에서 도시와 농촌을 대립시키며 도시적 문명에서 비롯되는 것은 모두 허위와 부자연으로 몰아감을 볼 때, 톨스토이의 눈에 비치는 기차는 러시아 전통사회의 가치를 허무는 상징적 존재였을 것이다.

▲ 영화 <안나 카레니나>.

그러나 이 소설에서 기차는 도시와 농촌, 과거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며 서사를 이어가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드넓은 러시아 땅은 물론 이탈리아까지 공간배경을 넓힘으로써 다양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전개한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소설이 시대사조를 버무린 사실문학이라고 할 때 기차가 불러온 러시아 사회의 변모는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쓸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음직하다. 더욱이 기차가 인물과 사건을 이어주며 풍부한 서사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탄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나 까레니나>가 발표된 이후, 에밀 졸라를 비롯한 코넌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등 수많은 작가들이 기차를 배경으로 소설을 집필했으며 영화제작자들까지 기차를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시작으로 기차가 문화 컨덴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 손민두 코레일 KTX기장은 광주 출신으로 1985년에 철도청에 들어가 2004년 4월1일 경부고속철도 개통 첫 열차를 운행하고 무사고 2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한 베테랑 기장이다.

틈틈이 코레일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플러스>기자로 활동하면서 KTX객실기내지 <KTX매거진>에 기차와 인문학이 만나는 칼럼 '기차이야기'를 3년간 연재하며 기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광주in>은 손 기장이 그동안 잡지와 사보에 연재했던 글과 새 글을 부정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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