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겸손한 단식, 막가파 단식
[이기명 칼럼] 겸손한 단식, 막가파 단식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16.10.0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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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단식하는가

1981년, 영국의 대처 수상 시절 북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이 단식 중 10여 명이 사망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먹기를 거부하고 굶어죽은 것이다. 단식은 잔인하다. 이 설움 저 설움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 일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25 때 쫄쫄이 배를 곯아 본 경험으로 정말 배고픈 것은 고문이다. 단식하면 죽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이다.

■ 막가파 단식
 
단식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 단식 현장을 많이 보았고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단식자들은 고통을 견디며 겸손하다는 것이다. 단식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묵상에 잠기고 조용히 책을 읽는다.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은 이유도 모르게 죽은 자식들에게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려 주겠다는 염원이다. 국회의장 그만두라는 게 아니다.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주장하며 단식 중이다. ⓒ새누리당 누리집 갈무리

단식은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목숨을 건 단식인데 명분이 없을 수 없고 없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 지금 관심의 대상인 이정현 대표(경칭생략)의 단식은 어떤 대의명분을 내 세웠는가. 이정현은 집권여당의 당 대표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국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얼마나 심사숙고 했을까.
 
이정현의 단식은 정세균 의장의 의장직 사퇴다. 이유는 김재수 농수산부장관 불신임 통과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무슨 책임인가. 사회를 잘못 봤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고소했으니 법이 판단해 줄 것이다.
 
정세균 의장은 당연히 사퇴를 거부했고 이정현은 단신을 단행했다. 집권여당의 당 대표가 단식을 결행한면서 한 마디 없을 수가 없다. 이정현은 단식 이틀째 되던 날 아침 농성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단호히 선언했다.
 
"여러분이 보기엔 이게 쇼로 보일 것이다.“ "과거에 이렇게 하는 걸 쇼로 봤다. 그러나 이정현이 하는 건 쇼가 아니다".
 
그러자 과거 이정현이 한 말이 국민들 입에 올랐다. 지난 2014년 10월 3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그는 사자후를 토했다.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도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의 단식이 세계에서 유일한지는 모르겠지만, 이정현이 국회에서 한 말은 사실이다. 이정현이 점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2년 후에 이 말이 자신을 옭아맬 줄은 몰랐을 것이다.
 
■ 단식의 순리
 
집권당은 나라의 정치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비록 여소야대라 할지라도 막중한 책임은 피할 수가 없다. 더구나 집권여당의 대표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절벽 위에 서 있으면 안 된다.
 
배의 선장은 어떤 경우에도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 세월호 선장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버리고 팬티 바람으로 배를 탈출하는 몰골이 얼마나 추악하게 보이던가. 만약에 국민이 당 대표실에서 단식하며 국회를 팽개친 이정현을 보고 세월호 선장을 연상했다면 어떨까.
 
이정현도 사람이니 화가 날 수도 있다. 아무리 김재수 장관이 결점이 많다 하더라도 그냥 좀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재수의 과거 처신은 이미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회의장의 합법적 권한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이 로봇인가.
 
설사 단식을 해서 국민의 이목을 받고 싶다 해도 그건 당 대표가 할 일이 아니고 정진석 정도로 할 수는 없었을까. 당 대표가 저러고 있으니 국회가 돌아가는가. 국정감사는 파행이다. 오죽하면 국방위의 김영우 상임위원장은 국감에 참석하겠다고 하겠는가. 핸들을 잘못 돌린 이정현의 단식은 백번을 생각해도 손해 날 짓이다.
 
■ 정치인의 말과 행동
 
정세균이 사퇴하던 내가 죽든 둘 중에 하나다. 이정현이 한 말인데 소름이 돋는다. 정세균 의장이 사퇴를 안 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왜 정 의장이 사퇴를 해야 하는가. 정당성 없는 이정현의 단식으로 의장직을 사퇴한다면 그건 직무유기며 의장도 아니다.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정현은 목숨을 걸었다. 한 번 한다면 반드시 한다고 호언장담한 이정현이니 단식을 중단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에 불행한 일이라도 생기면 당사자야 자신의 선택이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무엇이 되는가.
 
이제 이정현 대표도 정당에 발을 처음 들여놓은 초짜도 아니다. 30여 년 정당생활을 한 정치인이다. 더구나 그는 대통령이 가장 총애하는 복심이며 대통령을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충신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국민의 여론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공언했다. 자신은 지금도 대통령과 하루에도 몇 번씩이라도 통화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 이정현이 목숨을 담보로 단식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일까.
 
국정감사를 거부하던 새누리당이 다시 거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새누리 의원들은 이정현 앞에서 손을 흔들며 ‘대표 님 힘내세요’ 노래를 합창했다. 이정현은 더욱 기운이 솟을 것일까.
 
이정현의 단식은 ‘미르 와 K스포츠’를 덮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설도 파다하다. 당 대표인 이정현 정도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야만 희석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다. 이제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도 인내력도 없다. 불의한 권력에 의해서 국민은 너무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이다.
 
국무위원이 필리버스터를 하며 여당 원내는 밥 먹을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당 대표가 국감을 거부하고 대표실에서 홀로 단식을 하는 이런 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쁜 예감은 맞는다고 예부터 전해 왔다. 백남기씨 부검. 사드 배치 발표. 미르 K스포츠 블랙홀. 국감 계속 거부.
 
감히 국민의 이름을 빌어 충고한다. ‘단식 중에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조국이라는 이 나라의 현실과 국민의 운명을 생각해 보라.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채질하는 백해무익한 단식투쟁은 제발 중단하기 바란다.
 
대통령은 이정현에게 단식을 당장 중단하고 국감이나 제대로 하라고 지시하기 바란다. 이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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