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부친은 학산 윤운기의 제자
“고인은 순교를 생활화하는 생활순교자였다"

"참 좋은 사람인디. 이렇게 되어 마음이 안 좋소."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 중 박근혜 정권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사경을 헤매던 중 2016년 9월 25일 운명했다. 농민과 함께 농민을 위해 살다가 하늘의 별이 된 백남기 선생 뒤에 붙여진 농민을 앞자리로 옮겨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농민 백남기 선생의 사인은 명백히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다. 전국민이 TV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검경은 사인규명을 위한 부검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법부는 1차 부검영장을 기각하더니 결국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검찰과 경찰의 부검영장 발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 의혹의 눈초리는 정권으로 향하고 있다.

▲ 백남기 농민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재신청이 이뤄진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69)농민의의 빈소를 찾은 시민이 오열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갈무리
▲ 전남 보성역 광장에 설치된 고 백남기 농민 분향소. ⓒ이주연

결국 정권은 국민과 일전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정권이 농민 백남기 선생을 죽임으로 내몰더니 급기야 시신마저 훼손하려 한다. 장례를 극진히 모시는 대한민국 국민정서가 이를 용납할 수 있을까?

지난 27일 농민 백남기 선생의 댁을 찾았다. 광주에서 보성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유사한 왕복 4차선 지방도로다. 화순을 경유하여 보성IC를 지나 목포순천간 나들목에서 목포방향으로 길을 놓다가 제암산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시골길에 들어서서 3분 정도 가면 구암천이 나온다. 두 가지 방법으로 길을 놓으면 된다. 구암천 바로 앞에서 좌회전하여 내동마을을 경유하는 것과 웅치면소재지 입구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길을 놓는 방법이 있다.

약 2Km 가면 좌측에 부춘마을, 장춘재, 모충사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마을 어귀를 지나 고샅길을 따라 경로당을 지나서 우회전 후 좌회전하면 활성산성 등산로가 나오는데, 그 입구에는 아름드리 낙락장송 한 그루가 서있다. 그 소나무 아래 주황색 지붕이 농민 백남기 선생 댁이다.

댁 입구 좌우에는 장독이 즐비하다. 산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서서 논배미가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면 추수가 끝난 밀밭이 나온다. 농민 백남기 선생께서 경작한 밀밭이다. 평생 지기였던 분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일이 끝났응께 서울 민중대회에 가야겄그만. 자네도 같이 안 갈랑가?” 동행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고 한다.

▲ 지난 27일 찾은 고 백남기 농민이 생전에 살았던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자택. ⓒ이주연

운이 좋게도 농민 백남기 선생의 작은 어머님의 안내를 받았다. 문득 기억을 되살려 ‘학산 윤윤기 선생’을 떠올렸다. “백남기 선생의 아버님이 웅치면장을 지내셨던 백춘선 님이신가요?” “아따 우리 시아주버니를 어찌 아신당가요?” “백춘선 면장께서 선정을 베풀어서 칭송이 자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학산 윤윤기 선생을 알고 계신지요?” “들어는 본 것 같은데...” 말끝을 흐리셨다. “백춘선 면장님의 스승입니다.” “아 그렇고만요. 다시 들어봉께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는 흔디...” 여전히 말끝을 흐리셨다.
 

작은 어머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 시아주버님(농민 백남기 선생 부친)은 경찰이었는디 어디를 가든 칭송이 자자했어라우. 우리 조카도 참 좋은 사람인디.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마음이 안 좋소. 근디 언제나 올랑가 모르겄소. 빨리 끝나야 할 것인디.” 차마 그 말씀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

“백춘선 씨라고 웅치면장을 했던 분이 있었어요. 그 냥반은 참 좋은 분이었습니다. 우리 학산 선생의 훌륭한 제자였지요. 언젠가 백 면장께서 살아계실 때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학산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옥은 깰 수 있지만, 옥빛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매우 의미있는 말씀이셨다. 학산 윤윤기 선생의 딸 윤종순 여사의 증언이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자택 뒷산. ⓒ이주연

올 여름 학산 윤윤기 선생이 창립했던 보성 회천면 양정원 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웅치면 제암산 들풀농원으로 이동했다. 학산 윤윤기 선생의 손자 윤영소 선생과의 첫 만남이었다. 윤영소 선생은 할아버님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였는지 산마을, 해밀학교, 한빛고, 간디학교, 영일고 등에서 평교사와 교장선생을 역임했다.

지금도 대안학교 사업을 위해 장흥과 강원도 그리고 경기도를 오가는 중이다. 일제시절 학산 윤윤기 선생의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가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성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농민 백남기 선생도 의제에서 피해가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의 부친 백춘선 웅치면장께서 학산 선생의 제자였다지요?”

“네, 제 할아버님의 제자가 백남기 농민의 아버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둘째 아들 백두산과 셋째 딸 백민주화는 제가 한빛고에 있을 때 가르쳤습니다.”

학산 윤윤기 선생의 손자 윤영소 교장 선생의 말씀이셨다. 두 집안의 참 기인한 인연이었다.

학산 윤윤기 선생은 자신의 개인재산을 모두 후학양성에 소진했다. 1940년부터 7년 동안 2,0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조국은 해방된다. 너희는 부지런히 배워서 해방된 조국에 봉사하라.”

▲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살인정권 규탄 투쟁본부 소속 회원들이 29일 오전 광주지법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부검 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광주인

농민 백남기 선생의 부친 백남춘 웅치면장이 이승만 정권하에서 경찰직을 퇴직하고, 행정직 공무원이 된 이유이며, 선정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는 온전히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농민 백남기 선생의 댁이자 고향은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부춘마을이다. 조선 중엽에 보성 선 씨와 수원 백 씨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자연마을이다. 봄이면 식량이 부족하여 춘궁기를 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워 어는 진사가 봄에도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부춘富春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 큰 사당이 있다. 모충사다. 춘강문을 지나면 우측에 장춘재가 있고, 정면에 모충사가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 세심당 백홍인과 면암 최익현이 호남창의를 격고한 곳이다. 격고지라 함은 창의의 뜻을 포고한 뜻일 것이니 구한말 호남의병을 일으키고자 하는 뜻을 처음으로 알린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호남에 의병을 창의할 뜻을 알리고 본진을 능주로 삼아서 쌍봉사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고 한다.

쌍봉창의소는 구한말 의병장 행사 양회일이 거병한 곳이다. 행사 양회일은 조선개혁의 상징 정암 조광조와 평생 의리를 지킨 호남 사림의 정신 학포 양팽손의 후손이다. 호남창의회맹소는 담양 금성산성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보성의 안담사리 장군이 용맹을 떨쳤음은 기록이 증명한다. 그 이후 불과 16년만에 보성 웅치에서 호남 의병이 창의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 ⓒ이주연

농민 백남기 선생 댁을 감싸고 있는 것은 푸르른 대나무다. 보성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수종이다. 마을 군데군데 신호대가 즐비하다. 특이한 풍경이다. 활성산성 트래킹코스의 이름은 보부상길이다. 활성산은 활쏘는 연습장이었다고 한다. 부춘동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일림산이다.
일림산을 넘으면 회천이다. 율포해수욕장이 자리한 곳이다. 동쪽으로는 득량, 조성, 고흥이다. 서쪽으로는 장흥, 강진이다. 남해안의 중심이다. 보부상들이 궁벽진 길을 다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외딴 시골마을에 보부상들이 다니는 길이 있었다는 것은 세상과의 소통이 가능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일까? 호남창의 격고지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여겨진다.

호남창의, 학산 윤윤기와 백춘선 웅치면장의 양정원, 윤영소 선생과 백두산, 백민주화의 한빛고 또한 우연이 아니리라. 농민 백남기 선생이 걸어왔던 여정 또한 우연이 아니리라. 3선개헌과 유신반대, 전두환 독재 타도의 민주화운동가, 예수의 저항정신을 배웠던 가르멜 수도원의 백남기 임마누엘 수사, 농촌을 살리기 위해 궁벽한 고향을 다시 찾아와 농민으로 살다 간 그의 여정 또한 우연이 아니리라. 농민 백남기 선생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니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순교를 생활화하는 생활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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