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온지 6개월.

난생처음 겪어보는 살인적인(?) 더위, 벌레들 때문에 헤매고 진척 없는 언어 문제 때문에 여전히 헤매는 가운데 벌써 1년의 절반이 가버렸다. 그동안 뭘 하며 지냈나?

말도 다르고 문화와 풍속, 제도도 다른 남의 나라에서 1년짜리 장기 자원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이다 보니 제3세계 젠더문제를 현장에서 배우고 공부하고자 했던 목표에 한 발자국도 접근하지 못 한 채, 제 자리에서 맴맴 돌고 있는 중이다. ㅜ ㅜ

앞으로 남은 6개월의 상황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아 이러다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가끔은 들지만, 이곳에서 얻은 배움이 있기는 있었으니, 지나간 6개월의 시간을 온통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 싶다.

▲ ⓒ황정아

2년 전쯤, ‘로컬’, ‘글로컬’이라는 개념이 너무 멋져서 한동안 붙잡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광주’라는 로컬, 즉 이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우물안 개구리가 다른 로컬은 어찌 알 것이며 하물며 글로컬은 어찌 이해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도 참 막연하게 로컬과 로컬간의 연대 또는 협력이 가능할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해 손발은 묶어둔 채 머리로만 골몰했던 적이 있었다. 별 경험도 없이 손발까지 묶어둔 상태에서 머리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

그런데 미얀마에 와서 시골 마을들 다니고 주민 조직들을 만나면서 ‘어? 이게 그때 그거 아닌가?’라는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니....비가 안 와서 땅콩 농사마저 짓기 어렵다는 가난 속에서도 미얀마의 주민조직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봐왔던 주민조직들과는 결이 다르고 이상적인 주민조직의 상으로 인식해오던 형태를 이곳에서 보게 되니 되게 신기방기 했었다.

▲ ⓒ황정아

미얀마의 주민 조직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마을의 10가구가 1개의 단위가 되고 이 단위의 대표자들이 모여 마을의 리더 그룹을 형성한단다. 이장 역시 이 그룹에서 투표로 선출하고 마을에 필요한 제안이나 안건이 있을 경우, 10개 가구의 그룹에서 의논한 결과를 상위 그룹으로 올리거나 전체 주민회의를 통해 중요한 사안들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주민조직은 군부독재시설 주민통제 및 감시의 기능을 위해 군부가 조직화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조직화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지금은 마을의 여러 사안에 대한 논의와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이기도 하고 마을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인상적인 마을들이 있는데 첫 번째 마을은, 주민들이 약 1억 짯의 기금을 모아 마을에 전기를 끌어온 경우였다. 미얀마의 전기 사정은 여전히 열악해서 타운십(읍내) 시내에서 한 시간거리의 마을들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돌리거나 태양광 전지판을 이용해 전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요즘은 점차 전기 공급이 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정부에서 언제 전기 가설을 해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 ⓒ황정아

이 마을은 주민들이 가구당 60만 짯을 모아서 직접 전봇대와 전기 계량시설을 설치하여 전기를 마을까지 끌어 들엿다. 이 마을의 전기 설치가 인상적인 점은 1인당 국민소득이 여전히 (우리 돈으로) 120~140만원 정도에 머물고 있는 가난한 곳에서 주민들이 1억 짯의 기금을 모았다는 사실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60만 짯의 기금을 내기 위해 빚을 진 가구도 많았고 이를 내지 못하는 마을의 취약 계층은 전기 공급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또 다른 마을은, 약 10년 전에 한 NGO에서 10만 짯의 기금을 지원해준 것이 종잣돈이 되어 마을의 주민들에게 의료비를 대출해주고 있고 이 기금이 지금은 200만짯의 몫돈이 되어 마을 기금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금을 관리하는 것도 주민조직의 역할인데 주민들로부터 대출 신청이 들어오면, 주민리더들이 가정을 방문해 실제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마을회의를 통해 대출을 결정한다고 한다. 미얀마는 은행이 활성화 된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는 속에서 비싼 의료비를 저리의 이자로 지원해주는 마을 기금이 주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둘러보았던 마을 중 이 마을들이 특별히 좀 더 잘 살거나 하지 않았고 이 마을들 역시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마실 물과 전기, 학교를 짓는데 한국의 NGO가 도움을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 ⓒ황정아

여러 주민조직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아직 이곳 주민들은 개인보다 공동체의 복리를 우선하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살아있고 가난한 속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그웨이주 낫마욱의 한 마을 역시, 물과 전기가 시급하지만 그보다 먼저 학교 짓는 일에 주민들이 힘을 쏟고 있었는데, 이유는 우기에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등하교 길의 아이들이 물에 휩쓸려갈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사례들을 보며, 주민들 스스로 정부가 해주지 않는 전기며 의료비며 학교등 마을 안전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되게 깊은 인상을 받았더랬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집권여당이 되면서 국민들의 빈곤 저감에 노력하고 있고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다각도로 빈곤 해소를 위해 지원하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가난한데다 특히 비가 오지 않아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중부 건조지역 시골 마을들의 경우 빈곤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여 당분간 주민들은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해결해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자신의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얀마의 주민들과 인권 도시 광주의 주민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로컬들의 연대이고 글로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ODA처럼 큰 예산을 투자하지 않고도 미얀마 주민들의 생활세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일들, 즉 학생 수는 200명인데 학교 화장실은 단 2칸뿐이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주민소득 향상을 위해 마을 방앗간 같은 시설을 지원한다. 

▲ ⓒ황정아

가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마을 숲에 유실수를 심어 숲 보전과 사막화방지도 하고 마을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돕는 이런 일들은 미얀마 주민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고 주민들의 자립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일들이어서 이런 작은 규모의 다양한 사업들을 발굴하고 자원을 연결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싶다. 그리고 이 일을 ‘인권도시 광주의 주민’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이미 우리는 거대한 단일 시장체제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와 어떤 관계이지? 라는 의문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3세계 국가들과 연결되어 있고 일본, 중국, 한국, 인도 같은 아시아 공업국에서 내뿜는 어마어마한 탄소와 기후변화 피해를 미얀마나 방글라데시같은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이 떠맡고 있다고 하니 그 책임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 한 것은 분명할 터.

주민들 간의 연대와 협력으로 미얀마 주민들이 빈곤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돕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남은 6개월은 이 길 찾기를 위해 헤매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듯하다.

** 황정아 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올해 3월부터 세계3대 불교유적지 중 한 곳인 미얀마 만달레이주 바간 타운십에서 1년 기한으로 한국엔지오 소속으로 현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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