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1950년 6월 25일. 돈암동 미아리고개. 군 트럭이 군인을 잔뜩 싣고 미아리고개를 넘고 있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요즘 이 군가의 가사를 아는 젊은이들이 있을까. 군가를 부르며 미아리 고개를 넘던 우리 국군은 저녁때 부터 피투성이가 된 채 고개를 넘어왔다. 군에 트럭이 없어 징발된 민간차량에 실려 군인들은 일선으로 갔고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왔다.
 
그로부터 3일 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함락됐다. 국군이 북진 중이니 서울시민들은 절대로 동요하지 말고 있으라던 이승만의 목소리는 마치 세월호 선실에 갇힌 애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던 미친놈의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도망친 대통령의 말을 듣고 서울에 남았던 시민들은 죄 없는 빨갱이가 되었고 북으로 끌려갔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오후 청와대에서 북 5차 핵실험 관련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누리집 갈무리

며칠 전 경주에 규모 6.8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교장이란 자는 자율학습을 하던 학생들에게 꼼짝 말고 공부하라고 해놓고 제 놈은 사라졌다. 그때나 이때나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국민 합창을 하면 어떠냐. 억지로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이미 눈물은 말랐으니까.
 
1958년도 입대 친구들이 어쩌다 만난다. 세상 떠난 친구들이 많다. 역시 군대 얘기가 많다. ‘전쟁 나면 목숨 바쳐 싸울거냐’ ‘미쳤냐.’ 한 마디로 자른다. 당시 웬만한 놈은 군대 안 갔다. 군대 가도 꽃보직에서 놀았다. 재주 좋게 미국에 가서 대학 나오고 귀국해서 금 방석 깔고 놀았다.
 
현재 고위 공직자의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인의 3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역 복무자는 10명 중 7명에도 못 미쳤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고 이런 현실에서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미친놈 소리 듣는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앉아서 안보를 지껄이는 인간들의 병역기록을 한 번 공개해 보라. 안보가 책상 밑으로 숨을 것이다.
 
■ 고위공직자 자녀들
 
고위 공무원 자식들의 병역 면제 비율은 왜 이리도 높은가. 일반인 면제 비율의 15배에 이른다. 면제사유 중 고도근시가 가장 많았다. 신장ㆍ체중 미달과 초과(123명), 수핵탈출증(88명), 폐결핵(47명) 등의 순이다. 잘 먹고 잘 지내는 금수저들이 왜 이 모양인가.
 
"모범을 보여야 할 고위 공직자와 자녀들이 병역 회피 의혹을 살만한 질병으로 면제 판정을 받는 것은 병역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 별 출신의 한 의원이 한 소리다.
 
러시아를 침략한 독일군이 시베리아에서 얼어 죽었다. 죽은 사병의 주머니에서 나온 일기장. 일기는 애국심으로 눈물져 있었다. 그는 독일의 귀족이고 군대에 안 가도 버틸 신분인데 그는 자원해서 출전했다. 영국의 황태자도 전쟁에서 싸운다. 남의 나라 전쟁인 한국전에서 벤프리트 장군의 아들인 지미 벤프리트 2세 중위는 조종사로서 참전, 평양 상공에서 실종됐다.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 그중 35명이 전사하였다. 한국군 유 아무개 장군은 군단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는 일본군 출신이다.
 
병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상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한다. 우리는 육탄으로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고 산화한 ‘육탄10용사’를 알고 부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진 강재구 소령과 이인호 소령, 이원등 상사를 기억하고 있다. 더 올라가 화랑 관창도 화랑 사다함도 알고 있다.
 
중동전쟁 당시 미국으로 유학 온 이스라엘 학생과 이집트 학생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전쟁이 터지자 두 나라의 유학생이 모두 사라졌다. 이스라엘 유학생은 참전을 위해 귀국했고 이집트 학생들은 소환당할 까 도망쳤다. 전쟁은 이미 승패가 결정됐다. 우리 유학생이라면 어땠을까. 주저 없이 이집트 유학생에게 표를 던진다.
 
6·25 전쟁 발발 직후 도망가기 바빴던 똥별 군단장과 국민방위군의 식량을 횡령 착복해 수십만 명을 굶겨 죽이고 병신 만들어 총살당한 방위군 사령관 김윤근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뿐이랴. 방위사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온갖 부정을 저지른 고위 관료와 무기수입과 관련해 법정에 선 군 관계 최고 사령관의 부끄러운 얼굴을 기억한다. 이런 기억 속에 우리는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죽어도 부르지 못할 군가다.
 
■ 전쟁은 말로 하는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는 동안 대한민국 정권과 군은 참으로 많은 말을 토해냈다. 말로 치른 전쟁으로 치면 우리는 이미 평양의 지도를 몇 개는 지워 버렸을 것이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을 지우개로 하는가.
 
핵핵 거리는 소리에 국민은 이제 무감각하다. 방송을 들으면 전쟁을 벌써 몇 번은 치렀을 것이다. 온통 방송을 누빔으로써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 한다는 순진한 발상이나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어디 한두 번인가. 미국의 윤허가 없으면 총 한 방 못 쏜다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엄청난 발언을 들으며 국민이 무슨 생각을 할까. 국민은 불통의 달인인 대통령의 분별없는 결단을 두려워할 뿐이다.
 
아무리 힘없는 자와 싸우더라도 맞붙어 싸우면 한 대는 맞는다. 북한을 지도에서 지워 버린다 해도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어떻게 되는가.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한국 방위에 아무 쓸모도 없는 사드는 왜 저리도 고집하는지 국민은 답답하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모순은 전쟁을 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6·25 전쟁 후 지금까지 전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전쟁이 당장에 일어날 듯 안달인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적어도 전쟁에 대한 공포는 없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는 왜 이리 국민이 떨면서 살아야 하는가.
 
국민은 박근혜 정권을 믿지 않는다. 국민은 믿을 수 있는 정권을 믿는 것이다. 305명의 천금 같은 우리 애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 가는데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한 대통령의 정권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검사장이란 자가 수백억을 챙겨 먹는데 민정수석이라는 자는 감찰조사를 받으면서 끄떡없이 자리를 지킨다. 조사결과를 봐야 조치를 한다는 대통령의 정권을 국민이 믿어야 한단 말인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주면 국민은 믿는다. 세월호 행방불명 7시간을 비롯한 국민의 의혹이 겹겹이 싸인 사건들을 해결해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면 국민은 믿는다.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가 아니다. 그만큼 속았으면 우리 국민의 인내력도 무던하다고 할 수 있다. 더 견디라는 것인가. 염치가 없다.
 
조상이 살아왔고 내가 살고 내 후손들이 살아야 할 이 땅은 내가 지켜야 한다. 지금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명분이 없다. 바꿔야 한다. 그래서 사라진 애국심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목이 터져라 부르며 국민이 눈물을 흘릴 때 국민은 마음 놓고 살 수가 있다. 국민이 충성을 바칠 이유를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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